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국내성(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의 동쪽언덕에는 광개토왕릉비가 있다.
광개토왕(재위 391~412년)이라는 이름자체에는 나라의 령토를 넓힌 왕이라는 뜻이 담겨져있다.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의 력사발전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를 열어 놓은 그의 공적을 찬양하여 고구려사람들이 그가 사망한 2년후인 414년에 세운 기공비(공적을 기록하여 놓은 비석 임)이다.
광개토왕릉비의 주변에는 고구려시기의 유적들이 적지 않게 분포되여있다.
《광개토왕릉비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비가운데서 제일 오래고 가장 큰것으로서 비문에 담겨진 내용의 풍부성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되고있으며 고구려사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세 나라 호상관계사, 우리 나라 대외관계사를 연구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사료로 되고있습니다.》 (
광개토왕릉비는 우리 민족이 직접 자기의 손으로 써서 세워놓은 금석문유산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비가운데서 가장 크고 제일 오랜것이다.
그 웅장한 규모, 비문에 씌여진 세 나라 호상관계, 우리 나라의 대외관계와 관련한 사료적가치, 간결한 문장과 엄정하고도 원숙한 예서글씨 등으로 하여 이 릉비는 세계적으로도 자랑할만 한 력사유적으로 된다.
릉비는 비몸과 받침돌의 두개 부분으로 되여있다.
받침돌은 비몸을 받치는 돌로서 잘 다듬은 화강암판돌로 되였으며 길이는 3.35m, 너비2.7m, 두께 0.2m이다.
비몸으로 리용한 석재는 응회암이며 그 높이는 6.34m이다.
비몸이 세워진 방향은 제1면은 동남방향이며 제3면은 서북방향이고 제2면은 서남방향, 제4면은 동북방향으로 되여있다.
비몸의 밑면너비는 제1면 1.53m, 제2면 1.3m, 제3면 1.9m, 제4면 1.43m로 매 면은 각각 글자를 새길수 있도록 크게 두드러져 나온 부분만 떼여 내서 대체로 평평한 표면을 만들었으며 정밀하게 가공하는 방법을 적용하지 않고 자연미를 될수록 살리였다.
현재 비몸에는 균렬선이 있는데 제1면과 제2면이 가장 심하다.
1면에는 하부 좌측에 1.25m정도 균렬선이 2개 있는데 균렬선의 깊이는 그리 심하지 않다. 제2면에도 좌측 하부에 균렬선이 있으며 우측은 2.2m의 높이에 작은 균렬선이 하나있다.
비몸의 모든 면에는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매 글자는 크기와 간격을 고르롭게 하기 위하여 가로세로 가는줄을 친 네모방정한 정방형안에 음각으로 새겼다.
글자는 제1면에는 11행, 제 2면에는 10행, 제 3면에는 14행, 제 4면에는 9행으로서 모두 44행이다.
그리고 제2면 9~10행, 제 1면 1행에는 비면이 고르지 못하여 처음부터 새기지 않은 개소들도 있다.
결국 글자수는 약 1 800자로서 그중에서 알아볼수 있는 글자는 1 534자이고 애매하거나 전혀 보이지 않는 글자는 266자이다.
현재 비는 자그마한 비각안에 세워져있다.
비문내용은 크게 3개의 문단으로 되였는데 제1문단은 서문으로서 고구려시조 동명왕이 나라를 세운 경위와 그후 력대 왕들의 계승관계, 광개토왕이 즉위하여 고구려의 국가적위력을 크게 떨친 공적, 그가 죽은 후에 산릉을 쌓고 릉비를 세우게 된 유래를 기록하였다.
제2문단은 릉비의 본문으로서 광개토왕의 업적을 년대별, 사건별로 서술하였다. 즉 북방으로는 비려, 식신, 동부여를 징벌하여 령토를 크게 넓힌 사실, 남방으로는 백제, 가야의 많은 성들과 지역을 차지한 내용 그리고 신라를 위협하던 왜를 징벌하고 신라를 도와주는 동시에 더 강하게 끌어당김으로써 삼국통일위업을 크게 다그치고 세 나라관계에서 주동적역할을 한데 대하여 기록하였다.
제3문단은 비문의 마지막부문으로서 왕릉을 관리하고 지키는 수묘인들의 구성과 그와 관련한 여러가지 조치를 기록하였다.
광개토왕릉비는 많은 서예가들과 금석학, 고고학, 고문자학부문의 연구자들의 관심사로 되여 연구가 진행되였다.
특히 비문내용은 내외의 력사기록에는 전혀 없는 많은 력사적사실들이 기록되여있기때문에 고구려력사는 물론 당시 주변나라들의 력사를 정확히 리해하고 체계화하는데서 기본사료의 하나로 되고있는 귀중한 금석문유산이다.
광개토왕릉비에는 릉비건립년대, 왕의 년령에 관한 기사, 고구려와 백제관계, 고구려와 신라관계, 백제와 신라관계, 백제와 왜관계, 고구려와 왜관계, 신라와 왜관계, 그 밖에 주변나라들과의 관계기사들이 기록되여있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세 나라관계 력사문헌들의 오유와 루락을 시정보충하고 력사를 정확히 리해하고 체계화하는데 귀중한 사료로 된다.
이처럼 광개토왕릉비는 비문의 방대한 내용과 비석의 웅장성에 있어서 단연 으뜸가는 귀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며 고구려사와 세 나라시기력사, 초기조일관계사에 귀중한 력사적자료를 제공해주는 금석문유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