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김희성
2020.7.2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우리 수령님은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였으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면서 인민의 집을 짓고 인민의 쌀독을 채우고 인민의 옷감을 마련하기 위하여 궂은 길, 험한 길을 끝없이 걷고 또 걸으신 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력사에는 새벽길에 대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새겨져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 인민을 가슴에 안으시고 많이도 걸으신 새벽길은 결코 누구나 걸을수 있는 평범한 길이 아니였다. 그 길은 인민들의 생활의 깊은 곳, 구석진 곳을 다 헤아려보시며 그들의 불편과 애로, 생활의 절박한 요구, 지어 사람들이 무심히 스치고지나는 사소한 문제까지도 푸시기 위하여 걸으신 인민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헌신의 길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새벽시간은 인민을 위한 길에서 크나큰 기쁨을 느끼시는 행복의 시간이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에게 환희롭고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시려 밤늦게까지 일하시고도 늘 이 나라의 첫 새벽을 남먼저 맞이하군 하시였다.
언제인가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념려하여 새벽만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소망을 말씀드린적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시절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것은 오랜 생활과정에 굳어진 습관이라고 하시면서 결국 생활은 자신께 아침에 편안히 누워있을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새벽길은 이민위천의 위대한 사상에 기초한 인민사랑의 길이였다. 인민을 하늘로 여기고 하늘로 떠받드는것, 이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한평생 간직하신 좌우명이였으며 신조였다. 하늘로 떠받드신 그 인민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피며 인민이 바란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 숭고한 리념을 지니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시절의 습관을 혁명가의 변함없는 습관으로 굳히시고 이 나라의 새벽길을 남먼저 조용히 걸으시군 하시였던것이다.
우리 수령님의 그 새벽길이 있어 일군들이 현실에서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스쳐보낸 사소한 문제들도 제때에 포착되여 바로잡히게 되였고 그것이 인민들의 생활에 더없이 가치있는것으로 되게 되였다.
대동강에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 평양시민들이 불편해하는것을 보시고 아무리 인민경제계획수행이 긴장하다고 하여도 하루라도 빨리 인민들의 불편을 가셔주기 위하여 대동강에 옥류교라는 행복의 다리를 건설하게 하신것도 우리 수령님의 새벽길이 낳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어느 봄날 수도의 새벽길을 걸으시며 버드나무가 관리하기 힘들고 가로수로는 적당치 않다 해도 인민들이 원하여 심은 나무이니 찍어서는 안된다고 간곡하게 교시하시였고 어느 겨울날 새벽에는 아이들과 녀성들이 눈길을 불편하게 걷는 모습을 스쳐보내지 않으시고 겨울신의 목을 높이고 쟈크를 옆으로 채우게 하며 모달리도 대주어 인민들에게 발이 시리지 않고 보기에도 좋은 겨울신을 만들어주도록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어느해 이른새벽에는 로인들의 생활상불편을 걱정하시며 비탈진 산밑에 살림집을 규모있게 건설하여 늙은 부모들을 모시고있는 가족들에게 배정해줄데 대하여 일깨워주기도 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새벽길은 인민들의 생활상애로를 풀어주시려 끝없이 인민을 찾고찾으신 인민사랑의 길이였다.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며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가, 그들에게 어떤것을 더 해주어 누리는 행복을 크게 해줄것인가, 사소하게나마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점은 없으며 괴로워하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꽉 차있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바로 그 모든것을 아시려고 나라의 새벽문을 남먼저 열군 하시였다.
전후 평양시에 새로운 살림집들이 건설되여 새집들이소식들이 련일 전해지고있던 어느날 이른 새벽 우리 수령님께서는 무거운 마음으로 차거운 새벽이슬을 맞으시며 정원을 거니시였다. 당의 요구대로 살림집을 건설하지 못하다나니 새집으로 이사한 사람들이 추워한다는 사실을 아시였기때문이였다. 그 새벽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몸소 살림집을 찾으시여 벽난로는 우리 조선사람들의 생활에 맞지 않는다고 하시며 우리 인민들의 기호에 맞게 살림집을 쓸모있고 아담하게 지어줄데 대하여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생활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시려 동트기 전에 인민들이 사는 거리와 살림집도 돌아보시고 문열기 전의 상점들에도 들리시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사랑의 새벽길, 출근길에 오르시였다.
가정주부들도 잠에서 깨여나지 않은 이른새벽에 사람들의 눈에 별로 띄우지 않는 자그마한 두부공장과 식료상점을 찾으시여 인민들의 밥상에 오를 두부맛과 부식물들을 몸소 보아주시고 서해의 이름없는 포구를 찾으시여 고기비늘이 묻은 어로공들의 비옷까지 몸소 입어보시며 그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으며 30여명의 가족을 원쑤들에게 학살당한 한 관리위원장과 온밤 마음속아픔을 함께 나누시고 찬이슬 내리는 새벽녘에는 험한 산발을 헤치시며 농장이 잘살 길을 환히 밝혀주신분도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인민을 위해 우리 수령님 한평생 이어가신 헌신과 로고의 그 새벽길을 잊지 못해 이 땅에는 《새벽마을》이라는 세상에 없는 마을이름도 생겨나게 되였다.
참으로 인민을 위해 바치신 심혈의 무한한 세계를 말해주고 인민을 위한 헌신적복무란 어떤것인가를 심장깊이 새겨주는 우리 수령님의 새벽길이다.
위대하신 우리 수령님께서 한평생 걷고걸으신 새벽길들이 있어 이 땅에서는 행복의 새 아침을 부르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피여올랐다.
우리 수령님 한생토록 걸으시고 우리 장군님 변함없이 이어가신 인민을 위한 그 새벽길에 오늘은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서계신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모습으로 인민의 행복을 불러오는 새벽길을 련련히 이어가시기에 사회주의 이 강산에서는 인민들의 행복넘친 노래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