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기념비적창조물-천리마동상

 2019.3.1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 시기 우리 인민이 벌려온 영웅적투쟁은 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령도와 결부되여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중보판 제12권 304페지)

주체조선의 수도 평양에는 조선인민의 영웅적기개를 시위하는 력사적인 기념비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는 천리마동상이 있다.

세기적인 기적과 변혁의 창조자인 조선인민의 불굴의 기상을 상징하는 천리마동상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천품, 정력적인 령도의 손길이 깃들어있다.

천리마운동의 봉화가 전국에 거세찬 불길로 타번지던 주체48(1959)년 4월 당시 모란봉의 청년공원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수대언덕에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탑을 하나 세워야겠다고, 동상은 말같은것을 형상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천리마동상건립을 위해 조선미술가동맹의 조각가들과 전국 각지에서 소환해온 수십명의 조각가들로 강력한 조각창작단을 무어주시고 나라일로 분망하신 속에서도 동상건립을 위한 사업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시대의 기념비인 천리마동상을 세울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달받고 조각가들은 흥분된 마음으로 초안창작에 달라붙었지만 창작과정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되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어느 조각가도 기마상을 창작해본 일이란 없었으며 더우기 천리마의 형상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만 있는것이여서 창작가들이 구상하여 내놓은 초안들은 합평회에서 어느 하나도 통과되지 못하였다.

천리마의 형상에서 속도를 위주로 할것인가 기상을 위주로 할것인가, 천리마에 탄 인물형상은 어떻게 할것인가, 기념비조각으로써의 특성을 어떻게 살릴것인가 등의 문제를 놓고 창작가들의 의견은 저마끔 달랐으며 창작초안도 서로 각이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리마동상초안을 보아주신다는 반가운 소식에 접한 조각창작가들은 흥분되고 긴장된 마음으로 낮과 밤을 이어서 집체적지혜를 모아 드디여 동상초안을 완성하게 되였다.

조각가들이 처음으로 창작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올린 천리마동상초안은 로동자, 농민, 지식인이 각각 한필씩 세필의 말을 타고 내달리는 모습을 형상한것이였다.

주체48(1959)년 11월 1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천리마동상초안을 지도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말 세필이 하늘을 향하여 달리는 초안을 자세히 살펴보시며 누가 창작한것인가고 물으시였다.

집체창작이라는 조각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을 군중적으로 구상한것은 좋으나 주되는 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말을 세필로 하지 말고 한필로 하면서 각계각층 군중을 대표하여 남자와 녀자가 탄것으로 하면 좋겠다고 구체적인 형상방도를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천리마는 비상히 빠른것을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말에 날개를 달고 남자는 붉은 편지를 들고 녀자는 무슨 기구 같은것을 들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조각창작가들이 천리마동상의 사상예술적내용을 창작에 구현할수 있는 명확한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다음해 2월 조각가들이 근 1년동안 고심하여 만든 3개의 초안들을 다시 보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로동자, 농민을 태운 천리마가 구름을 박차고 달리는 속도를 위주로 한 2번안이 좋으니 그 초안을 기본으로 하여 천리마동상을 완성하도록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기상을 위주로 한 1번안의 말머리가 좋으니 그것을 참고하고 번개에 말을 태운 3번안에서는 녀자의 형상이 좋으니 그것을 참고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이름난 조각가들도 무색케 할 비범한 안목으로 구체적인 방도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3월에는 천리마동상의 축소모형을 보아주시면서 천리마동상은 천리마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인데 원형과 꼭같은 크기로 모형을 만들어 세워놓고 다시한번 보자고, 인민들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조각가들은 그후 실물과 꼭같은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현지에 세우고 인민들의 의견을 받기 위해 의견기록부도 그밑에 걸어놓았다.

각계각층 인민들이 앞을 다투어 기탄없이 적어놓은 의견기록부의 의견에서 공통적인것은 동상이 좀 작다는것이였다.

주체49(1960)년 6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상의 모형을 또다시 보아주시면서 며칠전에 지방에 나가면서 올려다보니 동상이 좀 작은것 같더라고, 지금보다 2배로 확장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며 조각가들의 창작적안목을 넓혀주시였다. 동상원형제작전투에 진입한 조각가들은 6개월은 실히 걸려야 할 전투과제를 40일동안에 끝내기로 결의하고 현장에서 침식을 해가며 긴장한 전투를 벌려나갔다.

그리하여 단 36일동안에 당시까지 세계적으로 제일 큰 기마상인 천리마동상의 원형제작을 끝내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하였다.

천리마동상의 시공을 맡은 건설자들도 대중적영웅주의와 창조적지혜를 발휘하여 남들이 현대적기계가 없이는 세울수 없다고 하던 22t짜리 천리마동상을 정확히 자기 위치에 세우고 천리마속도로 시공작업을 다그쳐 마침내 주체50(1961)년 4월 15일에 력사적인 제막식을 가지게 되였다.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천품을 지니시고 천리마동상건립을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모든 창작성과들을 조각가들에게 다 돌려주시였다.

천리마동상제막식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리마동상을 조각한 동무들은 모두 영웅들이라고 조각가들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그들에게 높은 급의 국가표창도 안겨주시였다.

세인을 놀래우는 거창한 만리마속도로 당이 제시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수행에 총매진하고있는 오늘 우리 인민은 천리마동상을 바라보며 반만년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거창한 변혁의 시대, 천리마시대를 열어주시고 조선인민의 영웅적기개를 시위하는 시대의 기념비를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더불어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천만년 길이 빛내여갈 불타는 일념에 넘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