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사시장철 푸르러 사람들에게 불굴의 의지와 억센 기상을 안겨주어 더 보기 좋은것 같습니다.》
소나무에는 조선민족의 넋과 기상, 전통과 력사, 조선인민의 민족적정서와 심리, 감정이 그대로 체현되여있다.
조선사람치고 소나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이름난 화가치고 푸른 소나무의 모습을 화폭에 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선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특별히 소나무를 널리 심고 가꾸면서 소나무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살아왔다. 그것은 소나무의 리용가치때문만이 아니라 맵짠 추위속에서 푸른 잎새 변치 않는 장한 모습이 우리 민족의 굴할줄 모르는 기개와 강인한 의지를 그대로 닮은데 있다고 보았기때문이다.
조선민족은 찬서리를 이겨내며 사시장철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를 강의한 조선사람들의 민족적기상과 굳센 절개와 의지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력대로 소나무는 조선에서 가장 흔한 나무로서 야산들에 소나무가 푸른 숲을 이루고있는 경치는 사람들속에서 전형적인 자연미로 인식되여왔으며 그만큼 조선인민의 정서생활과 깊이 련관되여있었다.
소나무를 의지와 절개, 신념의 상징으로 그리고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온 조선인민은 력대로 매우 운치있는 소나무그림을 적지 않게 남겨놓았다.
소나무가 예술작품의 기본주제로 되였다는데 대하여 어느한 외국인은 《소나무는 조선의 예술에서는 변할수 없는 주제이고 전설과 민화에서 큰 역할을 놀고있다.》고 하면서 그 원인은 《소나무는 사철푸른 나무이기때문에 영원한 생의 상징》으로 조선사람들이 간주하고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조선에서 소나무가 미술작품의 소재로 된 력사는 매우 오래다.
현재 전해오는 자료에 의하더라도 소나무그림은 이미 삼국시기부터 그려지고있었다.
소나무를 형상한 회화작품들은 우선 고구려의 여러 무덤벽화들에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특히 고구려인민들은 중세동방미술의 대걸작인 고구려무덤벽화들에 사신도와 각종 무늬들은 물론 소나무를 생동하게 형상하여 자기들의 정서와 미적감정을 조형예술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그 대표적인것이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에 있는 돌칸흙무덤인 룡산리1호무덤과 4호무덤의 소나무그림이다.
당시 사람들은 소나무를 그리는데서 곧게 자란 소나무보다는 풍상고초를 다 겪으며 억세게 자란 소나무를 그림의 기본소재로 삼군 하였다.
발해사람들은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여 소나무그림을 잘 그리였다.
조선의 실학자인 한치윤(1765-1814)은 《해동역사》에 인용한 《화사회요》에서 발해유민인 대간지가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풍경을 잘 그렸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발해사람들이 소나무그림을 즐겨 그리였던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후기신라에서도 회화작품들에서 소나무를 중요한 형상대상으로 삼아왔다.
소나무는 고려시기에 들어오면서 더욱 사랑받는 예술작품의 소재, 묘사대상으로 되였다. 그것은 고려시조인 왕건왕릉의 벽화에 그려진 소나무를 통하여 잘 알수 있다.
여기에는 당시 사람들의 미적정서와 정신세계를 반영하여 소나무, 매화, 참대가 그려져있다. 왕릉벽화의 서쪽그림에서 기본주제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다 겪으며 억세게 자라는 소나무이다. 소나무그림은 많은 의미를 담고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오면서 소나무는 다양한 미술작품들에서 기본소재로 되였으며 민족의 강인한 정서를 배양하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소나무를 주제로 한 미술작품들은 크게 3부류로 나눌수 있다.
한 부류는 산수화나 풍경화, 화조령모화에서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산천을 그리면서 자연풍경의 전형을 이루었던 소나무를 그림의 기본소재로 많이 그린것이다.
다른 부류는 소나무를 대상으로 평온과 사색의 정서를 키우며 정신적수양을 배양하는 모습을 인물풍속화나 조령모화에서 기본소재로 삼아 그린 작품들을 들수 있다.
이러한 주제의 대표적인 화가와 명작으로는 리상좌(1465-?)의 《송하보월도》, 김홍도(1760-?)의 《송하취생도》, 리인문(1745-1821)의 《송계한담도》, 리린상(1710-1760)의 《송화판폭도》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한결같이 억세게 자란 소나무아래 사람들이 편안하게 앉거나 서서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을 부감하며 시정에 잠긴듯한 평온한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소나무와 같이 굳은 절개와 의지를 지니고 꿋꿋이 살려는 정서적감정을 강조해주고있다.
또 다른 부류는 《농민생활도》나 풍경화들에서 집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정히 자래워온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있는것이다.
15세기초 안견의 산수화 《늦은 봄》, 19세기 허린의 산수화 《산골살이》, 그밖의 여러 작품들에서는 소나무그늘밑에서 여러가지 유희오락이나 거문고를 타며 즐기는 인물화를 그렸으며 18세기의 작품인 《농촌생활도》의 마당질장면에서는 집뜨락에 오래 자란 두그루의 소나무가 대칭을 이루면서 아름차게 자란 모습이 잘 형상되여있다. 이 그림을 통해서도 조선사람들속에서 집에 소나무를 심는것이 하나의 풍속으로 되여있었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이러한 장면은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흔히 찾아볼수 있다.
그밖에 《소나무와 호랑이》, 《소나무와 꿩》 등의 명작품들이 있다.
이처럼 조선민족은 찬서리, 눈바람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절개와 의지를 지키는 소나무를 미술작품의 주요소재로 삼고 즐겨그리면서 정신과 마음, 육체를 단련하며 꿋꿋이 살아왔으며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지켜왔다.
소나무를 형상한 미술작품들은 예로부터 소나무가 우리 민족의 넋과 기상의 상징이며 우리 민족의 생활정서와 밀착되여있었고 소나무에 대한 애착의 감정이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간직해온 뿌리깊은 민족적감정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는것으로 하여 더욱 귀중한 조선민족의 문화유산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