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준(호: 일성 1859-1907)은 20세기초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한 반일애국지사이다.
그의 이름은 20세기초 우리 인민의 반일투쟁사에 자랑스럽게 빛나고있다.
어려서부터 애국심이 매우 강하였던 그는 19세기 후반기 자본주의렬강들이 우리 나라 연해에 침략선들을 침입시켜 살인과 략탈을 감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살기 위하여 죽기로 싸워야 한다.》는 13자를 써서 벽에 붙여놓고 침략자들과 끝까지 싸울것을 다짐하였다.
그는 20세기초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이 우심해지자 1904년에 대한보안회와 공진회를, 1906년에 만국청년회와 국민교육회, 신민회, 한북흥학회, 헌정연구회 등 애국적인 계몽 및 정치단체들을 조직하고 이를 통하여 대중의 반일의식을 고취하고 나라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정치활동에 헌신하였다.
리준은 1907년 구국의 큰뜻을 품고 리상설, 리위종과 함께 네데를란드의 헤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대표로서 참가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침략책동을 세계면전에서 통절히 폭로규탄하였으며 교활한 방법으로 일제의 조선침략에 동조하는 렬강들의 행태에 치솟는 분격을 터뜨리며 할복자결하였다.
그의 글로는 《생존경쟁론》, 《국혼부활론》, 《인재등용론》 등 론문들과 여러 연설문들이 있다.
《애국이란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애국이 자기가 나서자란 나라, 자기 민족에 대한 단순한 사랑인것은 아닙니다. 애국이란 말속에는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사랑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
리준이 자기의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 싸울수 있은것은 그가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에 대한 열렬한 애국심을 지녔기때문이다.
애국지사 리준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던 20세기초 일사보국(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 위국사신(나라를 위하여 한몸을 바친다는 뜻)의 결심밑에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에 한목숨 아낌없이 내대였다.
리준이 우선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에 매 개인의 삶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시 《삶과 죽음》에서 뚜렷이 표현되였다.
사람이 산다 하는것은 무엇을 산다 이르는가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않는것이 있다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못하고
잘 죽으면 도리여 영원한 삶이 있다
살고 죽는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반드시 죽고 삶을 알기에 힘쓸지어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다음의 자료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적고 사람이 적어도
그가 말하는
이것은 리준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생을 바치는것을 가장 보람있는 삶으로 여겼다는것과 그의 애국심의 기초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리준은 또한 애국을 인간이 지녀야 할 참다운 권리로, 의무로 간주하고있었다.
이에 대하여 그는 《나는 우리 국권회복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몸을 희생의 제단에 바치는 각오가 필요한줄로 아오. … 우리에게 별다른 수가 없소. 그저 죽음으로써 나라를 구해내는수밖에 없소. 이것이 우리의 희생인 동시에 우리의 권리라 생각하오. … 몸은 비록 한가지로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은 한가지로 맹세하고 만나던 못 만나던 <위국사신>의 일을 위하여 분투하기로 합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은 희생을 동반하는 간고한 투쟁이며 이 투쟁에 자기의 생을 바치는것은 모든 사람들의 의무이며 권리라는 그의 애국적립장이 반영되여있다.
리준은 또한 애국을 사람들이 간직하여야 할 마땅한 의리로 인정하였다.
의리관념은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륜리도덕의식으로서 사람들의 가치평가의 중요한 척도로 되여왔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의리를 저버린 인간은 짐승만도 못하다.》고 일러왔다.
우리 인민의 이러한 의리관념은 민족의 력사와 더불어 끊임없이 공고화되고 발전하여왔다.
그러나 지난 시기 의리관념은 해당 시기에 따르는 력사적, 계급적제한성을 내포하고있었다.
중세 우리 나라에서는 봉건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군사상과 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효성에 기초한 의리관념이 지배하고있었다. 봉건통치배들은 저들의 계급적지배와 부패타락한 생활을 도덕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하여 유교의 의리적견해를 적극 내세우고 절대화하였으며 이를 널리 류포시켰다. 그리하여 이 시기 유교적인 의리관념이 지배하게 되였으며 이는 사회발전과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커다란 해독을 끼치고있었다.
이로부터 리준은 유교의 의리관념을 비판하고 민족자주의식발전에 부합되는 애국적인 의리관념을 세울것을 주장하여나섰다.
이에 대하여 그는 《삶도 나의 원하는바요 의리도 나의 원하는 바이다. 이 두가지를 겸하여 얻을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삶에 비하여 의리를 더 귀중히 여기는 그의 의리관념이 반영되여있다. 여기서 리준이 더없이 귀중하게 내세운 의리는 세속적인 의리가 아니라 애국애족의 의리였다.
의리는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 개인과 사회적집단과의 관계에서 표현된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것은 개인과 사회적집단과의 관계에서 의리를 잘 지키는것이다. 특히 나라와 민족을 단위로 하여 인간의 운명이 개척되여나가는 조건에서 가장 포괄적인 사회적집단인 조국과 민족과의 관계에서 더욱 뚜렷이 표현되여야 한다.
리준은 이런 애국애족의 의리관념을 가지고 당시 국권회복이 초미의 과제로 나선 조건에서 개인의 운명보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더 귀중하며 따라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몸바치는것이 가장 큰 의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런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였다.
이처럼 투철한 애국심을 지닌것으로 하여 그는 만국평화회의 연단에서 《한몸을 희생하여서라도 우리 인민이 다 일본의 무의, 무도에 항거하여 최후의 한사람까지, 최후의 시각까지 그 생명을 우리 국가에 바치려는 결심이 있음을 세계만국에 대하여 실제로 보이려 하는 바이다.》고 웨치면서 자기의 배를 서슴없이 갈랐던것이다.
그가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여 일제의 침략적야망을 폭로규탄하고 할복자결한것은 애국을 마땅한 도리로 여기는 우리 인민의 의리관념을 잘 보여주었으며 그자신이 지닌 높은 애국심의 표현이였다.
리준의 애국심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생사기로에 놓여있었던 20세기초 사람들의 애국심을 계발시켜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적극 추동하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으나 외세에 의존하여서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낼수 없다는 피의 교훈도 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