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리병간
2020.10.2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결사옹위정신, 애국주의정신, 영웅적희생정신을 핵으로 하는 조국수호정신은 오늘 새 세대들이 이어받아야 할 가장 값높은 사상정신적유산입니다.》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였던 전쟁로병 송찬웅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보병중대장으로 복무하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고 평성시 백송리에 자리잡고있던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당시)에서 공부하였다.
전후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우리 시단의 핵심으로 성장하여 수많은 시가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가요 《높이 들자 붉은기》이다.
주체84(1995)년도 저물어가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창작한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송찬웅 작사, 송광림 작곡)를 들으시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80년대에 《동지애의 노래》가 나온 이후 처음 좋은 노래가 나왔다고 하시며 쏘련노래 《5월의 모스크바》에는 랑만이 있다면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에는 결의가 담겨져있다고, 신념의 붉은 기발을 휘날리며 주체의 한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사상이 아주 좋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조건이 좋다고 좋은 노래를 창작하는것이 아니며 특히 작가들과 작곡가들이 인정에 끌려 노래를 지을것이 아니라 당에서 필요한 노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인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노래를 지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가사에서 특히 《백두의 성스런 붉은 기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여있다》와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여왔다》는 구절이 마음에 드는데 이 구절들에서 붉은기에 어리여있는 력사에 대하여 아주 뜻이 깊고 고상하게 표현하였다고,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서도 혁명가의 일생은 붉은기를 휘날려가는것으로 되여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게 된다고 하시며 우리 혁명가들에게 힘과 신념을 안겨주고있는 이런 가사는 아무나 쓸수 있는것이 아니라고,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는 당창건 50돐을 맞으며 당에 드린 선물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평가를 받아안은 시인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는 뜨거운 격정으로 꽉 차올랐다.
돌이켜보면 해방직후 개선광장이 바라보이는 모란봉기슭의 소나무에 올라 처음으로 전설로만 들어오던 어버이수령님의 젊으신 영상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웨치면서도 그 사변의 참뜻을 미처 다 깨닫지 못했던 13살의 철부지소년이였던 그였다.
당시 평양제1고급중학교에 다니면서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할 꿈을 안고 시험준비에 열중하던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남먼저 전선에 탄원하였으며 인민군대 중대장으로 원쑤들과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렸다.
전선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그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전쟁승리의 앞날을 확신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선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그도 백송리 산속의 대학으로 불러주시였다.
탄생 40돐을 앞두고 포연을 헤치시고 백송리 밤나무골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그는 동무들과 함께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한 승리는 영원히 우리의것이라고 심장의 웨침을 터치였다.
위대한 전승의 그날에 원수복을 입으시고 태양의 미소를 환하게 지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보무당당히 열병식장을 행진해나간 자신의 그때의 감정을 그는 이렇게 토로하였다.
아 그날 나는 뵈웠노라
전승의 광장 높은 주석단우에
원수복을 입으시고 손을 흔드시며
태양같이 웃으시는 수령님의 영상을
작가가 걸어온 인생의 궤도우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이 력사적사변들, 해방직후 개선광장과 전쟁시기 백송리 밤나무골 그리고 전승열병식장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의 모습을 우러르며 심장으로, 넋으로 새겨안은 고귀한 진리는 《수령님만 계시면 우리는 승리한다》는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인생길을 추억하면서 수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민족의 대국상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해, 주체84(1995)년 정초부터 우리 장군님께서 걸으신 전선길을 따르며 내 자신이 새롭게 터득한 진리는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승리가 주는 기쁨이 아무리 크다 해도 지켜내지 못하면 빛을 잃게 되고 대를 이어 계승하지 못하면 패배와 다름이 없다는 그것이였다. 진정 그렇지 않는가. 우리 수령님께서 안아오신 항일대전의 이 거대한 승리가 우리 장군님에 의하여 면면히 이어가는것이기에 우리의 승리가 그렇듯 영원하고 위대한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고난의 행군의 첫 해를 걸으면서 체험하고 진리로 확신한것을 <높이 들자 붉은기>에 그대로 담았을뿐이다.》
그렇다! 승리에 대한 이런 철리를 지녔기에 그는 단순히 랑만이 아니라 맹세가 비낀 오늘의 새로운 《적기가》를 쓸수 있었던것이다.
백두의 성스런 붉은 기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여있다
높이 들자 붉은기 맹세로 불타라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력사의 준령을 헤쳐 넘으며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여왔다
높이 들자 붉은기 신념의 이 기발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이 기발 들고서 당을 받들고
이 기발 지키며 내 조국 빛내리
높이 들자 붉은기 주체의 한길에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이처럼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떠받들려 오늘의 새로운 《적기가》로 시대의 명작으로 창작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