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김양호
2016.3.7.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강성국가건설의 최후승리를 위한 총공격전을 힘있게 벌려나가고있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세계적인 경제파동속에서도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의 위용을 떨치며 승승장구하고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은 우리의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이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이룩한 가장 주되는 성과는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의 근원을 청산하고 민족의 륭성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한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여놓은것입니다.》 (《김일성전집》 제83권 375~376페지)
세기적인 락후와 빈궁이 존재하던 이 땅우에 강위력한 자립적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건설하신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과 민족앞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이다.
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하는 문제는 나라마다 구체적실정에 따라 다르게 제기된다. 지난날 제국주의나라들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을 쟁취한 나라들에서 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하는것은 경제건설에서 근본문제로 제기된다. 그것은 이 나라들에서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의 후과로 민족경제의 토대가 거의나 마련되여있지 못한것과 관련된다.
가장 악독한 일제의 식민지략탈정책의 후과로 해방전 우리 나라 경제는 기형성과 편파성을 띠고있었다. 우리 나라의 경제는 일본의 경제를 위한 하나의 부속물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해방전 우리 나라에서 기계공업부문이 전체 공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 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는 반제반봉건적사회경제개혁을 실시하는것과 함께 식민지경제의 예속성과 편파성을 없애고 민족경제를 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절박한 과업이 제기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식민지기반에서 해방된 인민들이 민주주의적발전의 길을 거쳐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어떤 성격과 형태, 내용을 가진 경제를 어떻게 건설하여야 하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선행한 과학적사회주의리론에도 밝혀진것이 없었고 또 이미 창조된 참작할만 한 경험도 없었다.
이전 쏘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동유럽의 일련의 나라들이 민주주의적발전의 길에 들어선 새로운 력사적조건에서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련합된 제국주의세력의 악랄한 경제적봉쇄와 고립압살책동에 민주진영의 련합된 힘으로 맞서나갈 목적밑에 주체38(1949)년 쏘련을 중심으로 하고 동유럽인민민주주의나라들을 망라하는 경제호상원조리사회(쎄브)를 내오고 이 나라들의 경제건설을 통일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 적지 않은 나라들이 큰 나라에 의존하는 경제, 다른 나라 식을 모방이식하는 경제를 건설하는 길로 나아갔으며 그것이 점차 새 사회건설의 길에 들어선 매개 민족국가들의 경제건설의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공식으로 간주되게 되였다.
이것은 제국주의예속에서 해방된 인민들이 정치적독립을 공고히 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견지에서 보나 혁명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진행되는 우리 시대의 력사적조건에서 앞으로 건설해야 할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적요구로 보나 매우 유해롭고 위험한 일이라는것은 명백한 사실이였다.
당시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은 《코콤》을 만들어놓고 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경제적봉쇄와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이른바 《원조》를 미끼로 하여 다른 나라들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하여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었다.
이러한 복잡한 환경에서 주권을 잡은 로동계급의 당들앞에는 민족적독립을 이룩한 인민들이 외세에 의존하는 경제를 건설하는가 아니면 자립하는 경제를 건설하는가, 큰 나라의 경제구조에 종속되는 전문화의 길로 나가는가 아니면 자체의 독자적이며 종합적인 구조를 가진 경제를 건설하는 길로 나가는가 하는것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 사회주의의 전도와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로 나서고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경제건설의 방향문제를 그렇듯 심각한 문제로 내세우고 새 사회건설의 첫시기부터 그 해결책을 리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모색하고 탐구한 령도자들은 거의 없었다.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으로 혁명실천의 오늘만이 아니라 먼 앞날까지 내다보시며 우리 혁명의 앞길을 밝혀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신 다음 새 사회건설의 길에 들어서는 첫시기에 벌써 민족경제의 자립성을 보장하는것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원칙적문제로 내세우시고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과 리론을 제시하심으로써 제국주의식민지통치에서 벗어나 민족적독립을 이룩한 나라들에서의 경제건설의 방향과 방도문제에 가장 옳바른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 관한 리론에는 식민지예속에서 해방된 인민들이 나라의 정치적독립을 공고히 하고 민주주의적발전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시기에 민족경제의 자립적토대를 쌓기 위한 투쟁과업과 방도들이 다 밝혀져있을뿐아니라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인민들이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을 통하여 사회주의의 물질기술적토대를 쌓기 위한 투쟁전략과 방침들이 전면적으로 집대성되여있다. 또한 이 리론에는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적조건을 마련하는 문제로부터 민족경제의 자립적토대를 축성하고 자립적민족경제의 체계를 확립하며 그것을 공고발전시키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리론실천적문제들에 대한 과학적해명이 정연하게 체계화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할데 대한 독창적인 리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을 이룩하신 다음 새 민주조선건설의 길에 들어선 첫시기부터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축성할 때까지의 력사적기간에 우리 혁명발전의 합법칙적요구와 조성된 정세, 우리 나라의 경제형편, 특히 전후 나라의 경제실태와 세계경제발전의 추세를 전면적으로 분석통찰하신데 기초하여 나라의 경제건설을 조직령도하시는 과정에 무엇보다도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할수 있는 토대부터 축성할데 대한 독창적인 사상과 리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경제의 자립적발전을 이룩하는것은 나라의 정치적독립과 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기초라는것을 천명하시고 자립적경제의 기초가 없이는 우리는 독립도 할수 없고 건국도 할수 없으며 또한 살아갈수도 없다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경제의 자립적발전문제를 나라와 민족의 존망, 인민대중의 생사운명문제와 직결시키는 주체적관점을 천명하신 기초우에서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튼튼히 쌓을데 대한 사상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락후한 식민지반봉건사회였던 나라들의 경제의 식민지적편파성과 기형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자립적민족경제토대축성의 목표와 과업, 그 실현방도들을 과학적으로 천명하심으로써 민족경제의 자립적토대축성에 관한 리론을 정연하게 완성하시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무엇보다도 민족경제건설의 첫시기에 경제의 식민지적편파성과 기형성을 극복하고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을 위한 밑천을 마련할데 대한 사상이다. 파괴된 경제의 복구를 위주로 하면서 기계제작공업을 비롯한 가공공업부문을 창설하고 급속히 발전시킬데 대한 사상, 뒤떨어진 농업을 빨리 발전시켜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경공업원료를 보장할데 대한 사상, 민족경제건설을 담당수행할수 있는 자체의 기술인재를 양성할데 대한 사상은 그 기본내용을 이룬다.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을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에서 중요한것은 특히 전후 재더미밖에 남지 않은 우리 나라 경제형편을 고려하여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것을 전후 인민경제복구발전의 전략적로선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사회주의경제건설의 기본로선으로 내세우시고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는 사업과 령락된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는 문제를 동시에 풀어나갈데 대한 사상과 리론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 경제발전의 합법칙적요구와 현실적가능성을 옳게 타산한 과학적인 사상과 리론이였고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에서 확대재생산을 훌륭히 보장할수 있게 하는 창조적리론이였으며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에 기초하여 자립적민족경제를 빨리 건설할데 대한 확고부동한 립장을 구현한 혁명적인 리론이였다.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을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에서 중요한것은 또한 자립적민족경제토대축성의 기본과업들을 독창적으로 밝히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하는데서 현대적이며 자립적인 중공업의 창설이 선차적의의를 가진다는것을 밝히시고 새로운 기술로 장비되고 주로 국내의 자연부원과 원료원천에 의거하여 발전하며 그리고 우리 인민경제에 필요한 자재, 원료, 연료, 동력 및 기계설비들을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생산보장할수 있는 자체의 중공업기지를 창설함으로써 자립적민족경제의 기둥을 마련할데 대한 리론, 자체의 경공업기지를 창설하는데서는 현대적대규모경공업공장들을 발전시키는데 선차적힘을 돌리면서 중소규모의 지방공업공장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며 경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데서는 인민소비품생산의 골간을 먼저 꾸리는 방향에서 공장건설을 진행할데 대한 사상, 사회주의농촌경리를 공고발전시켜 튼튼한 알곡생산기지를 창설할데 대한 사상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처럼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기 위한 투쟁목표와 과업, 그 실현방도들을 전면적으로 밝히심으로써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토대축성에 관한 리론을 전면적으로 체계화하시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회주의경제건설리론발전에서 이룩하신 불멸의 사상리론적업적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자립적민족경제건설에서 선차적으로 나서는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할데 대한 사상을 제시하신데 기초하시여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하는 과정은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와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활동의 자랑찬 승리의 로정이였다.
우리 혁명의 영광스러운 승리적발전력사가 그러하였던것처럼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하기 위한 우리 당과 인민의 투쟁의 앞길에도 허다한 난관이 가로놓여있었다.
해방전 우리 나라의 경제는 수공업적기술에 기초하고있는 채취공업과 농업에 편중되여있었다. 구조면에서 심한 기형성과 지리적편파성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나라 경제 특히는 공업의 치명적약점이였다. 게다가 일제는 패망하여 쫓겨가면서 얼마 안되는 공장, 기업소들마저 모조리 파괴하였는데 탄광, 광산을 물에 잠기게 하여 못쓰게 만든것만 해도 64개나 되고 부분적으로 물에 잠기게 한것은 178개나 되였다. 또한 황해제철소와 강선제강소, 흥남비료공장과 청진방적공장, 평양곡산공장을 비롯하여 큰 공장, 기업소들만 하여도 47개나 파괴하였다.
그리하여 해방직후 우리 나라에는 돌아가는 공장, 기업소는 거의 없었고 철도운수도 완전히 마비되였으며 식량사정마저 매우 어려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우리 나라의 경제형편과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절박한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새 조국건설의 첫시기에 인민경제를 부흥발전시켜 민족경제의 자립적토대를 튼튼히 마련하기 위한 투쟁에로 우리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경제의 부흥기에 파괴된 경제를 단순히 복구하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립적민족경제를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밑천이 되도록 개건할것을 구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구상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당면하게 민족산업을 부흥발전시켜 그 식민지적편파성을 없애며 민족경제의 자립적발전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인재를 준비하는데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우리 로동계급의 힘찬 로력투쟁에 의하여 파괴된 공장, 기업소들을 복구하고 공업의 식민지적편파성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에서는 빛나는 성과가 이룩되였다.
해방후 몇해사이에 우리 나라에서는 중요공장, 기업소들이 복구되였을뿐아니라 더욱 확장개건되고 새로운 공장, 기업소들이 일떠섰다. 그 결과 공업생산은 크게 장성하고 그 부문구조도 많이 개선되였다.
주체35(1946)년부터 주체38(1949)년기간에 국영 및 협동단체공업생산액은 422%로 장성하였다. 그리하여 공업총생산액에서 국영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에 72.4%로부터 85.5%로 높아졌다. 그리고 공업총생산액에서 기계제작 및 금속가공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주체33(1944)년의 1.6%로부터 주체38(1949)년에 8.1%로 높아지고 같은 기간에 방직공업의 비중은 6%로부터 11.4%로 높아졌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세련된 령도밑에 인민경제부흥기에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기 위한 투쟁에서 이룩된 자랑찬 승리였다.
우리 인민의 비상한 애국열의에 의하여 발전하기 시작하던 민족경제는 미제가 일으킨 3년간의 전쟁에 의하여 여지없이 파괴되였다.
미제의 무차별폭격으로 8 700여개의 공장, 기업소들이 파괴되고 37만정보의 농토가 피해를 입었으며 60만여호의 살림집, 5 000여개의 학교, 1 000여개의 병원과 진료소, 260여개의 극장과 영화관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후생시설들이 무참히 파괴되였다. 우리의 도시와 농촌은 모두 페허로 되였다.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가 입은 피해는 당시 화페로 4 200여억원에 달하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의 공장과 기업소, 도시와 농촌을 그처럼 무참히 파괴해놓고는 파렴치하게도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지껄여댔다.
이처럼 전후 경제형편은 참혹하였으며 인민경제복구건설을 무엇부터 시작하며 어떻게 할것인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 형편이였다.
경제건설에서 우리 인민에게는 있는것보다 없는것이 더 많았고 따라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새로 건설하고 창조해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난관은 이뿐이 아니였다. 미제는 조선침략전쟁의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새 전쟁도발책동에 계속 미쳐날뛰면서 우리 나라에 대한 정치, 군사적공세를 악랄하게 감행하는 한편 경제적인 제재, 봉쇄책동을 끊임없이 강화하여왔다.
1950년대 후반기이후 우리 인민은 또한 국제공산주의운동안에 대두한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대국주의적압력에 부딪치게 되였다. 그들은 우리 나라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처럼 《쎄브》에 얽어매여놓고 자체의 민족경제를 건설하지 못하도록 각방으로 방해하여나섰으며 우리 나라와 계급적형제로서의 관계는 더 말할것도 없고 호혜와 평등의 원칙에서 진행되는 경제교류와 협조마저 매우 불성실하게 리행하였다.
우리 당안에서 나타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과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의 도전도 매우 위험한것이였다. 이자들은 력사적으로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견해에 추종하면서 경제적면에서도 전인미답의 생소한 길을 단독으로 개척해나가는 우리 당의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건설로선을 시비해나섰으며 그 관철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새 조국건설의 첫시기부터 인민경제의 부흥기의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면서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오던 우리 인민의 투쟁은 미제가 일으킨 3년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일시 중단되였다가 전후시기에 와서 계속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시기 조성된 안팎의 정세와 우리 나라의 경제형편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시고 우리 혁명발전과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합법칙적요구를 명철하게 분석해명하신데 기초하여 전후 3개년계획기간에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경제를 복구하며 5개년계획기간에 공업화의 기초를 축성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그 수행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조직령도하심으로써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쌓는 력사적위업을 훌륭히 완성하시였다.
가렬한 전쟁의 나날에 승리할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시고 전후복구건설과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방향을 무르익혀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지체없이 파괴된 인민경제를 복구하고 민족경제의 자립적토대를 축성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당과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시기 기계제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자체의 강력한 중공업의 토대를 창설하는것을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를 축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
전후 모든것이 파괴된 페허속에서 자체의 힘으로 강력한 중공업의 토대를 창설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의 앞길에 가로놓인 난관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공장은 다 파괴되여 파철더미로 되였고 우리 인민에게는 재더미를 파헤칠 변변한 삽이나 곡괭이도 없었다. 공장을 복구할 자재나 자금은 물론 로력도 부족했고 인민생활도 말이 아니였다. 그런데다가 반당종파분자들은 《인민생활이 어려운데 중공업건설에 치우친다.》느니, 《기계에서는 밥이 나오지 않는다.》느니 하는 잡소리를 치면서 우리 당의 중공업건설로선을 반대해나섰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자체의 중공업토대를 창설하여야 전후복구건설도 할수 있고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도 축성할수 있으며 인민생활도 높일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시고 우리 당과 인민을 중공업건설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성리론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에 구애됨이 없이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근본요구와 현실적가능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자립적이며 현대적인 중공업을 창설할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현대적기술로 장비되고 자기 나라의 원료에 의거하여 발전하며 기계제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다방면적인 구조를 가진 자립적이며 현대적인 중공업을 건설하는 길만이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요구에 맞게 강력한 중공업을 건설해나갈수 있는 유일하게 정당한 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중공업의 건설과업을 제시하신데 이어 끊임없는 현지지도를 통하여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2(1953)년 7월 29일 전쟁의 포화가 멎은지 2일째 되는 날에 선참으로 황해제철소를 찾으신데 이어 8월 3일에는 강선제강소를 찾으시였고 이해 10월에는 동해안일대를 현지지도하시면서 흥남비료공장과 문평제련소, 천내리세멘트공장과 장진강발전소를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7월에는 북방의 야금기지들인 김책제철소와 청진제강소, 성진제강소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에 무한히 고무된 황해제철소의 로동계급은 교조주의자들과 사대주의자들, 소극분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50t짜리 평로자리에 100t짜리 평로를 일떠세워 1호평로복구확장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냈다. 강선제강소의 로동계급은 전기로복구에 착수하여 정전후 40일만에 2호전기로를 복구하고 첫 쇠물을 뽑는 기적을 창조하였으며 성진제강소 로동계급은 전후 두달도 안되는 기간에 제강설비를 복구하여 강철생산에 착수하였다.
제철소와 제강소들뿐아니라 기계공장, 화학공장, 건재공장, 발전소, 탄광, 광산 등 중공업부문의 다른 공장, 기업소들에서도 복구건설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였다.
주체44(1955)년말에 벌써 우리 나라에서는 김책제철소, 황해제철소, 강선제강소, 성진제강소, 청진제강소, 수풍발전소, 허천강발전소, 장진강발전소, 대안전기공장, 평양전기공장, 락원기계공장, 북중기계공장, 룡성기계공장, 희천기계공장 그리고 흥남비료공장을 비롯한 화학공장들과 여러 탄광, 광산들, 건재공장들과 조선소들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복구되여 조업을 시작하였다.
복구된 중공업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은 원위치에 복구되였지만 이전보다 크고 새로운 부문들을 갖추고 현대적기술로 장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중공업공장들을 건설하는데서 우리 나라에 없는 기계공업, 특히 공작기계공업을 창설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이것은 자체의 공작기계공업을 창설하여 남의 힘에 의존함이 없이 장차 나라의 기계공업을 전망성있게 주동적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하는 현명한 조치였다.
그런데 당안에 잠입하였던 반당종파분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새로운 기계공장건설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해나섰으며 이전 쏘련의 현대수정주의자들은 《국제분업》의 미명밑에 우리 나라에서는 기계공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없고 광석이나 그밖의 원료를 생산하면 된다고 하면서 우리의 기계공업창설을 방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당종파분자들과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단호히 물리치고 전쟁시기부터 추진시켜오던 기계공장건설을 빨리 다그치도록 하시였다. 희천기계공장건설자들은 주체43(1954)년 7월에 제1단계공사를 끝내고 그 이듬해에 모든 생산공정을 다 갖춘 현대적인 대규모공작기계공장을 일떠세우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완공된 희천기계공장에는 최신형고성능공작기계인 《에쓰 유 50형선반》을 비롯하여 선반, 볼반, 쎄빠, 후라이스반을 한해에 수백대씩 생산할수 있는 능력이 조성되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에서 마련하신 희천기계공장은 우리 나라의 어머니공장으로서의 자기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 내륙지대에 새로운 공업지구들이 형성되고 공업의 지리적배치의 편파성이 현저히 극복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건설의 합법칙적요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통찰하신데 기초하여 주체47(1958)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다!》라는 혁명적구호를 제시하시고 기계공업과 금속공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대적인 대형기계설비생산기지를 튼튼히 꾸리는데 큰 힘을 넣으시였다.
현대적인 대형기계설비를 생산하는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성숙된 요구였다. 현대적인 대형기계설비들을 자체로 생산하는 기지를 꾸려야 중공업의 튼튼한 토대를 쌓고 앞으로 사회주의공업화와 기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전진시켜나갈수 있었다.
그런데 원래 기계공업의 기초가 없었던데다가 전후 몇해밖에 안되는 때여서 현대적인 대형기계설비들을 자체로 생산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이때 사대주의에 물젖은 사람들은 기술에 대한 신비성을 내걸고 기계공업의 력사가 짧은 우리 나라에서는 현대적인 대형기계설비를 만들수 없으니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수밖에 없다고 주장해나섰고 우리 나라에서 기계공업의 발전을 달가와 하지 않던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조선에서 현대적인 기계설비를 생산하는것은 시기상조이고 또 생산한다고 해도 조금씩 생산해서는 수지가 맞지 않으니 자기 나라에서 사다 쓰라고 하면서 압력을 가해나섰다.
이런 환경속에서 자기 힘을 믿지 못하는 일부 일군들은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 동요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대주의자들과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이러한 방해책동에 단호한 반격을 가하시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현대적인 대형기계들을 우리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대담한 작전을 펼쳐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형기계설비생산기지를 꾸리는데서 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절실히 필요한 대형기계를 만들어내는 생산토대를 마련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고 먼저 우리 나라에서 농촌기계화의 결정적인 고리로 되는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주체47(1958)년 10월 10일 기양농기계공장을 찾으시여 로동자, 기술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우리 힘으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방향과 방도를 의논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농업협동화를 완성한 조건에서 알곡생산을 빨리 늘이고 농민들을 고된 로동에서 해방하자면 농촌에 적어도 뜨락또르를 3만 5 000대 정도 보장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다른 나라에서 사오려면 한해에 3 500대씩 사들여온다 해도 10년이 걸릴것이며 그동안 처음에 사온것이 못쓰게 될것을 고려하면 10년이 지난후에도 계속 뜨락또르를 수입해야 하니 수입에 의존하여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대담하게 우리 손으로 뜨락또르를 만들어내자고 뜨겁게 호소하시였다.
또한 락원기계공장, 북중기계공장, 서평양철도공장을 찾으시여 굴착기, 불도젤, 전기기관차를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이곳 로동자, 기술자들을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축적된 경험도 기술준비도 없고 전문설비 하나 없는 조건에서 설계로부터 가공, 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제힘으로 하면서 뜨락또르, 자동차, 굴착기, 불도젤과 같은 대형기계를 생산한다는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지만 기계공업부문의 전체 로동자, 기술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충정으로 보답할 한마음을 안고 간고한 투쟁을 벌려 30여일만에 뜨락또르를 만들어냈고 40일동안에 첫 화물자동차를 만들어냈다. 련이어 락원과 북중의 로동계급도 굴착기와 불도젤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또한 서평양철도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기계공업발전의 정수라고 하는 전기기관차를 만들어 세상사람들을 놀래웠다.
이 력사적기적은 《시기상조》요, 《수지가 맞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우리 인민의 힘을 믿지 않고 시비하던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된매를 안기고 조선사람의 위력을 온 세계에 다시한번 시위하였다.
사실상 우리 나라에서 단 한해사이에 뜨락또르, 자동차, 굴착기와 같은 대형기계들을 한꺼번에 만들어내고 계렬생산에 넘어간것은 세계기계공업력사에서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기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형기계설비생산기지를 튼튼히 꾸리기 위하여 대형공작기계와 특수공작기계를 만들어내도록 하시였다.
당시 우리 나라 기계공장들의 형편을 보면 큰 공장이라고 하던 룡성기계공장에 5~6m 타닝반도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하여 대형공작기계를 다른 나라에서 사올 형편도 못되였다. 돈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사올데도 없었던것이다.
이러한 형편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로동계급이 결심하고 달라붙기만 하면 대형공작기계나 특수공작기계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주체48(1959)년 3월 룡성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혁명을 하자면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이 공장 로동계급으로 하여금 8m타닝반을 만들어내도록 하시였고 주체49(1960)년에는 3 000t프레스를 제작하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지난날 기계공업이라고는 흔적도 없었던 우리 나라에는 중소형기계설비뿐아니라 야금설비, 발전설비, 화학설비, 자동차, 뜨락또르, 굴착기와 같은 대형기계설비들도 능히 자체로 생산할수 있는 위력한 기계공업의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공업화와 인민경제의 전면적기술개건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중공업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금속공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철강재생산기지를 튼튼히 꾸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우리 나라의 금속공업의 실태와 5개년계획수행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주체47(1958)년 당중앙위원회 9월전원회의에서 금속공업을 급속히 발전시킬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하여 제철능력을 늘이기 위한 기본건설을 통이 크게 벌리며 제강 및 압연강재생산능력을 높이면서 강재의 품종과 규격을 확대하며 이미 마련된 제철, 제강설비를 효과있게 리용하여 생산을 정상화할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강선제강소와 김책제철소, 청진제강소와 성진제강소, 황해제철소를 련이어 현지에서 지도하시면서 금속공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금속공업부문에서는 력량을 분산시키지 않고 중심고리에 힘을 집중한 결과 짧은 기간에 김책제철소의 제2호용광로와 해탄로, 강선제강소의 전로직장을 비롯하여 많은 제철, 제강, 압연설비들을 개건확장하거나 새로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주체46(1957)년부터 주체49(1960)년까지의 기간에 강철생산은 3.4배, 강재생산은 3.6배로 늘어났다. 철생산이 빨리 장성하였을뿐아니라 선철생산에만 치우쳤던 현상이 없어지고 여러가지 규격의 형강, 환강, 강판, 특수강재와 같은 금속자재를 많이 생산할수 있게 되였으며 강재에 대한 기본건설과 기계공업의 늘어나는 수요를 기본적으로 충족시킬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립적이며 현대적인 중공업건설로선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심으로써 우리 나라에는 짧은 기간에 새로운 기술로 장비되고 우리의 자연부원과 원료원천에 의거하여 발전하며 여러가지 생산수단과 기계설비들에 대한 국내수요를 기본적으로 충족시킬수 있는 중공업의 튼튼한 골간이 꾸려지게 됨으로써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를 높이 받들고 우리 인민은 이러한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에 의거하여 사회주의공업화와 인민경제의 전면적기술개건을 성과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체계확립의 력사적위업을 빛나게 완성하였다.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체계가 확립됨으로써 우리 나라의 경제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식민지적기형성과 편파성, 기술적락후성을 종국적으로 청산하고 완전히 제발로 걸어나가는 자주적인 경제로 발전하게 되였으며 우리 나라는 드디여 튼튼한 자립적민족경제를 가진 사회주의공업국가로 전변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겹쌓이는 준엄한 시련과 난관을 헤치시며 사회주의공업화를 완성하고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승리적으로 조직령도하시였을뿐아니라 계속하여 민족경제의 자립성을 더욱 강화하여 사회주의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쌓으시였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는 그 어떤 고전의 명제에 기초하여 건설된것이 아니라 명실공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사상과 그것을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경제건설리론에 기초하여 건설된것이며 다른 나라의 경험을 모방하여 건설된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우리 혁명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의사에 따라 우리 식으로 건설된것이며 큰 나라의 힘과 기술에 의존하여 건설된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자체의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 건설된 주체의 사회주의경제, 위대한 김일성동지식 자립적민족경제이다.
온갖 형태의 경제적지배와 예속에 종지부를 찍고 인민적이며 자주적인 사회주의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업적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발전을 이룩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과 인류의 자주위업수행의 만년재보로, 백전백승의 기치로 길이 빛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