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투쟁하여온 자랑찬 력사를 가지고있습니다.》 (《
우리 인민의 자랑찬 반침략투쟁사의 갈피에는 13세기초 거란침략자들의 침입을 쳐물리치는데 기여한 고려의 애국명장 김취려(?~1234년)의 투쟁이야기도 깃들어있다.
례부시랑을 한 김부의 아들로 태여난 그는 일찌기 벼슬길에 올라 여러번 승진되여 장군에 이르러 동북지방을 지켰다. 그후 대장군으로 되여 강종때(1212~1213년)에는 변방의 요새지역을 순찰하면서 국경경비강화에 힘썼다.
당시 거란의 잔여세력들은 《대료수국》라는 나라를 세우고 독자적인 년호까지 사용하였는데 이자들은 몽골군과 금나라군에게 쫓기여 고려에 쳐들어오게 되였다.
1216년 8월 수만명의 거란침략자들이 고려에 침입하자 고려정부는 대부대로 편성된 방어군을 조직하여 적들을 치도록 하였는데 김취려는 후군병마사로 임명되였다. 9월초 고려방어군은 조양진(평안북도 개천)에서 침략자들과의 첫 전투를 벌려 큰 승리를 거둔 후 계속 공세를 취하여 련주(평안북도 개천), 창주(평안북도 창성) 등 여러곳에서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안겼다. 9월말 고려의 방어주력은 개평역(평안북도 녕변군)에서 적주력과의 대결전을 벌렸는데 이 전투를 지휘한 김취려는 용약 적진에 뛰여들어 용감히 싸우면서 군사들의 사기를 고무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격전에서 그는 자기의 맏아들을 잃었으나 방어군을 이끌고 도망치는 적들을 계속 추격하여 묘향산일대에서 2 400여명을 살상포로하였고 청새진(희천)부근에서는 수많은 적들을 소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김취려는 1217년 7월에는 전군병마사로서 거란의 재차 침입을 물리치는데서 결정적의의를 가진 제주(충청북도 제천)전투에서 방어군으로 하여금 박달령에 먼저 올라 유리한 진지를 차지하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다가 기여드는 수만명의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도록 하였다. 그후 그는 전장에서 중병을 만나 후방에 가서 치료받을것을 권고하는 부하들에게 변경의 귀신이 될지언정 어찌 집안에서 편안히 있기를 원하겠는가고 하면서 적들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을 지휘하였다.
1218년에 도망쳐갔던 거란침략군이 또다시 국내깊이 쳐들어오자 몽골군은 동진국의 군대를 앞세우고 거란을 친다는 구실밑에 고려에 침입해왔다. 이러한 복잡한 정세속에서 그는 조충과 함께 거란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기는 한편 몽골군과 동진군을 거란침략군격멸에 리용하기 위한 외교활동을 벌리였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몽골의 군영으로 가는것을 꺼리자 자진하여 이 일을 맡아나섰다. 몽골군의 병영에 들어간 그는 고려군의 위세를 과시하고 능숙한 외교술로 몽골군과 반거란동맹을 맺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1219년 1월에는 적들을 강동성에서 완전히 소탕함으로써 거란침략자들의 침입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처럼 김취려는 13세기초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고려인민들의 투쟁을 능숙하게 지휘한 애국명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