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정봉
2021.3.23.
노래는 생활의 길동무이며 혁명적랑만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가들에게 우리 인민의 생활적요구에 맞으며 누구나 즐겨부를수 있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노래가사를 많이 창작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창작하는 생활적인 노래는 행복하고 보람찬 현실생활을 반영하는것만큼 사람들에게 생기와 기쁨을 주고 사회에 락천적인 분위기를 세우는데 이바지합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4권 149페지)
주체79(1990)년 2월 2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예술부문 책임일군들을 몸소 만나시고 인민이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혁명적인 노래들을 창작할데 대하여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당시 근로자들의 다양한 생활을 반영한 좋은 노래들이 창작되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깊이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부문 일군들이 분발하여 생활적인 노래창작에로 일떠서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방후 새 민주조선건설시기에 창작된 《바다의 노래》는 고기잡이를 하는 어로공들의 로동생활을 반영한 좋은 노래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하시고 최근에 근로자들의 문화정서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조기천의 시《휘파람》을 가지고 노래를 지어 보급하도록 하신데 대하여서도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음악부문 책임일군들의 가슴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처녀에 대한 노래를 비롯하여 녀성에 대한 노래, 어린이에 대한 노래도 잘 지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여 부를 노래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지금 결혼식때에 부를만 한 노래가 없다보니 주로 노래《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부른다고, 물론 결혼식을 할 때 신랑신부가 자기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키워준 당과 수령의 은혜를 잊지 말고 당과 수령에게 충성다하려는 의미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것이 나쁘지 않다고, 그러나 결혼식날에는 신랑과 신부의 결혼을 축하하여주는것이 기본인것만큼 그들을 축하하는 노래를 많이 부르는것이 좋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간곡한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한 시인은 협동농장에 나가 생활체험을 하면서 농촌의 청춘남녀들이 결혼식에 부를 노래가사를 창작하였다.
그 가사가 바로 《도시처녀 시집와요》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노래가사를 지도하여 명작으로 완성시켜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 이 노래가사를 높이 평가하시며 이 가요는 도시처녀가 사회주의농촌으로 시집을 온다는 간단한 내용을 가지고 썼지만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의 빛발아래 농촌마을이 도시부럽지 않게 되여간다는 사상이 잘 반영되여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명가사에 명곡이라고 가사가 좋으니 선률도 건드러져 노래는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뻐스칸에서도 불리우고 결혼식장들에서도 많이 불리웠다.
노래전반이 좋다보니 영화창작가들은 노래 《도시처녀 시집와요》를 주제로 하여 예술영화를 성과작으로 만들어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였다.
실지 가사의 구절구절을 보면 평범한 생활을 그대로 엮었는데 그 밑바탕에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테제의 위대성과 생활력이 진하게 깔려있었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사창작문제를 론할 때마다 《도시처녀 시집와요》를 생활적인 노래가사의 본보기로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신부를 축하하여 부를 노래를 창작할데 대하여 주신 말씀을 높이 받들고 한 녀류시인은 가사 《축배를 들자》를 창작하게 되였다.
시인은 3절로 된 가사를 창작하여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올리고 어떤 말씀이 계실가 하고 초조한 마음을 안고 기다리였다.
얼마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보아주신 가사를 받아안게 된 시인은 처음에는 환희에 넘쳐 어쩔줄을 모르다가 인차 웃음을 거두고 심중해지였다.
가사의 구절구절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치신 사색과 로고의 흔적들이 너무 많이 수놓아져있었기때문이였다.
생각할수록 송구하기 그지없는 시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품을 보시고 가사가 총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씌여졌으나 생활적인 가사에서도 사상은 명백하고 뚜렷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반복되는 후렴구의 《백년가약이 좋아》라는 표현을 《로동당이 좋아》로 고쳐주시였다.
그리하여 가사는 생활적인 맛이 나면서도 사상성이 있으며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새 세대들의 결합에 대한 축복으로 한결 더 승화되였다.
가사의 2절에서는 첫 아기를 금딸로 예언하여 형상한 부족점이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귀여운 옥동자의 출생을 가정의 큰 기쁨으로 여겨왔다고 하시면서 작가의 주관이 담긴 《금딸이겠네》라는 표현대신 《옥동자라네》라는 시구로 고쳐주시여 결혼식장에 전통적인 민족적감정이 진하게 울려나오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가사의 3절에서 《사랑만은 오늘처럼》이라는 구절을 《변함없는 사랑속에》로 표현을 바꾸어주심으로써 시적서정의 철학성을 보장하고 시문장의 운률을 음악적으로 완성시켜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가사는 오늘날 우리 인민들이 즐겨부르는 명가사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지도를 받으며 시인은 시대와 민족의 전형적인 생활감정을 일반화하는 형상방법을 배우게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지도를 받으며 창작된 생활적인 노래들이 오늘도 가정과 일터, 초소 온 나라 그 어디에서나 널리 불리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