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선군조선의 정신과 기상이 응축되여있는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입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선군조선의 정신과 기상이 응축되여있는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조종의 산으로 숭상하여온 백두산에는 일제강점시기 조선을 구원할 탁월한 위인의 출현을 애타게 기원하여 우리 선조들이 세웠던 종덕사도 있었다.
종덕사는 천불교인들이 백두산천지호반의 북쪽끝인 달문주변에 세웠던 절이였다.
종덕사는 일제의 강도적인 《을사5조약》의 날조로 국권이 강탈당한 이듬해인 1906년에 세워졌다.
1931년에 출판된 《백두산등척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에는 백두산천지호반에 세워졌던 종덕사의 사진과 함께 이 절간을 돌아보고 남긴 당시 사람들의 기록들이 있다.
그에 의하면 당시 종덕사에는 병오년 즉 1906년 6월 6일이라는 준공날자와 도목수들의 이름들이 새겨져있었다.
종덕사건물은 모두 나무로 지었는데 무려 99칸이나 되였다고 한다.
절간의 기본건물의 제일 가운데에는 내당이 있었고 그 둘레로 8칸, 16칸, 32칸 즉 2배씩 늘어나게 배치된 방들이 있었다.
건물의 남쪽과 서쪽 정면에는 《종덕사》(宗德寺)라는 현판이 걸려있었고 동쪽에는 《호천금궐상제전》(昊天金闕上帝殿), 《대원당》(大元堂)이라고 쓴 현판이 있었으며 북쪽에는 《백두산 대택수 종덕사》(白頭山大澤水宗德寺)라고 쓴 현판이 있었다. 내당에는 《옥황상제천불위》(玉皇上帝天佛位)라고 쓴 위패도 있었다.
여기서 《호천금궐상제전》은 하늘의 신이 있는 궁전이라는 뜻으로서 바로 백두산천지에 옥황상제의 정기가 깃들어있다는 뜻을 담고있다.
《옥황상제천불위》라고 쓴 위패의 글은 이 절간이 하늘의 왕인 옥황상제에게 기도를 드리는 곳이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예로부터 백두산주변에서 살고있던 우리 선조들속에서는 하늘에 있는 천궁의 왕인 옥황상제가 지상을 굽어보면서 땅우에서 가장 아름답고 장엄하며 깨끗하고 신성한 호수를 하나 골라서 거기에 99명의 선녀들을 내려보내여 미역을 감게 하군 하였는데 그 호수가 바로 백두산천지였다는 전설이 전해져왔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침략책동이 더욱더 로골화되고 우리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자 한때 국권회복을 위하여 싸우던 민족주의자들은 만주지방의 내도산을 비롯한 백두산이 바라보이는 산간오지로 들어가 왜놈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조선사람들에게는 복을 내려달라고 백두산천기에 빌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하는 천불교를 만들었다.
이렇게 일제의 침략책동이 날을 따라 더욱 악랄해지고 나라와 민족의 생사존망이 우려되던 20세기초에 백두산주변의 조선사람들은 천지호반에 절간을 세우고 그곳에 찾아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뛰여난 위인이 출현하게 해줄것을 기원하여 옥황상제에게 기도를 드리군 하였다.
천불교신자들은 그러한 신앙심으로부터 백두산천지호반에 세운 절간의 이름을 남에게 은덕이 될 일을 한다는 뜻을 담은 종덕(宗德)이라는 말을 붙여 종덕사라고 하였던것이다.
이처럼 종덕사는 백두산을 조종의 산으로 숭상하여온 우리 민족의 넋이 반영되여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