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률대학 리만수
2018.8.13.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대원수님들께서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온 나라 아이들을 무료로 공부시키며 새 교복을 해입히는것을 공화국의 영원한 시책으로 정해주시고 나라의 제일 좋은 곳에 멋있는 소년궁전과 야영소들을 지어주시고도 우리 학생소년들에게 더 좋은것을 안겨주시기 위해 늘 마음쓰시였습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온 나라 아이들을 무료로 공부시키며 새 교복을 해입히는것을 공화국의 영원한 시책으로 정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후대사랑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우리 인민들은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교복을 해입히게 된 사연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마안산에서 엄동설한에 떨고있는 아이들을 보시고 이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있는데 백장의 모포를 덮은들 내 마음이 더워질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한장뿐인 자신의 모포마저 앓고있는 아이들에게 덮어주시였으며 강반석어머님께서 림종을 앞두고 넘겨주신 소중한 돈 20원으로 혁명의 길에 쓰셔야 할 일이 많고 많으시였지만 헐벗고 굶주리는 마안산의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해입히시였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주체46(1957)년 4월 평양에서는 전국녀성열성자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가 끝난 다음날 몇몇 녀성일군들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 회의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가르쳐주신 다음 녀맹사업에서나 생활하는 과정에서 애로되는 점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이르시였다.
애로되는것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그들에게 왜 애로되는것이 없겠는가, 어려워하지 말고 허물없이 다 말하라고 거듭 이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다정한 인정미에 끌려 그들은 어려움도 잊고 제기되는 문제들을 두서없이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강원도 안변군 남계리 녀맹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께 지금은 정전직후보다 옷감도 많이 나오고 농민들의 생활도 향상되여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해입힐수 있게 되였는데 제각기 옷을 해입히다보니 겉보기가 달라서 단체로 행동할 때 학생맛이 안난다고 말씀드리였다.
비록 소박한 농촌녀성의 말이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뜸 반색을 하시면서 아주 좋은 의견이라고,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해야 한다고 하시며 제기한 내용을 몸소 수첩에 적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범한 농촌녀성의 의견을 귀중히 여기시며 곁에 앉은 일군들에게 아직 나라사정이 곤난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다 교복을 해입히지는 못해도 소학교학생들까지는 국가에서 교복을 만들어주는것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모두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해부터 국가에서 소학교학생들에게 교복을 만들어주자고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다음해인 주체47(1958)년부터 전국의 모든 소학교학생들에게 나라에서 교복을 해입히는 시책이 서게 되였으며 그후 점차 중학생, 대학생들에게까지 확대되여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는것이다.
주체52(1963)년 1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결정으로 10일간 휴식차로 황해북도에 내려가시게 되였다.
말이 휴식이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일같이 서흥, 린산, 은파 등 도안의 여러 군들을 돌아보시면서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였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린산군 대촌리의 산기슭에 있는 중학교앞을 지나시다가 차창밖으로 솜옷도 입지 못하고 길가에서 노는 몇몇 학생들을 보시였다.
차를 멈추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려 학생들을 부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학생들에게 모자를 다시 씌워주시며 춥지 않느냐고 물으시였다.
춥지 않다는 학생들의 대답을 듣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의 언손을 감싸쥐시고 그들의 잔등을 자꾸만 쓸어주시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희들에게 줄것이란 사과 몇알이 있을뿐이니 그 사과라도 받으라고 하시며 손수 학생들의 손에 사과를 쥐여주시고나서 차에 오르시였다.
달리는 차안에서 그이께서는 조용히 눈을 감으신채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한낮이 퍽 기울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심각한 표정이시니 부관은 점심식사를 하셔야 하겠다는 말씀도 선뜻 올리지 못하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서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관이 몇번이나 쉬실것을 간청드렸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지 못했는데 백날을 휴식한들 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고 하시며 도내 당 및 행정경제기관 일군들의 협의회를 해야겠으니 그들을 부르라고 이르시였다.
이리하여 다음날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일군들과 마주앉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린산군당위원장을 부르시여 군과 도에서 생산되는 천은 얼마이며 중앙에서 받는 천은 얼마이고 옷을 해입혀야 할 군내 학생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실정을 잘 모르는것을 보아 회의를 아무리 계속해도 성과가 없을것 같으니 이제부터 책임적인 일군들이 몇개 리에 내려가 구체적인 실태를 알아가지고 온 후에 회의를 다시 계속하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을 파견하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그길로 봉산군 류정리에 나가시여 밤늦게까지 농민들을 만나보시였으며 그 다음날에는 또다시 관정리를 찾으시여 형편을 료해하시였다.
마을을 떠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에 의하여 한 10일동안 쉬려고 황해북도에 왔는데 아이들이 호호 불며 오돌오돌 떠는것을 보고서야 어떻게 마음을 놓고 편히 쉴수 있겠는가고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휴식아닌 《휴식》을 도중에서 끝내고 평양으로 올라오신지 1주일후인 그해 12월 20일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솜옷과 모자를 무상으로 공급할데 대한 내각결정이 채택되였다.
위대한 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새옷을 입힐 때 제일 기뻐하시는 수령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시기 위하여 주체66(1977)년 4월 위대한 수령님 탄생 65돐을 맞으며 유치원으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일시에 새옷과 학용품들을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으로부터 당에서 아이들의 옷을 만들어 선물로 보내주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을 표시하시고 4월 12일 아침 평안남도 안주시 연풍중학교로 나가시였다.
학교에 도착한 순간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기쁨의 미소를 지으시였다.
천만송이의 꽃으로 피여난듯 고운 선물옷을 차려입고 빨간 리봉과 넥타이를 나붓기며 윤기나는 구두를 신고 가쯘하게 책가방을 든 학생들이 연풍골안을 말그대로 꽃밭처럼 만들었던것이다.
학생들의 옷차림을 살펴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직접 사진기를 드시고 온종일 새옷입은 아이들의 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60평생에 기쁜 날이 며칠 되지 않는데 오늘처럼 기쁘기는 처음이라고, 정말 마음이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마안산에서부터 시작된 아이들의 교복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년대와 년대를 이어 1994년 마지막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까지 계속되였다.
이틀간에 걸쳐 진행된 력사적인 그 회의에서는 당의 혁명적경제전략관철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풀기 위한 대책들이 토의되였다.
바로 그처럼 중요한 회의를 지도하시던 도중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경공업부문의 한 책임일군에게 전국의 유치원어린이들과 학생들의 교복생산정형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 일군으로부터 6월말까지 전국의 유치원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다 새옷을 해입혔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면서 회의참가자들은 정말 가슴뜨거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렇게 온 나라 아이들에게 해마다 새옷을 해입히는것은 우리 나라에서 전통화된 국가적시책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후대사랑을 그대로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나라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학생들에게 무조건 교복을 해입혀야 한다고 하시면서 여러차례에 걸쳐 우리 학생들의 교복과 신발, 학용품, 가방문제를 당에서 전적으로 맡아 풀겠다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 현대적인 가방용천생산공정을 새로 꾸릴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가방용천생산공정을 꾸리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직접 풀어주시였으며 학생용가방도안들도 몸소 지도해주시였다.
주체105(2016)년 1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또다시 찾으시여 공장에 새로 꾸려진 가방용천생산공정은 완전히 주체화된 생산공정, 당에서 바라는 우리 식 생산공정이라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특히 학생교복천생산에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에게 우리가 만든 질좋고 멋있는 가방을 안겨주려는것이 당의 의도이라고 하시면서 평양가방공장건설을 직접 발기하시고 형성안도 몸소 지도해주시면서 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주체106(2017)년 1월 4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평양가방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공장이 일떠선지 얼마 되지 않지만 벌써 가방사태, 가방풍년이 들었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일떠세운 공장에서 우리의 원료와 자재를 가지고 우리의 손으로 만든 가방을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에게 안겨주게 되였으니 얼마나 좋은가고, 별세상에 와본것 같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우리의 힘으로 교복과 학습장, 교과서는 물론 질좋은 가방까지 생산하여 아이들에게 안겨주는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힘겨워도 보람있는 일을 또 하나 해놓고보니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학생들에게 입힐 교복천생산문제와 소학교,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 대학의 학생들이 리용할 여러가지 형태의 남녀별과 년령심리적, 신체적특성에 따르는 가방들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모습은 진정 위대한 수령님들의 모습이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숭고한 후대사랑이 있어 우리 혁명의 미래는 창창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지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