《민요 <아리랑>은 지난날 우리 인민들이 즐겨부르던 노래입니다. 민요 <아리랑>이 나온지는 오래되였지만 오늘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조선사람치고 민요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해외에 살고있는 동포들도 민요 <아리랑>에 대하여서는 다 알고있습니다.》 (
오늘 민요 《아리랑》은 우리 인민들은 물론 세계인민들속에서 조선민요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민요 《아리랑》이 온 세상사람들속에 더욱 잘 알려지게 된것은
이리하여 지난날 한갖 민요로만 전해져오던 《아리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아리랑》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해석을 하여왔다.
《조선구전문학개요》(고대중세편 1990년)에서는 《아리랑》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서정민요로서 《아리랑》후렴구에 기초하여 하나의 계보를 가진 가요군을 형성하고있다고 하면서 경주 불국사 석굴암부근에 있는《알영정》의 알영과 그옆에 있는《아리랑고개》와 결부하여 설명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또한 고려가요의 후렴구인 《얄리 얄리 얄란성 얄라리 얄라》가 《아리랑》과 어음상 류사하므로 그와 결부시키기도 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조선전사》 제14권(1980년)에서는 《아리랑》은 1865년 경복궁 중축공사이후 명성왕후의 세도정치를 증오하고 그들의 악정을 폭로하여 나왔다고 하면서 《리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명성왕후의 팔촌이 되려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가사를 통하여 명성왕후일파의 세도정치를 야유조소하고있다고 서술하였다.
《조선구전문학연구》(1)(1999년)에서는 《아리랑》은 8도마다 전설적인 내용을 안고 창조전승되였다고 하면서 밀양지방에서 나온 《아리랑》은 옛날 령남루에서 아랑이라는 처녀가 관청사령놈이 겁탈하려고 덤벼들자 물속에 뛰여들어 자살했다는 전설에 기초하여 나왔으며 이 노래가 나온 때부터 사람들은 밀양의 령남루를 《아랑각》이라고 불렀다고 서술하였다.
《조선대백과사전》 제26권(2001년)에서는 《아리랑》은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민요라고 하면서 민요 《아리랑》의 가사와 함께 《아리랑》의 발생과 관련한 많은 전설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은 《성부와 리랑》전설이라고 소개하였다.
《문학신문》 2003년 11월 23일부에서는 《조선민요해설 <아리랑>》 이라는 제목으로 《아리랑》전설들가운데서 대표적인것으로 되고있는 《성부와 리랑》전설을 정리하여 실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옛날 경기도 어느 지방의 김좌수라고 하는 지주집에서 리랑이라는 총각과 성부라는 처녀가 머슴살이를 하고있었다. 어느해 큰 흉년이 들었는데 욕심사나운 지주놈은 농민들에게서 소작료를 삭감하지 않고 오히려 리자에 리자까지 덧붙여 빼앗아갔다.
하여 농민들의 원성은 날을 따라 높아지고 마침내는 김좌수와 악질관료배들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군중속에는 리랑과 성부도 있었다.
이에 당황한 관가에서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였다.
농민폭동군과 관군사이에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겹겹이 에워싼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나온 리랑과 성부는 산으로 들어가 초막을 짓고 새살림을 시작하게 되였다.
그러나 리랑은 눈만 감으면 농민들과 동료들이 관군의 칼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어려와서 진정할수 없었다.
생각끝에 리랑은 성부에게 자기 심정을 말하였다.
그의 결심이 확고한것을 안 성부는 이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성부는 석달 열흘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리랑과 리별하게 되였다.
리랑을 떠나보낸 성부는 리랑이 그리워 노래를 부르군 하였다.
어느날이였다.
산밑에 사는 백상도라는 지주놈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왔다가 홀로 사는 성부를 보게 되였다.
이날부터 이놈은 매일과 같이 찾아와 자기와 같이 살자고 치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이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이 되였다.
드디여 남편이 돌아왔다.
그처럼 기다리고기다리던 리랑과 감격적으로 상봉을 한 성부는 집에서 저녁상을 차리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백상도놈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찾아왔다.
성부의 얼굴은 질리다 못해 새까맣게 되고 리랑의 눈에서는 분노의 불이 타번졌다.
리랑은 백상도놈이 성부와 정분을 나눈것으로 오해하고 즉시 칼을 뽑아 그놈을 죽인 다음 성부에게 침을 뱉고 단숨에 고개를 넘어갔다.
성부는 북받쳐오르는 설음을 참아가며 《아‐리랑!》하고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다.
결김에 떠난 리랑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성부가 절대로 그럴 녀자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하여 발길을 돌려 언덕길로 내려오던 리랑은 가슴에 칼을 박고 길섶에 쓰러져 숨진 성부를 발견하고 그를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리랑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그후 어느 길손이 부르기 시작하였는지 그 고개를 《아리랑고개》라고 부르게 되였으며 성부가 리랑을 그리면서 부른 노래를 《아리랑》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오고있다.…
물론 구전으로 전해져내려오는 전설인것으로 하여 그것이 사람들속에 옮겨지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덧붙여질수 있고 인물들의 형상도 각이하게 될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과 함께 《아리랑》이라는 어휘의 어원적인 측면도 새롭게 밝혀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아리랑》이라는 어휘에는 어떤 고유한 뜻이 담겨져있겠는가.
우선 《아리》라는 어휘의 고유한 의미는《길다》는 뜻으로 리해할수 있다.
《조선대백과사전》 제26권에서는《아리수》라는 어휘에 대하여 《고조선이래로 큰 강을 이르던 우리 나라 말》이라고 해석하였다.
여기에서《아리》는 《크다》 또는 《길다》는 의미이다.
1823년에 편찬된 우리 나라 민족고전 《해동역사속》(지리고)에서는 《압록강》을 《아리나례》(阿利那禮)라고 서술하였는데 이것은 고유한 우리 말인 《아리나리》를 리두식으로 표기한것이다.
여기에서 《아리》는 역시 《길다》 또는 《크다》는 의미이고 《나례》는 《나리》를 리두로 쓴것인데 《나리》는 고유한 우리 말로 《강》을 말한다.
그것은 고구려가요 《동동》의 2절에서 《정월의 나리물은…녹으려 하는데》의 구절에서 《나리》는 《시내》 또는 《강》이라는 의미를 나타낸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
바로 《압록강》은 옛적에 고유한 우리 말로 《아리나리》로 불렀고 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鴨綠江》이라고 쓰고 읽기는 《아리나리》로 읽다가 사람들속에서 한자음 그대로 《압록강》으로 불리워진것이다.
따라서 《압록강》이라는 말은 《아리나리》 즉 《긴 강》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을 통하여 고유한 우리 말인 《아리》는 역시 《크다》 또는 《길다》는 뜻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이렇게 놓고보면 《아리랑》에서 《아리》라는 말은 《길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것이다.
다음으로 《아리랑》에서 《랑》이라는 의미는 원래 《아리령》으로 불리우던것이 《ㅕ》가 《ㅏ》로 어음변화를 일으키면서 《랑》으로 되였다고 볼수 있다. 즉 언덕을 나타내는《령(嶺)》이 어음이 변화되여 《랑》으로 되였던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이라는 말은 원래 《아리령》으로서 《긴 언덕》 또는《긴 고개》라는 뜻으로 리해할수 있다.
《아리랑》을 《긴 언덕》 또는 《긴 고개》라는 의미로 리해할수 있는것은 우리 나라 여러 지방의 지명들에 《아리랑고개》가 있는것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된 석굴암부근에 있었다고 하는 《아리랑고개》나 여러 지방들에서 자기 고장의 동구밖에 있는 나지막하거나 밋밋한 언덕을 《아리랑고개》라고 부르는것들을 실례로 들수 있다.
《아리랑》이라는 말은 후에 하나의 대상으로 불리워지면서 여기에 《고개》라는 어휘가 덧붙여서 《아리랑고개》로 불리워진것이다.
《아리랑》을 《긴 고개》라는 의미로 리해한다면 민요 《아리랑》에 깃든 리랑과 성부에 대한 전설과도 결부하여 설명할수 있으며 《아리랑》민요군을 이루고있는데 대하여서도 해설할수 있을것이다.
민요《아리랑》을 대표하는 전설인 《성부와 리랑》에서도 봉건적인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농민봉기군으로 떠나가는 리랑이 사랑하는 안해를 뒤에 두고 떠나자니 차마 발걸음을 떼기 힘들어서 집앞에 있는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서 가다가는 되돌아보고 다시 달려가서 함께 가겠다고 하는 안해를 설복하고 또다시 돌아서서 고개를 넘다나니 그야말로 《긴 고개》를 넘어가듯이 힘들게 넘어갔던것이다.
한편 길을 떠나는 남편을 바래우러 나온 안해인 성부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위험한 곳으로 혼자 보내는것이 걱정되여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매여달리자 남편은 그런 일은 녀자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집에 남아서 가정을 잘 돌보라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타이르면서 동구밖에 있는 언덕을 힘겹게 넘어간것이다.
남편의 간절한 권유에 못이겨 집에 남은 안해는 남편이 여러번 발걸음을 멈추면서 힘들게 넘어간 고개를 바라보면서 자기의 심정을 담은 노래를 불렀던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노래에서 서정적주인공인 녀인이 부르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구절의 의미는 실지로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데 대한 야속한 감정이 아니라 정의로운 길로 떠나간 남편을 더없이 사랑하고 남편의 신상을 걱정하는 간절한 심정을 굴절시켜 표현한것이다.
이때 가사에서 표현된 《아리랑》은 《긴고개》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의 조흥구로도 되였다.
이처럼 떠나간 《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님》과 다시 만날 희망을 안고 부른 《아리랑》의 유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절절하고 열정적인 선률은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을 진실하게 반영하였다.
이것으로 하여 이 노래는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보급되였으며 새로운 《아리랑》민요군을 이루게 되였다.
특히 일제의 조선강점시기 나라를 빼앗긴 민족적울분과 함께 기어이 조국을 찾으려는 애국의 감정을 반영하여 《아리랑》은 더욱 널리 불리우게 되였다.
그리하여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처자를 뒤에 두고 나라를 찾기 위한 성스러운 길로 떠난 이 나라의 수많은 《리랑》들과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들을 떠나보내는 수많은 《성부》들사이에 고향마을의 동구밖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인 《아리랑고개》에서 힘겨운 리별이 이루어지게 되였던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담아 노래 《아리랑》이 불러워지는 과정에 평안도의 《서도아리랑》, 경기도의 《긴아리랑》, 강원도의 《강원도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함경도의 《단천아리랑》등 지방적인 변종을 가진 민요 《아리랑》이 수많이 생겨나서 하나의 민요군을 이루었다.
이 《아리랑》가사들에는 사랑하는 《님》과 헤여지는 아쉬움과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 《님》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누리려는 우리 인민들의 열렬한 지향과 념원이 절절하게 반영되여있다.
우리 인민들의 이러한 지향과 념원은 《조선대백과사전》 제26권에 실려있는 《아리랑》가사의 마감부분에서 집약적으로 표현되고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동지섣달에도 꽃만 핀다
노래에서는 백두산을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면서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고 이 땅우에 기어이 동지섣달에도 꽃이 피는 락원을 일떠세우고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려가려는 우리 인민들의 희망과 념원을 진실하게 반영하고있다.
지난날 수난많던 우리 민족이 부르던 민요《아리랑》은 일제를 반대하는 항일혁명투쟁의 나날에는《간삼봉의 아리랑》으로 불리워져 강도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우리 인민들을 조국해방의 성전에로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땅에서는 나라의 주인이 된 인민들의 환희와 기쁨을 담아 행복의 《아리랑》으로 널리 불리워졌다.
또한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는 선군시대인 오늘에는 우리 인민들속에서 《강성부흥아리랑》, 《선군아리랑》으로 널리 불리워지면서 최후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내달리고있는 선군조선의 기상을 온 세상에 마음껏 구가하고있다.
이처럼 민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 온 세상에 널리 울려퍼지고있는것이다.
주체92(2003)년 10월에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채택된 비물질문화유산보호를 위한 협약에 따라 여러 목록들이 설정되였다.
그가운데서 세계각국의 우수한 비물질문화유산들을 인류공동의 재보로 향유하고 보호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정된것이 바로 《인류의 비물질문화유산 대표적목록》이다.
유네스코는 우리 나라의 민요 《아리랑》을 이 목록에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면서 《<아리랑>은 가정과 친우들, 집단에서뿐만아니라 중요계기와 명절들을 비롯한 다양한 계기에 불리워지고있는 대중적민요이다. <아리랑>은 구두로 전해지며 재창조되는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전통형식과 관현악, 현대음악형식으로 존재하고있다.
<아리랑>은 주로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률속에서 리별과 상봉, 슬픔과 기쁨, 행복에 대하여 노래한다. <아리랑>은 사회적관계를 보다 공고화함으로써 호상존중과 평화적사회발전에 기여한다.》라고 널리 소개하였다.
이처럼 오늘 우리 나라의 민요인 《아리랑》은 우리 인민뿐아니라 전세계인류의 공동의 재보로,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