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 발굴된 고구려돌칸흙무덤

 2023.5.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이다.

조선로동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오늘 조선에서는 민족문화유산발굴사업과 보호사업이 전군중적으로 활발히 벌어지고있다.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는 고대시기의 고인돌무덤들과 고구려시기와 고조선유민들이 리용하던 소금생산유적을 비롯하여 귀중한 력사유적들이 조사발굴되였다.

원읍로동자구에서 력사유적들에 대한 조사사업을 심화시키는 과정에 돌칸흙무덤도 새로 발굴하였다.

돌칸흙무덤은 온천군 원읍구의 상석소로 불리우는 재등에 있는데 북동쪽으로 멀지 않은 바다가에는 조선후국시기와 고구려시기의 소금생산유적들이 있다.

돌칸흙무덤의 무덤칸은 남북방향으로 되여있었고 무덤칸의 평면구조는 장방형이다.

온천군 원읍로동자구 고구려돌칸흙무덤 실측도
그림. 온천군 원읍로동자구 고구려돌칸흙무덤 실측도

무덤칸의 동벽, 서벽, 북벽은 두께가 18~20cm정도 되는 통판돌들이 한장씩 세워져있고 바닥에는 7~9cm두께의 납작한 판돌들이 깔려있었다.

동쪽벽과 서쪽벽에 세워진 판돌들은 북쪽벽에 세워진 판돌의 량끝에서 안쪽으로 각각 8~10cm정도 들어와 세워져있다.

무덤칸의 너비는 133cm이고 길이는 205cm이며 북쪽벽과 서쪽벽에 세워진 판돌들밑에는 벽체의 기초돌이라고 볼수 있는 작은 판돌들이 깔려있었다.

돌칸흙무덤은 고구려시기의 문화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무덤형식이다.

고구려돌칸흙무덤들가운데 무덤칸의 벽면들을 통판돌로 세워서 만든 무덤으로는 고국원왕릉(안악3호무덤)과 강서세무덤의 중무덤, 큰무덤들을 대표적으로 들수 있다.

이밖에 강동군 순창리일대에서 알려진 규모가 작은 돌칸흙무덤들가운데도 통판돌을 세워 벽면을 만든 무덤들이 알려졌다.

대성동고구려무덤떼에 속한 고구려무덤들에서도 무덤칸의 벽면을 긴 통판돌로 세워 만든 무덤들이 발견되였다.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 발굴된 돌칸흙무덤은 무덤길이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외칸무덤이다. 이 무덤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무덤으로는 남포시 룡강군 옥도리무덤떼의 여러 무덤들과 우산리4호무덤, 신령리무덤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무덤들은 고구려돌칸흙무덤의 외칸무덤들가운데서 2형식과 3형식에 해당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 발굴된 돌칸흙무덤이 고구려시기의 돌칸흙무덤들과 같은 형식의 구조를 갖춘 무덤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무덤길에 감이 없는 외칸무덤들가운데서 평천정에 치우친 안길을 가진 무덤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무덤들이다. 이러한 무덤들이 쓰인 시기를 선행연구성과들에서는 1세기 후반기~5세기경으로 보고있다.

결국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 발굴된 돌칸흙무덤은 고구려시기에 해당되는 5세기이전에 축조된 무덤이라고 볼수 있다.

원읍로동자구에는 고구려시기와 고조선유민들이 리용하던 소금생산유적들이 있고 90여개의 고인돌무덤들과 고대집자리유적들이 분포되여있으며 이 일대의 여러 지역에서는 새김무늬질그릇쪼각들과 팽이그릇쪼각들을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와 고대시기의 유물산포지들이 확인되였다.

또한 원읍로동자구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궁산유적이 있고 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는 고조선시기의 성현리토성이 있다.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유적인 궁산유적에서는 석고가 묻은 질그릇쪼각들이 일부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소금생산과정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읍로동자구를 중심으로 약 4km정도의 령역에 신석기시대로부터 고구려시기에 이르는 소금생산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들이 조밀하게 분포되여있는것은 소금생산과 중요하게 관련된것이라고 볼수 있다.

온천군은 해비침률과 기온이 높고 바람이 세게 불기때문에 증발량이 많아 소금생산에 매우 유리한 지역으로서 여기에는 우리 나라 제염공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규모의 소금생산지들인 원읍로동자구의 광량만제염소를 비롯한 귀성제염소, 금성제염소, 운하제염소 등이 있다.

소금은 사람들의 생활에 절실히 필요할뿐 아니라 경제생활의 여러 부문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원의 하나이다.

때문에 지난날 소금은 봉건통치배들이 인민들을 착취하며 국가의 재정수입을 보충하기 위한 중요한 대상의 하나로 되였으며 전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식량과 함께 전략물자로 취급되였다.

대무신왕 13(A.D.30)년에 이미 옥저가 신하로 되였고 소금을 조세로 고구려에 바쳤고 고려에서 13세기경부터는 염세별감들이 나라의 소금생산과 세금을 통제하였으며 소금을 전문생산하는 호(집)들과 소금을 거두어 저장하는 창고들을 설치하였다는 등 옛 문헌기록자료들은 소금생산과 판매, 리용을 봉건국가가 직접적으로 관할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돌칸흙무덤은 구조형식에 있어서 고구려시기 봉건관리들의 무덤으로서 이 지역에서 발굴된 고구려시기의 소금생산유적과 련관시켜보아야 한다.

고구려돌칸흙무덤을 비롯하여 온천군 원읍로동자구에서 조사발굴된 력사유적유물들은 이 지역이 소금생산을 위한 중요한 거점이였으며 우리 나라에서 소금생산의 력사를 밝히는데서 중요한 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