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룡진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오직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불행하게도 원쑤들에게 체포되였으나 혁명가의 신념과 지조를 지켜 굴함없이 싸운 전 황해도인민위원회
리룡진동지는 원쑤들에게 체포되여 갖은 회유와 악형속에서도 조선로동당원의 굳은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 놈들을 전률케 하였다.
그가 최후의 순간에
준엄했던 1950년 가을 우리 조국앞에는 준엄한 시기가 닥쳐왔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는 매 사람들의 혁명적신념을 검증하는 엄혹한 시련이였다.
당시 황해도인민위원회
도내의 마지막후퇴사업을 보장하고나서 가족들을 후퇴시키기 위하여 그가 집에 들렸을 때였다.
원쑤들은 이미 도내의 일부 지역에 피묻은 군화발을 들여놓고있었다.
리룡진동지는 안해와 자식들을 불러앉히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하여 그는 흰 무명천을 펼쳐놓고 방안에 정중히 모셨던
《난 두번 다시 태여난다 하여도
리룡진동지는 구월산의 유격투쟁대오에 들어가 싸울 결심을 다졌다. 그는 떠나기에 앞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수도 있는 가족들을 둘러보며 안해에게 당부하였다.
《어디에 가든
그것이 리룡진동지가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구월산으로 들어가던 리룡진동지는 그만 불행하게도 신천군에서 원쑤놈들에게 체포되게 되였다.
미국놈들은 저들의 《혁혁한 승리》에 대하여 횡설수설하면서 그의 신념을 꺾어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때 원쑤들의 말허리를 끊으며 리룡진동지의 목소리가 폭탄처럼 울렸다.
그러자 놈들은 그에게서 당과 정부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중세기적인 고문을 들이댔다. 놈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온몸에 바늘을 꽂았으며 어깨에다 못을 박고 미국제총창으로 두눈을 도려내고 쇠줄로 코를 꿰여 마구 끌고다니였다.
그러나 그의 굳은 신념과 의지는 꺾을수 없었다.
악에 받쳐 그를 사형장으로 끌어낸 놈들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공화국정부가 나쁘고 미국이 좋다는 선전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다.
최후를 앞둔 리룡진은 강제로 끌려나온 인민들을 향해 이렇게 웨쳤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위해 싸운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우리 공화국은 영원토록 무궁할것이다.
동무들, 청년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만세를 부르자.
당황망조한 놈들은 그를 전주대에 목매달고 집중사격을 퍼부어 학살하였다.
리룡진동지가 최후의 순간에
주체40(1951)년 4월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으며 그의 고향인 평안남도 개천군 증서면 운룡리(당시)는 룡진리로 명명되였다.
주체43(1954)년 1월 신천박물관을 찾으신
리룡진동지는 비록 애젊은 나이에 원쑤들에게 희생되였지만 그가 지니였던 조선로동당원의 신념은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