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아프리카의 모리따니에 새겨진 위인의 겸허하신 풍모

 2023.1.4.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평생 바다와 같이 넓은 도량과 그 끝을 헤아릴수 없는 포옹력을 지니시고 만민을 품어주고 보살펴주신 참다운 인간애의 체현자이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한없이 폭넓고 웅심깊은 인정미를 지니신 수령님께서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 여러 나라 당, 국가수반들과 정계, 사회계, 학계의 수많은 저명한 인사들과도 두터운 우의를 맺으시였다.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우리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4(1975)년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아프리카의 북서부에 위치하고있는 모리따니이슬람공화국을 방문하시였다.

지난날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1960년 11월 프랑스공동체안에서 독립하여 모리따니이슬람공화국을 선포한 이 나라 인민들은 당시 반제자주의 기치밑에 외래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의 후과를 가시고 경제적자립의 기초를 닦으면서 정치적독립을 공고히하기 위해 투쟁하고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쁠럭불가담정책을 실시하고있었다. 그들은 민족경제와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일정한 전진은 있었지만 제국주의자들의 끊임없는 침략책동과 불리한 자연지리적조건으로 하여 새 사회건설에서 커다란 난관과 시련을 겪고있었다.

하여 이 나라 국가수반은 주체사상이 구현된 조선의 현실에서 나라의 자주적발전과 번영의 길을 찾기로 결심하고 우리 나라를 두번씩이나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았으며 그때마다 수령님을 자기 나라에 초청하였다. 특히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알제리를 방문하고있는 기회에 그이를 자기 나라에 모시고싶어하는 소망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리한 자연기후조건으로 하여 모리따니방문을 만류하는 일군들에게 조건이 불리하다고 알제리까지 왔다가 모리따니를 방문하지 않으면 그 나라 대통령과 인민들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우리 나라를 두번씩이나 방문한 대통령을 생각해서라도 꼭 가야 한다고 하시며 이 나라에 대한 력사적인 방문을 진행하시였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으신 위대한 수령님을 자기 나라에 모시게 된 이 나라 인민들의 환영열도는 대단하였다.

비행장과 연도에 수많은 인민들이 떨쳐나와 진을 치고있었는데 특히 이채를 띠는것이 굉장히 늘어선 락타를 탄 사람들의 대렬이였다.

사실 이 나라에서는 일년내내 비방울은 고사하고 구름 한점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시집가는 처녀 구름 한점 보기만 해도 장수를 낳는다.》는 풍설도 돌고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모리따니에 오신 바로 그날 이른아침 비가 내린것이였다. 이것을 본 이 나라 인민들은 김일성주석님께서 비를 몰아 바람을 잠재우며 무지개를 타고 모리따니에 내리셨다고 하면서 민족의상을 떨쳐입고 나와 수령님을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뜻밖에도 자기 나라에 모시게 된 이 나라 대통령은 기쁨과 함께 한편으로는 근심에 싸였다.

모래속에 닭알을 묻어놓으면 잠간사이에 익는다는 뜨거운 열과 세차게 몰아치는 모래폭풍으로 눈조차 제대로 뜰수 없는 사막의 나라인 모리따니는 인구가 당시 150만명도 채 안되는데다가 대다수가 목축업에 종사하는 경제토대가 약한 나라였다. 당시 이 나라에는 대형려객기가 착륙할 비행장도 없었으며 귀빈을 모실 초대소도, 회담장이나 연회장도 따로 없었다.

사하라사막의 한끝인 대서양의 바다가에 위치하고있는 수도 뉴악쇼뜨는 우리 나라 산골군 소재지만 하였는데 공공건물 몇채와 외국인들이 리용하는 살림집이 좀 있을뿐 모두가 풍막생활을 하고있었다.

하여 이 나라 대통령은 자기 나라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정작 모시자니 바빠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면서 이 나라 대통령이 변변한 초대소도 없는 나라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신 김일성주석님을 모신다고 생각하니 죄송스럽기 그지없다고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공연한 걱정을 한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원래 풍막생활을 좋아한다고, 15년동안이나 빨찌산투쟁을 하면서 풍막생활을 하였는데 왜 풍막생활을 못하겠는가고 너그러이 말씀하시며 그들의 이러한 근심을 순간에 가셔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의 목가적인 생활관습까지도 허물하지 않으시고 스스럼없이 받아주시는데 힘을 얻은 대통령은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는 연회도 풍막을 치고 진행하도록 하였다.

국적이 다르고 피줄과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을 대하실 때 외교관례나 절차보다도 외국인들의 전통과 풍습을 무엇보다 존중하시고 그들과의 허물없는 친교를 더 중시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였기에 가시는 곳마다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인간적으로 친밀히 어울리시여 사업을 보다 원활하게 하시였으며 만나주시는 외국인이 수반급의 공식인물이건 평범한 인사이건 누구나를 가리지 않으시고 격식과 틀이 없이 소탈하게 대해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리따니방문의 나날에 하루밤을 자고 문을 열자면 마당과 문밖에 쌓인 모래로 하여 열수가 없어 모래를 치고서야 밖에 나설수 있었던 사막의 열풍에는 개의치 않으시고 대통령숙소방문과 연회, 수차에 걸친 회담과 여러 대상들에 대한 참관, 지어는 이곳에 와있던 프랑스기자를 만나주시는 등 정력적인 활동으로 낮과 밤을 이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나라 대통령에게 나라의 정치적독립을 공고히 하고 경제적자립을 이룩하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모리따니대통령은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김일성주석각하의 가르치심은 자기들을 크게 고무해주고있다고 하면서 주석각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희망과 신심을 가지고 새 사회건설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모리따니에 머무르신 기간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나날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이 세상 만민이 한결같이 우러러 따르는 위인이심을 다시금 절감하게 한 나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