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뜨락또르생산에 바치신 로고

 2022.10.3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많은 애를 쓰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9권 423페지)

농업에서 로동생산능률을 높이며 농민들의 로동을 쉽게 하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계화를 실현하여야 한다.

사회주의농촌경리제도가 수립된 이후 우리 당에 있어서 수천년동안 뒤떨어진 농기구를 가지고 온갖 고역에 시달려온 농민들을 고된 로동에서 해방하는것은 가장 중요한 임무로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3(1964)년 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채택하신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에서 밭갈이로부터 가을걷이와 탈곡에 이르기까지 모든 농사일을 기계화하며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는데서 무엇보다도 절실한것은 뜨락또르였다. 뜨락또르가 많아야 농사일에서 기계화비중을 높일수 있었으며 농민들을 밭갈이와 운반작업을 비롯한 여러가지 힘든 일에서 벗어나게 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3(1964)년 1월 어느날 뜨락또르공장에 나가시여 생산현장에서 한 처녀기대공에게 농촌에 나가 담화해보니 녀자들이 말하기를 모든것은 다 일없고 일하기도 좋은데 등짐지는것이 애로라고 하면서 등짐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제기한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한 2년만 더 참으라고 약속하고 돌아왔다고, 동무가 녀성으로서 그 농촌녀성들의 애로점을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뜨락또르생산을 더 많이 해서 농촌에 더 많이 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뜨락또르생산자들이 농민들을 고된 일에서 해방하는 영예로운 혁명과업을 수행한다는 자각과 열정을 가지고 뜨락또르를 한대라도 더 많이 만들어 우리 농민들에게 하루빨리 보내주기를 바라시는 절절한 당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는 뜨락또르생산과 관련한 자재와 설비들을 제때에 보장해주시고 그 생산조직까지 친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54(1965)년초에 뜨락또르공장에서는 뜨락또르생산을 제쳐놓고 부속품생산만을 내밀었다.

공장일군들은 뜨락또르부속품생산도 공장이 해야 할 계획과제인것만큼 그것부터 해제끼고 뜨락또르생산에 들어가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나니 영농준비가 한창인 때에 농촌에 뜨락또르를 더 보내줄수 없게 되였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4(1965)년 3월 친히 뜨락또르공장으로 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일군들과 협의회를 가지시고 생산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는 밭갈이전으로 뜨락또르를 만들어주어야지 4월이 지나면 뜨락또르는 당분간 필요없게 된다고 하시면서 지금 일을 꺼꾸로 하고있다고, 부속품은 6~7월에 만들어야지 1~2월에 뜨락또르를 만들지 않고 부속품만 만들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안타까이 말씀하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영농작업의 계절적특성과 뜨락또르에 대한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조직을 한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쳤다.

물론 부속품을 충분히 대주어 이미 농촌에 나간 뜨락또르들이 지장없이 뛸수 있게 하는것도 중요한 일이였지만 당장 요긴한 부속품은 뜨락또르공장이 아니라도 다른 기계공장이나 뜨락또르수리공장 같은데서 깎아줄수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락또르를 만들지 않으면 알곡생산을 높일수 없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뜨락또르는 곧 쌀이고 쌀은 곧 사회주의이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기대에 무한히 고무된 뜨락또르생산자들은 생산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켰으며 해마다 수천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하여 농촌에 보내주었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로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언제나 마음쓰시고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인민의 수령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