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인민의 심금을 울린 하모니카소리

 2022.4.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절세의 위인이시며 우리 민족의 어버이이실뿐아니라 온 세계가 공인하는 인류의 태양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347페지)

태양절을 맞이하는 조선인민은 조선혁명을 령도하시는 장구한 기간 열렬한 사랑으로 인민을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켜 이 땅우에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에 대하여 뜨겁게 돌이켜보게 된다.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혁명투쟁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인민에 대한 진실한 정과 사랑으로 풀어나가신 어버이수령님의 위인적풍모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한가지 사실을 놓고도 알수 있다.

제1차 북만원정의 초시기 녕안사람들은 혁명군에 대하여 오해와 불신을 앞세우면서 대원들에게 밥조차 잘 지어주려 하지 않았으며 원정대원들이 멀리서 나타나면 《고려홍군》이 왔다면서 무작정 동네에 나가 돌아다니는 아녀자들을 불러들이고 문부터 닫아걸었다.

혁명군은 얼마동안 밥도 한지에서 지어먹고 잠도 한지에서 자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이것은 간도에서는 전혀 체험해볼수 없었던 생소한 현상이였다. 혁명군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마다 동만사람들은 떼를 지어 달려나와 북과 징을 두드리면서 박수도 쳐주고 가슴에 꽃다발도 안겨주었다. 더운물을 떠주고 풋강냉이를 쥐여주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솔대문까지 세워 군인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녕안에서는 정치사업을 하려고 군중들을 모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좀처럼 응해주지 않아 시국강연조차 할수 없었다.

가장 심각한 고충으로 되는것은 북만인민들에게 혁명의 씨앗을 심어주려고 한 원정대의 중요한 원정목적을 달성할수 없게 된것이였다. 인민들이 정녕 혁명군에 곁을 주지 않는다면 원정대가 북만을 혁명화하는 길은 영영 막히게 되는것이였다.

팔도하자의 한 부락에 파견되였던 정치공작조에는 한다하는 선전선동명수들이 망라되여있었지만 그곳 인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어떤 대원들은 녕안사람들이 본래부터 그런 랭혈인들이라고 단정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공작조의 잘못이 무작정 인민을 가르치려 한데 있다고 보시였다.

인민의 심장속깊이에로 침투하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지만 그 심장이 받아들이는 통행증은 단 한가지밖에 없으니 그것이 바로 진심이다, 진심만이 우리의 피와 인민의 피를 하나의 동맥속에 융합시킬수 있다, 진심으로 인민의 아들이 되고 손자가 되고 형제가 되여 군중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녕안땅에서 영영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될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뜻이였다.

정치공작조의 실책은 바로 인민에게 그런 진정을 바치지 않은데 있었다. 그들은 북만사람들을 혁명화해야겠다는 실무적인 목적만 생각하였지 인민들에게 정을 주고 친숙해지려는 궁리는 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만사람들과의 접촉을 연설로부터 시작한것이 잘못이였다고 보시고 정치공작의 형식부터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지휘관에게 과업을 주어 전날 정치공작조가 침을 뱉고 돌아선 그 마을에 하모니카중주단을 데리고 가서 인민들의 심장을 다시한번 흔들어보게 하시였다.

중주단의 활동은 마을한복판에 있는 어떤 집 마당의 눈을 치는 작업으로 시작되였다. 처음으로 2명이 하모니카 2중주를 하고 나머지 성원들은 그 2중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러자 가까운 골목에서 팽이를 돌리던 두세명의 조무래기들이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울바자앞으로 달음박질해왔다. 다른 골목에서도 아이들이 바지괴춤을 춰올리며 오락장으로 뛰여왔다.

2중주는 《총동원가》로부터 《아동가》와 《어데까지 왔니》로 얼른 곡목을 바꾸었다. 하모니카에서 울려나오는 경쾌한 음향에 홀딱 반해버린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어떤 아이들은 동네방네로 뛰여다니며 간도에서 온 《고려홍군》이 단스를 한다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으며 그 광고를 들은 어른들이 먼발치에서 팔짱을 지르고 혁명군의 오락회를 구경하였다. 어떤 어른들은 오락장 가까이에까지 바싹 다가와 《고려홍군》의 《풍각쟁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구경군들의 수효가 40~50명쯤 되자 하모니카중주단은 《아리랑》을 연주하였다. 이 《아리랑》이 온 동네를 다 불러내고야말았다. 관객의 수는 100명, 200명으로 불어났다가 다시 300명 계선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이런 때에 한 대원이 나서서 《평안도수심가》를 불렀다. 그 노래가락에 흥취가 오른 수백명의 마을사람들은 오락장을 가락지모양으로 완전히 에워싸고 《고려홍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선률에 귀를 기울이였다.

하모니카중주단은 이렇게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흥겹게 해놓은 다음 항일선전을 하고 혁명군원호를 호소하였다.

혁명군은 이런 경험에 토대하여 군중속에 더 깊이 들어가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녕안현의 수십개 마을들을 점차적으로 혁명화하였다. 그후 《고려홍군》이 지나간 고장들에서는 당대렬이 늘어나고 공청과 부녀회, 아동단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이 급속히 확대되였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자기의 심장을 활짝 열어제낀 인민들은 혁명투쟁에 떨쳐나섰으며 혁명군을 지지하고 원호하는데서 최대의 보람을 느끼였다.

인민의 심금을 울린 그날의 하모니카소리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고 인민에 대한 정과 사랑으로 혁명투쟁을 이끌어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성을 오늘도 전해주고있다.

하늘도 따를수 없는 인덕으로 인민의 새세상을 일떠세우고 빛내여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우리 인민들은 영원히 잊지 않고 길이 전해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