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후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며

 2019.10.2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후대들을 위하여서는 모든것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38권 242페지)

평양의 풍치수려한 장대재우에 자리잡고있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는 우리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내세워주시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억만금도 아끼지 않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돌려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평양학생소년궁전창립행사를 성대히 가진것은 주체52(1963)년 9월 30일이였다.

당시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이미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방향대로 건물을 세우고 내부를 꾸리는 일은 거의 마감단계에서 진행되고있었지만 학생소년들의 과외활동을 조직하고 궁전을 운영해나가는데는 누구도 해보지 못한 큰 일이여서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나오시여 궁전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궁전의 소조실들과 활동실들을 돌아보시고 13층탑의 전망대에 오르시였다.

어느덧 어둠이 깃들어 황홀한 불야경을 이룬 평양의 거리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소년궁전이 대단한 건물이라고 설계가 잘되였다고 치하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곁에서 평양의 밤거리를 바라보는 한 일군의 머리에는 벌써 오래전부터 평양시의 경치좋고 전망좋은 명당자리를 궁전터전으로 잡아주시고 설계와 건설을 지도하시여 세계1등급의 웅장하고도 화려한 학생소년궁전을 세우기까지의 감격적인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학생소년궁전이 설계도면우에 그려지기 시작한것은 주체45(1956)년부터였다.

그때만 하여도 우리 나라형편은 아직 어려웠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소년들을 위하여 평양과 개성에 궁전을 지워주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설계일군들이 크게 마음먹고 도면을 그리였으나 초기에는 궁전의 총건평을 8 200m2밖에 예견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 설계도를 검토하시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넘겨줄 궁전을 더 크게, 더 훌륭하게 짓자고 하시면서 8 200m2가 아니라 그의 5배도 넘는 5만m2의 대건축물을 설계하도록 하시였다.

설계가 끝나고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것은 1960년부터였다.

그런데 궁전건설은 그 규모에 있어서 방대할뿐만아니라 처음 해보는 공사인것만큼 가끔 일이 지연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뜻밖의 애로에 부닥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막힌 고리를 풀어주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궁전건설을 위한 어려운 기초공사와 축조작업이 한창이던 주체50(1961)년 4월 어느날 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시인민위원회와 시건설위원회 책임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들이 도착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이 깊었는데 오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건설형편에 대하여 들으시고 궁전건설이 빨리 진척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걱정하시면서 오래동안 궁전의 모형을 여러모로 살펴보시고 건설을 빨리 추진시킬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를 가르쳐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 궁전건설이 잘되는가 하는것을 알아보시였고 주체50(1961)년 10월 13일에는 건설현장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그때 건설장에서는 본관과 체육관의 벽체쌓기가 끝나가고 탑부분과 극장부분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계도를 검토하실 때도 건물의 형성에 대하여 여러차례 방향을 잡아주시였던 탑부분을 시내 어디에서 보나 보기좋게 잘 건설하라고 이르시고 널려있는 건설부재들을 더듬으시며 본관옥상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궁전자리가 참 좋다고 하시면서 궁전을 만년대계의 건물로 잘 짓자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건설장에서는 거대한 혁신이 일어났고 그이의 높은 뜻을 받들고 온 나라 인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궁전건설장으로 쏠리였다.

그리하여 그해 12월말까지 궁전건설 제1계단공사가 끝나게 되였다.

그런데 이렇게 건물을 세우는 공사는 거의 끝나가고있었지만 아직도 어려운 일이 남아있었다.

건설된 궁전안을 꾸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설비기자재와 함께 정밀한 기술이 필요했을뿐만아니라 그처럼 큰 건물을 어떻게 해야 학생과외교양기지로 잘 꾸릴수 있겠는가 하는 방향을 바로잡는것이 중요하였다.

궁전이 이러한 단계에 있을 때 건설이 먼저 끝난 궁전체육관에서 시내 학생소년들의 설맞이모임을 가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소년들의 설맞이모임에 참가하시고나서 궁전의 내부설비를 갖출 방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면서 걸렸던 문제들을 모두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 중앙기관, 기업소 책임일군들에게 후대들을 위하여 증산과 절약으로 궁전의 내부설비를 보장하여주고 잘 꾸리기 위한 사회적인 지원을 광범히 전개하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높이 받들고 수많은 기관, 기업소들에서 한 부문씩 맡아가지고 로력을 내고, 기술을 내고, 자재를 내면서 서로앞을 다투어 궁전을 꾸려나갔다.

그리하여 하루에 1만명이상의 학생소년들이 그 어떤 과학기술부문이건, 예술부문이건, 체육부문이건 자기들의 희망에 따라 마음껏 재능을 키우며 뛰놀고 즐길수 있도록 200여개의 소조실들과 활동실들이 단시일내에 훌륭히 갖추어지게 되였다.

조국의 미래인 후대교양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과 세심한 배려에 의하여 륭성번영하는 로동당시대의 기념비적건물의 하나인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자랑차고 웅대한 모습을 수도의 창공높이 시위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깊도록 궁전의 내부를 일일이 돌아보시고나서 휴계실에서 학생소년궁전의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궁전을 더 잘 꾸리고 운영하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의 연건평이 기계공장 몇개 건평에 맞먹는 대단히 큰 건물이고 학생소년궁전건설에 든 자금만 하여도 수백만원에 달하지만 학생소년들을 훌륭하게 키울수만 있다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이런데서 배우면 아이들이 명랑해지고 활발해지며 구상이 깊어지고 집단주의정신으로 교양된다고 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궁전이 나아갈 길을 명확히 밝혀주시고 궁전일군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많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평양학생소년궁전창립의 첫날은 이렇게 의의깊은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구하기 힘든 동식물표본들과 중요한 실험기구들을 비롯하여 궁전운영에 필요한 많은 교편물들을 여러차례 보내주시였다.

또한 공장이나 농촌을 현지지도하시는 길에서도 새로운 제품들과 학생교양에 가치있는 물건들을 보시면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보내주도록 하신것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학생소년궁전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을뿐만아니라 한해에도 여러차례씩 몸소 궁전을 찾아주시면서 어느 한 모퉁이에라도 빈틈이 있을세라 보살펴주시고 학생교육교양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까지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속에 우리 어린이들은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나라의 왕으로 떠받들리우며 혁명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혁명의 믿음직한 역군들로 억세게 자라날수 있었다.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위대한 장군님의 보살피심속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아이들의 궁전으로 자랑떨치였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따사로운 해빛아래 우리 아이들의 행복의 요람으로 세상에 더욱 빛을 뿌리고있다.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앞으로도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를 랑랑히 울리며 학생소년들을 나라의 기둥감들로 키워내는데 적극 이바지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