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과 유물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
조선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지고있는 나라이다. 조선반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력사유적들이 수많이 발견되고있다.
지금까지 조선반도에서 바위벽에 그림을 새긴 유적으로 알려진것은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함경북도 무산군 지초리의 바위벽화, 울산시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의 바위벽화,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의 바위벽화들이다. 원시시대의 바위벽화들과 함께 고대 및 중세에 해당하는 바위벽화들도 적지 않게 알려졌다.
그중 21세기에 새로 조사발굴된것이 바로 평안북도 곽산군 초장리에 있는 통경산석굴암의 바위벽화이다.
통경산석굴암은 석굴암형식의 력사유적이며 그 내부벽면에는 여러 불상들이 새겨져있다.
통경산석굴암은 평안북도 곽산군 초장리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3㎞정도 떨어진 경치수려한 통경산동쪽기슭과 린접한 야산중턱에 자리잡고있다.
통경산석굴암의 주변에는 고구려시기에 쌓아진 릉한산성이 있고 고려시기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해당하는 절터, 봉화터, 돌탑 등이 있다.
통경산석굴암의 바위벽화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석굴의 바위벽면에 여러 불상들을 부각하여 형상한것이다.
여러개의 자연바위들로 이루어진 통경산석굴암의 내부생김새를 보면 동벽과 남벽, 북벽은 수직으로 세워져있고 서벽은 경사져 천정 겸 벽체로 되여있다.
석굴의 내부에 새겨진 불상들은 동벽과 남벽에 낮은 돋을새김수법으로 새겨져있다.
불상들의 배치상태를 보면 입구와 마주한 동벽에는 삼존상이 새겨져있고 그옆에 사천왕상 2상이 있다. 그와 잇닿아있는 남벽에는 사천왕상 2상이 새겨져있다.
이 7상의 불상들가운데서 동벽에 새겨진 삼존상의 조각솜씨가 제일 우수하다.
삼존상에서도 조형적으로 잘된것은 중심에 있는 부처상이다.
이 불상은 앙련과 복련으로 이루어진 련꽃대좌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새겨져있다. 부처의 머리부분에는 2중으로 된 육계가 불룩하게 솟아있으며 둥근선을 이룬 눈섭과 큰 눈, 코, 작은 입이 새겨진 동그스름한 얼굴은 근엄한 인상을 자아내도록 형상되여있다.
중심부처는 한쪽어깨에만 옷을 걸치고 다른쪽어깨에는 장식천을 약간 드리운 상태에서 오른손은 배부분에 가져다대고 왼손은 무릎우에 자연스럽게 내리드리운 모습을 하고있다. 중심여래상의 머리뒤부분에는 두께 4㎝정도의 원형테두리가 큼직하게 새겨져있는데 그 직경은 64㎝이다. 이 부처상의 전체 높이는 157㎝이다.
중심부처상의 왼쪽에 있는 보살상은 둥근 얼굴에 온화한 표정을 짓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있으며 몸체에는 두 어깨를 덮은 가사를 걸치고있다. 그리고 왼손은 가슴우로 쳐들고 오른손은 배부분에서 정수병을 들고서있다. 이 보살상 역시 머리뒤에 3㎝정도 두께의 원형테두리가 있는데 그 직경은 49㎝이다. 량옆으로 벌린 두 발밑에 각각 작은 련꽃 한송이씩을 밟고있다. 이 보살상의 전체 높이는 115㎝이다.
중심부처상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상은 빡빡 깎은 머리에 두 어깨를 가리운 가사를 걸치고 두손은 가슴앞에 올린 상태에서 긴 지팽이를 오른쪽어깨앞에 기대놓고있는 모습으로 형상되여있다. 이 불상도 머리뒤에 두께 3㎝크기의 원형테두리를 새겼다. 직경은 역시 49㎝이다. 두 발밑에 각각 작은 련꽃 한송이씩을 밟고있다. 이 보살상은 전체 높이가 110㎝이다.
중심에 있는 부처상을 기준으로 오른쪽보살상과의 간격이 왼쪽보살상과의 간격보다 조금 넓게 조성되여있다.
통경산석굴암의 바위벽화에는 3존상과 함께 동벽과 남벽에 그려진 4천왕상들도 있다.
동벽에 있는 3존상들의 옆에는 머리에 세잎형의 모자를 쓰고있으며 얼굴에 근엄한 인상을 지은 상태에서 오른손에 몽둥이를 쥐고있는 불상이 새겨져있다. 몽둥이를 쥐고있는 불상의 크기는 높이 123㎝이다. 그옆에는 해학적인 웃음을 짓고 왼손에 바줄을 쥔 불상이 낮은 돋을새김수법으로 새겨져있다.이 불상은 돋을새김을 한 정도가 다른 불상들에 비해 낮고 조각수준도 뒤떨어진다. 이 불상의 높이는 155㎝이다.
남벽에 새겨진 한 불상은 두손에 비파라는 악기를 쥐고 얼굴을 약간 찡그린 모습으로 형상되여있으며 그옆에 있는 불상 역시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짓고 보검을 쥐고 서있는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이 불상들의 높이는 각각 130㎝, 119㎝이다.
이 불상들의 머리와 등뒤부분에는 구름모양의 무늬가 굵은 선으로 활달하게 새겨져있다. 불상들의 두 발은 버선모양의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좌우로 벌리고있다.
통경산석굴암의 내부벽면에 새겨진 바위벽화들은 아미타여래삼존상(아미타여래상, 관음보살, 지장보살)과 사천왕 즉 지국천왕, 중장천왕, 다문천왕, 광목천왕들을 형상한것이다.
통경산석굴암에 대하여 전하는 력사기록으로는 《곽산읍지》를 들수 있는데 여기에는 통경산석굴암에 삼존불과 사천왕상이 새겨져있다고 씌여있을뿐이다.
통경산석굴암에 새겨진 바위벽화들이 언제 제작되였는가 하는것은 삼존상의 구성형식, 련꽃받침대와 옷차림새의 구체적인 형상수법들을 통하여 알수 있다.
통경산석굴암의 동벽중심에 새겨진 아미타여래3존상은 아미타여래상, 관음보살상, 지장보살상으로 구성되여있다.
조선중세시기 불상조각의 변천과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세나라시기와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 고려전기의 아미타3존상들은 보통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로 구성되는 3존불을 이루고있다. 그러나 고려말~조선봉건왕조초기에 이르러 아미타3존상들은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리에서 알려진 불상과 같이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지장보살상의 구성형식으로 변한다. 이로부터 통경산석굴암의 중심아미타여래3존상의 구성형식은 고려말~조선봉건왕조초기에 해당한다고 말할수 있다.
통경산석굴암의 중심여래상이 올라앉아있는 련꽃받침대는 복련과 앙련이 결합되여있으며 련꽃받침대의 높이에 비하여 련꽃잎의 너비가 큰 특징을 가지고있는데 이러한 련꽃받침대는 고려말~조선봉건왕조의 초기에 해당한다.
통경산석굴암의 중심여래상이 걸치고있는 옷차림새를 통해서도 이 바위벽화가 고려말~조선봉건왕조초기에 해당한다는것을 알수 있다.
중심여래상의 오른쪽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다른쪽어깨에는 장식천을 드리우고있는 모습은 고려말기에 해당되는 라선시 지경동금동여래좌상 등 고려말~조선봉건왕조초기의 불상들에서 공통하게 찾아볼수 있다.
통경산석굴암에 새겨진 바위벽화들은 그 제작시기가 고려말~조선봉건왕조초기에 해당하는것으로서 무산 지초리의 바위벽화, 울주군 천전리와 대곡리의 바위벽화들, 남산불교관계유적의 여러 바위벽화들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조선민족의 생활모습이 담긴 여러가지 주제의 바위벽화들을 높은 수준에서 형상하여왔다는것을 말하여준다.
통경산석굴암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석굴암형식의 유적으로서 그 안에 벽화를 새겨 형상한것은 조선민족문화의 단일성과 계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처럼 통경산석굴암에 새겨진 바위벽화들은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