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생신날

 2019.4.22.

날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속에 더더욱 사무쳐오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그리움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들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오늘도 우리 인민들은 사회주의협동벌의 포전길을 걸을 때면 풍년든 농장벌의 새벽이슬을 맞으시며 기쁨의 노래를 부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공장과 마을길을 걸을 때면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한평생 인민사랑의 머나먼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숭엄히 어려와 눈굽을 적시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한평생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명절날, 휴식일이 따로없이 그 멀고 험한 길을 걸으시고 자신의 생신날마저 그 길우에 깡그리 바치신 우리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다.

주체43(1954)년 4월 1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처음으로 맞으신 뜻깊은 생신날이였건만 그이께서는 이날도 인민들의 행복을 마련해주시려 포전길에서 보내시였다.

이른 아침 중화군 삼정농업협동조합(당시)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슬도 걷히지 않은 포전길을 걸으시며 이곳 사람들이 잘 살 방도를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웃마을에서 기계로 밀을 심는다는것을 아시고 차도 못가는 험한 길을 걸으시여 작업모습을 보아주시였고 샘터가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서는 그곳에 나가시여 험한 습지를 일일이 밟아보시며 양어장자리도 잡아주시였다.

그날 저녁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쇠였다고, 휴식이란 먹고 노는것이 아니라고, 나라일이 잘되여 마음이 즐겁고 기분이 좋으면 그것이 곧 휴식이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탄생일, 명절날은 곧 우리 인민을 돌보시는 헌신의 하루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 생신날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사업에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83(1994)년 4월 15일, 온 나라 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82돐을 뜻깊게 경축하며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였지만 그이께서는 이날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자신의 정력을 깡그리 바치시였다.

그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절을 맞는 우리 인민들에게 어떻게 하나 한가지라도 더 색다른것을 마련해주시려고 마음쓰시였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탄생일을 축하하려고 오는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국가 및 정부수반들, 당수들, 대통령특사들, 외국인들을 만나시느라 분분초초를 쪼개가시며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그러시다나니 생신날에도 사업부담이 너무 많아 몹시 피로해하시였지만 그 다음날도 또다시 일감을 잡으시였다.

휴식을 하실것을 간청드리는 한 일군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도 쉬고픈 때가 많다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안을 거니시다가 정말 이제는 나이 80살을 넘기고보니 일이 힘들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편히 휴식을 하고싶다고,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것이 인민들의 생활이 높아지지 못하는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은 아무리 힘들어도 인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자주 현지지도를 하신다고, 일군들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언제나 인민들부터 먼저 생각하여야 하며 인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자신께서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10대, 20대인 한창나이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고생을 하였다고, 그러다보니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힘이 드는것 같다고, 그러나 인민들을 더 잘 먹이고 더 잘 살게 하기 위해 현지지도를 계속하고있다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는 일군은 끝내 오열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북받치는 격정으로 어깨를 들먹이는 일군을 달래시며 그이께서는 이민위천은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자신께서는 지난 시기에도 그러하였던것처럼 앞으로도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고 한생을 인민을 위해 바치려고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을 위한 길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기에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나날 인민들이 보면 가슴아파한다고 하시며 지팽이를 차에 두고 내리시여 불편하신 몸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것이 아니겠는가.

진정 자신의 심장을 초불처럼 태워 조국을 빛내이고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시려는 숭고한 념원을 안으시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인생의 락으로 여기시며 자신의 생신날마저 인민을 위해 깡그리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민을 위한 한평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