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였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였다.》 (
무릇 정치적신앙은 정치가에게 있어서 라침판이나 같다.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거하여 정치를 실현해나가는가 하는 옳바른 원리를 체득하지 못한 정치가는 정치의 생명력과 성공을 기대할수 없다.
한없이 숭고한 정치적신앙으로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령도하여오신
전후복구건설은 조선인민의 혁명투쟁사에서 전례없이 어려운 시련과 난관을 뚫고나가야 할 총포성없는 하나의 전쟁과 다름없었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라고 하면 국가와 인민의 생사운명을 판가름하는것이여서 미증유의 시련을 동반하는것이지만 조선인민의 전후복구건설은 그에 못지 않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중첩되는 시련의 련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바로 이 시련의 봉우리를
전쟁이 끝난 후에 공화국의 땅우에는 우뚝 솟아있는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건물이란 건물은 모조리 파괴되고 공장도 학교도 살림집도 온전하게 남아있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어 파괴되다 남은 벽체조차 제대로 서있는것이 없었다.
전쟁의 페허를 완전히 가시고 복구건설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여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키자면 무엇보다도 기중기가 있어야겠는데 당시 나라에는 기중기가 없었다.
처음 나라에서는 자동차기중기를 자체로 만들어쓰자면 경험도 없고 또 한지에 나앉다싶이 한 인민들을 두고 시간을 너무 끄는것 같아 돈이 좀 들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사다 쓰려고 하였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자동차기중기를 사오자고 하니 그들은 자기들의 리속만을 생각하면서 약차한 돈을 요구하였다. 그들이 부르는 자동차 1대값도 값이 대단히 비쌌는데 자동차기중기는 자동차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엄청난 값이였다. 돈 한푼이 천금같이 귀중하고 푼전을 쪼개써야 할 당시의 형편에서 그것은 도무지 경제적타산이 맞지 않는 지출이였다. 오히려 자동차기중기 1대값에 돈을 조금만 보태면 자동차를 2대나 사올수 있었다.
언제나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할데 대한 주체의 원리를 자신의 정치적신앙으로 간직하시고 혁명령도에 구현하여오신
락원의 로동계급은
이렇게 전후복구건설에서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어려운 문제의 하나인 자동차기중기문제도 언제나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인민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한다는 정치적신앙으로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