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인류문화의 려명기부터 이 땅에서 살면서 고유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였으며 인류의 과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
인류문화의 려명기인 구석기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이 땅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면서 살아왔다. 함경남도 금야군 룡남리에서는 구석기시대후기의 동굴유적이 발견되였다. 유적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남긴 불자리와 석기, 포유동물화석 등이 나왔다.
룡남동굴유적은 조선반도동북부의 함경남도 금야군 룡남리(북위 39°36′, 동경 127°07′)에 위치하고있다.
하부고생대 법동군층 무진주층의 회색층상석회암에 발달된 이 동굴유적의 앞에는 벼랑밑을 따라 금야강의 지류인 단속천이 흐르고있으며 그 주변에는 넓은 평지대가 펼쳐져있다. 룡남동굴은 단속천물면으로부터 13m높이에 놓여있다.
이 유적은 주체79(1990)년 초에 금야강류역에 대한 유적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발견되였다. 동굴입구는 서남쪽방향으로 열려져있고 높이는 약 9m, 너비는 3.2m였다.
동굴은 안쪽으로 약 6m 되는 곳에서 2개로 갈라지는데 오른쪽굴의 퇴적층은 씻기여 없어지고 왼쪽굴에는 퇴적물이 약 5m정도 쌓여있었다. 동굴이 갈라지는 곳에서 왼쪽굴의 길이는 7m, 너비는 3.2m, 높이는 7m정도였다.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은 주체81(1992)년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였다. 발굴에 앞서 구획을 설정하였다. 2m간격으로 지구를 설정하고 그 지구를 다시 1×1m 크기의 지점으로 나누었다.
발굴은 우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1단계에서는 우에서부터 아래로 2m 되는 곳까지, 2단계에서는 그 다음부터 마지막까지 발굴하였다.
퇴적층의 두께는 4.95m이며 퇴적물의 조성과 색갈 등에 따라 8개의 층으로 구분되였다. 층번호는 맨 아래층에서부터 우로 올라오면서 순서를 정하였다.
유물은 3층부터 7층사이에서 발견되였고 1층과 2층, 8층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3층에서는 포유동물화석들이, 4층과 5층에서는 타제석기와 포유동물화석들이, 6층에서는 불자리와 함께 타제석기, 포유동물화석들이 발견되였으며 7층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조선옛류형사람뼈와 활촉, 돌도끼 등이 나왔다.
유물출토정형을 보면 7층은 신석기시대문화층, 4층~6층까지는 구석기시대문화층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구석기시대문화층인 6층의 앞쪽에서 불자리가 발견되였다. 우에서부터 1.1m 되는 깊이에서 발견된 이 불자리에는 여러점의 불탄뼈와 숯 등이 포함되여있었다. 불자리의 형태는 타원형으로서 긴 반경이 80cm이고 짧은 반경은 40cm이다.
4층~6층에서는 80점의 석기와 모루돌 1개, 50여점의 석기반제품 및 쪼각들이 나왔다. 석제품들의 재료는 모두 석영이다. 층위에 따르는 석기출토정형을 보면 4층에서 3점, 5층에서 42점, 6층에서 35점이 발견되였다.
석기의 종류는 찍개(6점), 긁개(20점), 밀개(14점), 새기개(21점), 돌날(19점)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에서 10cm이상의 크기를 가지는 대형석기는 6점의 찍개들로서 석기총량의 7.5%를 차지하며 8~10cm사이의 길이를 가진 석기는 1점의 밀개뿐으로서 1.25%를 차지한다. 5~7cm사이의 크기를 가진 석기는 4점의 긁개와 17점의 새기개로서 26.2%를 차지하며 5cm미만의 크기를 가진 석기는 52점으로서 65%를 차지한다.
찍개중에 외면만 가공된것이 3점, 량면가공된것이 3점이다. 외면이나 량면을 가공하였지만 강자갈에서 몇번의 격지를 떼여내는 방법으로 만들었기때문에 자연면이 많이 남아있다. 찍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석기들이 격지석기들이면서 전면가공되였다.
이 유적의 석기갖춤새는 새기개와 돌날 등 세석기들을 많이 포함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구석기시대후기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유적의 구석기시대문화층(4~6층)에서는 800여점의 포유동물화석이 발견되였는데 종구성은 3목 7과 10속 11종으로서 메토끼, 늑대, 너구리, 큰곰, 동굴히에나, 들말, 사슴, 누렁이, 노루, 산양, 옛소 등이다. 이 중에서 사멸종은 동굴히에나와 옛소로서 전체 종수의 18.2%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유적의 동물상은 상갱신세의 늦은 시기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유적의 포유동물상을 보면 당시 유적일대의 기후가 비교적 추운 온대기후였으며 지형은 산림이 우세한 산림-초원지대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옛소를 비롯하여 한랭한 기후에 적응된 종들이 온대기후에 적응된 종들보다 더 많은 비률을 차지하고있는것과 동물상중의 81.8%가 산림에서 사는 종들이라는것을 보고 잘 알수 있다.
한편 4층과 5층에서는 26개의 과 및 속에 해당되는 150개의 포분화석이 나왔다. 이중에서 식용으로 리용할수 있는 식물은 은행나무, 느릅나무, 뽕나무, 가래나무, 밤나무, 너도밤나무, 참나무, 개암나무, 콩, 꿀풀, 국화, 벼 등 12가지이다. 포분식물상에 반영된 분석자료들은 당시 이 일대가 산림-초원식물피복을 가진 지형으로 되여있었으며 기후는 서늘하고 습윤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룡남동굴유적은 조선반도의 동북부지역에서 세번째로 알려진 구석기시대유적인것으로 하여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옛자연환경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의의있는 유적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