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라는것입니다.》 (
문학예술에서 종자란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알맹이이다.
그러시고 계속하시여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큰 서사시적대작의 풍격에 맞게 우리 민족사에서 심오한 문제를 안고있는 무게있는 종자를 잡아쥐고 특색있게 살려나간것은 종자탐구에서 거둔 매우 귀중한 성과이라고,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제명에도 밝혀있는바와 같이 민족과 운명에 관한 문제가 이 작품의 종자이라고. 다시말하여 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운명이자 곧 개인의 운명이라는것이라고 하시였다.
민족의 운명이자 곧 개인의 운명이라는 이 종자에는 여러가지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다.
민족은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하여온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며 사회생활단위이다.
사람들은 력사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생활하면서 공동으로 운명을 개척하여왔다. 민족의 자주성이 실현되여야 개별적사람들의 운명이 개척될수 있으며 민족의 생명속에 민족의 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생명이 있다. 민족과 개인의 운명은 서로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으며 민족을 떠나서는 개인의 그 어떤 행복도 보람도 희망도 바랄수 없다.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이 철학적진리를 기구한 길을 걸어온 주인공들의 곡절많은 운명을 통하여 설득력있게 보여주고있다. 영화의 최현덕편에서 최현덕은 민족과 운명에 관한 종자를 집중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다. 최현덕의 형상은 총체적으로 군직 10년, 관직 10년, 교직 10년에 대한 심각한 인생총화와 그로부터 출로를 찾기 위한 모대김과정이라고 할수 있다. 영화에서 최현덕은 한생을 총화하면서 자기는 민족을 그처럼 사랑하느라고 하였지만 자기 운명이 민족의 운명과 모순되고 상반된다는것을 걸음걸음 절감하고 참을수 없는 불안과 심리적고통에 잠겨들게 된다. 최현덕이 한생의 총화끝에 참을수 없는 심리적번뇌와 자체모순으로 모대기게 되는것은 다름아닌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미제에 의하여 롱락당하게 된 사정과 관련되여있다. 대들보가 무너지면 서까래도 허물어지듯이 나라와 민족이 망하면 그속에서 사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운명도 망하기마련이다. 이것은 법칙이다.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철학적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돌이켜보면 최현덕은 한생을 민족을 위하여 싸운다고 하면서도 민족을 등지고 살아왔다. 최현덕은 조선사람인것만큼 그의 운명은 조선민족의 전체 운명과 뗄수없이 련결되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의 운명은 줄곧 민족의 운명과 상반되는 길을 걸어오게 되였다. 의식했건 못했건 이런 사람의 운명은 어차피 파멸될수밖에 없다.
그가 군직 10년, 관직 10년, 교직 10년의 반역의 생애를 상징하는 석장의 사진에 차례차례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 저주로운 과거와 단호히 결별하는것은 바로 이런 진리를 암시하는 좋은 형상이다. 늦게나마 죽음을 각오하고
민족과 운명에 관한 종자는 파면 팔수록 새롭고 의의있는 생활철학을 밝혀낼수 있는 거대한 폭과 무게를 가진 종자이다.
지금까지 세계영화사를 돌이켜보면 개인의 운명, 가정의 운명 등 개별적인 사람들, 한가정의 운명문제를 종자로 하여 만든 예술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민족성원전체의 운명을 종자로 제기하고 만든 영화는 오직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밖에 없다.
그것은
그런데로부터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서도 민족성원전체의 운명을 론하는 특색있는 종자를 심은 예술영화를 만들어낼수 없었다.
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