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삼국지》, 《후한서》을 통해본 조선민족의 청렴결백성과 근면성

 2019.10.28.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에게 체질화된 사상정신적특성인 품성을 가지고있으며 그에 의하여 인품이 규제된다. 인간은 사회적존재인것만큼 품성도 일정한 계급적 및 민족적성격을 띤다. 어느 계급이나 민족은 다 자기의 고유한 품성을 가지고있으나 그 내용과 품위에서 차이를 가진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정의감이 강하고 근면하고 용감하며 의리심이 깊고 례절이 바른 인민으로 널리 알려져왔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98페지)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고상한 품성을 지닌 민족인것으로 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왔다. 조선민족이 지닌 고상한 품성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것이 청렴결백성과 근면성이다.

조선민족이 지닌 청렴결백성과 근면성은 중국의 력사책들인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중국사람들과 조선민족은 서로 이웃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일찍부터 래왕과 교류를 많이 진행하였으며 자기의 세력권을 넓히려는 지배자들에 의하여 수차례의 전쟁도 겪었다. 이 과정에 서로에 대한 리해를 일정하게 가지게 되였으며 이것이 력사책들에 반영되게 되였다.

《삼국지》는 3국정립시대(위(220-265), 촉(221-263), 오(222-280)의 세나라가 서로 대립되여있던 시기)의 중국력사를 기전체형식으로 서술한 력사책이다. 진나라(265-420)의 진수(233-297)가 편찬한것으로서 《위지》 30권, 《촉지》 15권, 《오지》 20권 모두 65권으로 되여있다.

《후한서》는 중국 남북조시기(420-589)의 송나라 봉건관리 범엽(398-445)이 쓴 후한왕조에 관한 력사책이다. 처음에는 본기 10권, 렬전 80권으로 된것을 범엽이 죽은 다음 량나라 류소가 진나라 사마표의 《속한서》에서 8지 30권을 뽑아 보충함으로써 120권으로 되였다.

《삼국지》는 위서편에 동이전, 부여전, 고구려전, 동옥저전, 예전, 한전 등을 설정하고 당시의 조선민족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견해를 기록하였으며 《후한서》는 렬전에 동이, 부여국, 고구려, 구려, 동옥저, 예, 한 등을 하나의 편으로 설정하고 조선민족에 대한 리해를 기록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삼국지》의 자료를 그대로 쓰고있으나 필자가 다른것만큼 기본요점에서 일부 차이를 두고있다.

중국사람들이 쓴 력사책인것만큼 《삼국지》나 《후한서》에 조선의 고대력사에 대하여 모두 정확하게 서술하였다고 볼수 없으나 잘 알려진 조선민족의 고상한 품성에 대하여 일정하게나마 기록하지 않을수 없었다.

《삼국지》, 《후한서》에 반영된 조선민족의 고상한 품성은 우선 청렴결백성이다.

청렴결백성은 량심에 꺼리는것이 없이 생활을 깨끗하게 하는 품성이다.

인간은 사회적존재인것만큼 인간의 품성의 품위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회집단생활에 얼마나 이바지할수 있는가 하는데 의하여 규제된다.

청렴결백한 사람은 남의것을 탐내지 않으며 말과 행동에서 거짓이 없고 솔직하다. 청렴결백성은 사람이 검박하게 살아갈수 있게 하고 정직성, 솔직성, 순결성과 같은 긍정적인 성품들을 높이 발휘할수 있게 한다. 이처럼 청렴결백성은 사람들의 사회공동생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품성인것으로 하여 고상한 품성으로 된다.

조선민족의 청렴결백한 품성에 대하여 《삼국지》와 《후한서》에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삼국지》의 《예전》에서는 《늙은이들이 예로부터 구려와 같은 종이라고 하였다. 그 사람들의 성격이 착하고 정성스러웠고 욕심이 적고 렴치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후한서》에서는 《사람들이 끝까지 서로 도적질하지 않았으며 문을 걸지 않았다.》고 기록하고있다.

예는 중국사람들이 조선족을 지역에 따라 구분하면서 붙인 이름의 하나이다. 중국사람들은 고조선일대에서 살던 조선족을 예라고 불렀다.

예에 대한 기록뿐아니라 부여국의 사람들에 대하여서도 《인정이 있어 도적질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조선민족의 고대국가의 하나였던 북옥저의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사람들의 성질이 정직하고 강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자료들은 고대조선사람들이 도적질을 하는것을 수치로 여기고 생활에서 그것을 엄금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고대조선사람들이 도적질을 하지 않았다는것은 그들에게 다른 사람의것에 대한 탐욕이 없었다는것을 말해주며 문을 닫아매지 않았다는것은 탐욕이 없이 청렴결백하게 사는것이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품성으로 되여 그들의 생활에서 풍속화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

고대조선사람들은 청렴결백성을 인간이 지녀야 할 중요한 품성으로 간직한것으로 하여 남의것을 탐내고 도적질을 하는자들에 대하여서는 증오하고 처벌을 엄하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삼국지》에서는 《형벌이 엄격하였는데 사람을 죽인자는 죽이고 그 가족은 빼앗아 노비로 만들며 도적질한자는 12배를 변상하여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후한서》에서는 부여에는 《도적질한자는 남자는 몰수하여 그 집의 노로 만들며 녀자는 비로 만들고 속죄하려는자는 50만의 돈을 내야 한다.》는 풍속이 있었다고 전하고있다.

청렴결백성은 근면성에 의하여 담보된다.

근면성은 로동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한 태도를 표현하는 품성이다.

로동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및 문화적재부를 창조해나가는 인간의 활동이다.

청렴결백성은 물질경제생활과 많이 련결되여있다. 자기의 근면한 로동을 통하여 자기에게 필요한 물질문화적재부를 마련해나가는 사람은 남의것을 탐내지 않고 청렴결백하게 살아나갈수 있다. 청렴결백한 사람에게는 탐욕이 없다. 탐욕은 남이야 어떻게 되건말건 제 혼자만 잘먹고 잘살며 자신의 뼈심은 들이지 않고 불로소득을 하려는 욕심이다. 탐욕을 추구하는 사람은 의리와 량심도 다 저버리게 된다. 이와는 달리 탐욕이 없는 청렴결백한 사람은 사회공동재산을 사취하고 탕진하지 않으며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다. 또한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는 법이 없고 물건을 훔치는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기며 돈과 물건밖에 모르는 사람을 끝없이 증오한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부지런한 로동으로 자기의 물질문화적재부를 창조해온 근면한 민족인것으로 하여 청렴결백성을 지닐수 있었다.

《삼국지》와 《후한서》에서는 조선민족의 근면성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수 있다.

대표적인것이 《삼국지》와 《후한서》의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다. 《후한서》에서는 고구려사람들에 대하여 《토지가 적어 힘껏 일해도 살아가는데 부족하였기때문에 그 풍속에 절약하는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이 남의것을 로략질한것이 아니라 부지런한 로동으로 자기의 생활을 꾸려왔다는것을 보여준다. 《삼국지》에서는 진한의 사람들이 《토지는 비옥하고 5곡과 벼가 잘되였으며 누에치기와 비단짜기를 잘하였고 소와 말에 멍에를 씌웠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진한은 고대조선국가의 하나였던 진국을 이루고있던 기본세력중의 하나가 차지하고있던 지역이다. 이 자료는 당시 진국의 높은 생산력과 함께 사람들의 로동에 대한 근면성을 반증해주고있다.

《삼국지》와 《후한서》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남의것을 탐내지 않고 자기의 근면한 로동으로 자기의 생활을 창조한 근면한 민족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