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쟁의 불길속에서 인민들의 세기적념원을 꽃피우시려

 2020.8.1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몇해전 어느 한 나라의 사회단체는 인터네트홈페지에 《조선-무상치료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인류가 오래전부터 갈망하여온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창조하고 향유하려던 소망이 조선에서 현실로 꽃펴나고있다. 완전하고도 전반적인 무상치료제, 이것이 조선에서 실시되고있는 인민적보건시책이다.》라는 글을 실었다.

평범한 근로인민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되고 병이 나도 돈 한푼 내지 않고 치료를 받는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찬탄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속에 우리 인민은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그처럼 어려웠던 전화의 나날에 인민의 세기적념원을 현실로 꽃피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게 된다.

조국의 한치의 땅을 피로써 사수하기 위한 가렬한 전투가 계속되던 주체41(1952)년 1월 20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건상을 비롯한 여러 보건일군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여 인민들로부터 치료비를 받는 비률이 얼마인가고 물으시였다.

적들의 세균전만행에 대한 투쟁대책과 관련한 의견을 주실줄로만 알고있었던 일군들은 너무도 뜻밖의 물으심에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있었다. 잠시후 한 일군이 로동자, 사무원들은 국가사회보험제에 의하여 무상으로 치료를 받고있지만 농민들과 개인상공업자들에게서는 극히 적은 외래치료비를 받으며 로동자, 사무원, 부양가족들에게서는 외래약값을 40%정도 받는다고 사실그대로 보고드리였다.

일군의 보고를 다 들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해부터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는것은 단순한 행정실무적인 사업이 아니라 우리 인민들의 세기적념원을 실현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사업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서로 마주볼뿐 아무 말도 못하였다. 해방전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돈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안고온 어린 자식들을 동정하여 치료해주고는 그 적자를 메꾸기 위하여 가산까지 팔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들이였기에 무상치료라는것이 얼마나 큰 재정적부담을 상징하는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더우기 전쟁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국가에 한푼의 돈이 더없이 귀중한 전시조건에서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한다는것은 말그대로 상상밖의 일이 아닐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놀라움과 격정에 휩싸여있는 일군들에게 아무리 국가부담이 크고 난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선과 후방에서 전쟁의 최후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고있는 인민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전체 인민들에게 무상치료제를 실시하자고 다시금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보건성책임일군들이 재정예산과 물질기술적준비를 잘 타산하여 하루빨리 무상치료제를 전반적으로 실시할수 있도록 그 준비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한 1년동안 계획하고 그 준비를 다그칠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풀려나가지 않았다. 우리 혁명대오에 잠입해있던 불순이색분자들은 《사회주의개조가 실현되기 전에 무상치료제를 어떻게 먼저 실시하는가》, 《의사도, 약도 다 부족한데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선포하면 뭘하는가》고 하면서 악랄하게 반대해나섰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돈이 부족한데 무상치료제를 뒤로 미룰수 없겠는가》고 걱정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보건부문에서는 다른 나라에서처럼 병원과 약국을 분리시켜 국가의 재정적부담을 줄이자는 의견도 제기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10월 2일 보건성일군을 또다시 부르시여 전반적무상치료제실시를 위한 준비정형을 하나하나 료해하시면서 다른 나라를 본따서 병원과 약국을 분리시키려는 분리주의적경향에 대하여 엄하게 지적하시였다.

원래 병원과 약국을 분리시키는것은 순수 돈벌이를 위주로 하는 낡은 방식이며 일제식민지통치의 유물로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의료방법에도 맞지 않는것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의원들이 환자의 병을 보아주고 그 자리에서 약을 지어주는것이 전통으로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나라에서처럼 병원과 약국을 분리시켜놓고 병원에서는 병을 진찰하고 처방만 떼주고 약은 약국에 가서 타게 하는것은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게 하는 옳지 않은 의료방법이며 이러한 행위는 우리 제도에 해를 준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의사, 약제사들은 환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인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순간 일군은 전반적무상치료제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지 못하고 국가의 재정적부담을 줄일수 있다는 한가지생각으로 다른 나라에서처럼 병원과 약국을 분리시키려는 분파주의적경향을 묵인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머리를 들수 없었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사업에 늘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필요한 자금과 물질적보장대책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전쟁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보건부문에 대한 국가예산이 전쟁전수준을 훨씬 넘어서게 되였으며 병원들의 침대수는 전쟁전의 2배이상으로, 외래치료기관수도 전쟁전수준을 넘어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상치료제의 실시를 위한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갖추신데 기초하여 주체41(1952)년 11월 13일에는 내각 제22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다음해부터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할데 대한 내각결정 제203호 《전반적무상치료제도를 실시할데 관하여》를 세상에 공포하도록 하시였다.

내각결정 제203호가 공포됨으로써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전쟁시기에 아직 그 어느 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할수 있는 법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전시환경에서의 전반적무상치료제의 실시, 이것은 오로지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인민을 위해서는 이 세상의 천만금도 아끼지 않으시는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력사에 없는 대용단이였다.

력사상 처음으로 전반적무상치료제의 혜택을 받아안게 된 우리 인민은 조상대대로 꿈꾸어오던 소망을 어버이수령님께서 풀어주시였다고 뜨거운 격정의 눈물을 흘리며 수령님께 가장 뜨거운 감사를 드리였으며 고마운 조국을 피로써 사수할 불같은 맹세를 안고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전승의 기적을 안아왔다.

오랜 세월 우리 인민이 그처럼 바라던 무상치료에 대한 세기적숙망은 이렇게 실현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