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인류문화의 려명기부터 이 땅에서 살면서 고유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였으며 인류의 과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
승리산동굴유적은 주체61(1972)년과 주체62(1973)년에 발굴되였다.
이 유적은 우리 나라 북부의 랑림산맥에서 흘러내리는 대동강상류에 있다.
유적은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약 75km 떨어진 대동강상류 평안남도 덕천시의 승리산동남쪽비탈면에 위치하고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승리산의 자연동굴가까이에는 서북쪽에서 시량강, 북쪽에서 청송강이 흘러 대동강에 합류된다.
이 동굴은 대동강서쪽기슭의 두번째하안단구에 해당되는데 강으로부터 17~18m, 지표로부터 7m높이에 있으며 동남향으로서 해빛을 받는 시간이 길다.또한 굴안이 깊고 구부러져서 찬바람도 막을수 있기때문에 겨울에도 사람들이 살수 있었으며 산과 강을 끼고있어 짐승사냥과 물고기잡이도 할수 있어 원시인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였다.
발굴당시 동굴입구의 너비는 7m, 높이는 7.5m, 동굴길이는 62.2m이다.
이 동굴유적의 구석기시대아래층에서는 사람의 어금이 2개와 어깨뼈 1개가 발견되였는데 이 인류화석을 가리켜 덕천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의 이발은 동굴입구로부터 약 18m 지점에 있는 구석기시대아래층에서 동굴히에나의 아래턱뼈와 함께 드러났다.
이발이 발견된 층위는 동물화석으로 볼 때 중갱신세말~상갱신세초에 해당한다.
2개의 이발가운데 하나는 아래둘째큰어금이이며 다른 하나는 웃둘째큰어금이이다.
웃둘째큰어금이의 이머리길이는 9.4mm, 이머리너비는 11.7mm이고 이목길이는 6.8mm, 이목너비는 10.25mm이며 이머리지수는 118.0, 이뿌리지수는 104.4이다.
덕천사람의 이발은 크지 않으며 이머리의 형태는 긴 방형이다.
또한 이발에는 4개의 도드리가 남아있는데 거의 퇴화되지 않았다.
아래둘째큰어금이의 이머리길이는 11.6mm, 이머리너비는 10.50mm, 이뿌리길이는 14.0mm이다. 이목길이는 9.0mm이고 이목너비는 8.4mm이다. 이머리지수는 90.5로서 좀 작은편이다.
이렇게 이머리지수가 작은것도 덕천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할수 있다.
아래둘째큰어금이에서 특징적인것은 이발의 뒤꿈치부가 세도드리부보다 얼마간 넓은것이다.
아래둘째큰어금이의 세도드리부에는 뒤쪽볏이 잘 나타난다.
이와같이 덕천사람의 아래둘째큰어금이에서 홈이 잘 나타나고 《+》형의 무늬가 명백하며 뒤쪽볏이 형성되여있고 덧도드리가 생겨나며 기본홈들에서 여러 갈래의 분지가 보이는것들은 그 이발의 씹는면에 주름이 잘 발달되여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어깨뼈에서 특징적인것은 관절우묵이이다.
관절지수는 관절우묵이의 길이에 대한 그 너비의 백분비(너비/길이×100)로 표시되며 고인과 신인을 가르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로 리용된다.
고인은 관절지수가 아주 작기때문에 현대사람의 최소치 한계에 이르지 못한다. 덕천사람의 어깨뼈에서는 이 지수가 61.8이다. 그런데 이 지수가 현대조선사람은 72.1이며 조선옛류형사람 역시 72.1이다.
관절지수가 작은 덕천사람의 관절우묵이는 그 형태가 연장된 타원형을 련상시킨다. 이러한 형태의 관절우묵이는 고인들에서 자주 볼수 있는 특징의 하나인것이다.
덕천사람은 이발과 어깨뼈에서 나타나는 특징에 기초하여 늦은 시기의 고인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승리산동굴유적에서 발굴된 고인단계의 인류화석은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인류진화발전과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귀중한 실물자료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