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명작예술영화의 종자

 2021.12.13.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위대한 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창작완성된 우리 시대의 세계적인 기념비적명작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창작을 직접 발기하시고 영화의 제목으로부터 종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조과정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라는것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7권 3페지)

문학예술에서 종자란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1(1992)년 2월 3일 창작완성된 영화의 최현덕편 제1,2부를 보아주시고 영화예술부문 일군, 창작가, 예술인들과 하신 담화《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우리 시대의 기념비적대걸작으로 되여야 한다》에서 영화가 이룩한 사상예술적성과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영화의 종자에 대하여 명확히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화가 잘되려면 영화문학이 좋아야 하며 영화문학이 잘되려면 종자가 좋아야 한다고, 종자는 작품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담보하는 근본핵이라고 하시면서 작품이 1 000냥금이라면 종자는 800냥금이라고 말할수 있다. 특히 예술영화《민족과 운명》 과 같이 민족의 전체 운명과 옹근 한세기를 포괄하는 거창한 규모와 폭을 가진 대작일수록 종자를 잘 잡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나선다고, 규모가 큰 작품에 종자가 없으면 그 거창한 내용이 한줄에 꿰여지지 못한채 제가다리로 놀게 되며 나중에는 작품전체가 허물어지고만다고, 규모를 크게 잡은 작품이 대작의 풍격을 원만히 갖추자면 철학적심도가 있어야 하며 철학적심도는 종자의 심오성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계속하시여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큰 서사시적대작의 풍격에 맞게 우리 민족사에서 심오한 문제를 안고있는 무게있는 종자를 잡아쥐고 특색있게 살려나간것은 종자탐구에서 거둔 매우 귀중한 성과이라고,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제명에도 밝혀있는바와 같이 민족과 운명에 관한 문제가 이 작품의 종자이라고. 다시말하여 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운명이자 곧 개인의 운명이라는것이라고 하시였다.

민족의 운명이자 곧 개인의 운명이라는 이 종자에는 여러가지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다.

민족은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하여온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며 사회생활단위이다.

사람들은 력사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생활하면서 공동으로 운명을 개척하여왔다. 민족의 자주성이 실현되여야 개별적사람들의 운명이 개척될수 있으며 민족의 생명속에 민족의 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생명이 있다. 민족과 개인의 운명은 서로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으며 민족을 떠나서는 개인의 그 어떤 행복도 보람도 희망도 바랄수 없다.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이 철학적진리를 기구한 길을 걸어온 주인공들의 곡절많은 운명을 통하여 설득력있게 보여주고있다. 영화의 최현덕편에서 최현덕은 민족과 운명에 관한 종자를 집중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다. 최현덕의 형상은 총체적으로 군직 10년, 관직 10년, 교직 10년에 대한 심각한 인생총화와 그로부터 출로를 찾기 위한 모대김과정이라고 할수 있다. 영화에서 최현덕은 한생을 총화하면서 자기는 민족을 그처럼 사랑하느라고 하였지만 자기 운명이 민족의 운명과 모순되고 상반된다는것을 걸음걸음 절감하고 참을수 없는 불안과 심리적고통에 잠겨들게 된다. 최현덕이 한생의 총화끝에 참을수 없는 심리적번뇌와 자체모순으로 모대기게 되는것은 다름아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미제에 의하여 롱락당하게 된 사정과 관련되여있다. 대들보가 무너지면 서까래도 허물어지듯이 나라와 민족이 망하면 그속에서 사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운명도 망하기마련이다. 이것은 법칙이다.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철학적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돌이켜보면 최현덕은 한생을 민족을 위하여 싸운다고 하면서도 민족을 등지고 살아왔다. 최현덕은 조선사람인것만큼 그의 운명은 조선민족의 전체 운명과 뗄수없이 련결되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의 운명은 줄곧 민족의 운명과 상반되는 길을 걸어오게 되였다. 의식했건 못했건 이런 사람의 운명은 어차피 파멸될수밖에 없다.

그가 군직 10년, 관직 10년, 교직 10년의 반역의 생애를 상징하는 석장의 사진에 차례차례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 저주로운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는것은 바로 이런 진리를 암시하는 좋은 형상이다. 늦게나마 죽음을 각오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 북으로 갈 용단을 내리는 형상도 개인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철학적인 형상이라고 할수 있다.

민족과 운명에 관한 종자는 파면 팔수록 새롭고 의의있는 생활철학을 밝혀낼수 있는 거대한 폭과 무게를 가진 종자이다.

지금까지 세계영화사를 돌이켜보면 개인의 운명, 가정의 운명 등 개별적인 사람들, 한가정의 운명문제를 종자로 하여 만든 예술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민족성원전체의 운명을 종자로 제기하고 만든 영화는 오직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밖에 없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과 같으신 주체철학의 대가, 문학예술의 영재, 위대한 수령을 모시지 못했기때문이며 민족성원전체의 운명을 론할만 한 철학사상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런데로부터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서도 민족성원전체의 운명을 론하는 특색있는 종자를 심은 예술영화를 만들어낼수 없었다.

오직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지와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창작된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만이 민족성원전체의 운명을 취급한 세계적인 기념비적명작으로 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