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도시이며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
평양은 조선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도시이며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평양의 한복판으로 유유히 감돌아 흐르는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는 오랜 력사문화유적인 련광정이 오늘도 옛모습 그대로 서있다.
련광정은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에 내성을 쌓으면서 동쪽 장대(군사지휘처)로 세운것으로서 독특한 건축미로 하여 중세조선의 루정건축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알려져있다.
련광정(練光亭)이라는 말은 한폭의 흰비단과도 같은 대동강의 아름다운 빛이 어려 빛나는 루정이라는 의미이다.
지금도 여기에 올라 앞을 바라보면 옥같은 대동강의 맑은 물빛이 비쳐들고 북쪽을 바라보면 한송이의 모란꽃이 피여난듯한 모란봉과 깎아지른듯한 청류벽, 비단필을 펼쳐놓은듯한 릉라도가 펼쳐져있으며 남쪽을 바라보면 대동강에 떠있는 배와도 같은 양각도가 안겨들어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을 펼쳐놓은듯 하다. 그 경치가 하도 좋아 련광정에는 《山江一第下天》(천하제일강산)이라는 현판까지 걸리게 되였으며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첫손가락에 꼽혀왔다.
하기에 옛 문인들은 저저마다 련광정에 올라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 있는 평양에 대한 자랑과 환희, 련광정의 기묘한 모습과 그 앞에 펼쳐진 그림과도 같은 황홀한 경치를 노래한 수많은 시들을 창작하여 후세에 길이 남기였다.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 우리 나라 민족고전자료들을 종합하여보면 련광정을 노래한 문인들만 하여도 수십명을 헤아린다. 그들가운데서 조선봉건왕조시기만 놓고보아도 리식, 리행, 성세창, 소세양, 고경명, 정철, 권필, 차천로, 차운로, 리수광, 신흠, 리안눌, 김상헌, 김육, 리경석, 박문빈, 김창흡, 리정신, 리시항, 신광수, 리광려, 홍량호, 리덕무, 정원용, 조희룡, 리면백, 조면호, 장지완, 리상적, 김병연, 한장석, 최영년, 부용을 비롯하여 거의 60명으로서 당대의 명망높은 문인들치고 평양의 련광정에 대한 시를 짓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할수 있다.
련광정을 노래한 시들가운데서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은 련광정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풍치를 간결하고 서정적으로 형상한 작품들이다.
대표적인 시들로는 리행의 시 《련광정》, 리수광의 시 《련광정에서》, 리정신의 시 《련광정》, 리시항의 시 《련광정》, 신광수의 시 《련광정》, 조면호의 시 《련광정》 등을 들수 있다.
시와 문장에 능하여 당대에 유명하였던 리행(1478-1534년)은 시 《련광정》에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동강이 흘러내리고/아슬한 절벽바위 강뚝을 이룬》 터전우에 련광정이 우뚝 솟아 채광을 뿜는다고 하면서 벅차오르는 환희의 심정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
기묘한 건축술은 대가의 솜씨 분명하고
현판에 걸린 글도 명필이 써넣은것이리
부벽루도 너와 함께 그 이름 빛나고
황홀한 저녁노을 너로 하여 무색해라
펼쳐진 일만경치 이렇듯 아름다워
먼지낀 길손마음 티없이 맑아지네
보는바와 같이 시인은 련광정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직관적감수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로부터 환기되는 정서적감흥을 평양을 빛내이기 위해 기울인 선조들의 창조적재능에 대한 웅심깊은 례찬과 융합시켜 보다 뜨겁게 일반화하고있다.
실학사상의 선구자였을뿐 아니라 진보적이며 애국적인 작품들을 적지 않게 창작한 문인인 리수광(1563-1628년)은 시 《련광정에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직녀의 베틀에서 짜낸 한필의 비단
그 언제 여기 펼쳐 맑은 강 되였는가
불어오는 바람결에 온갖 무늬 새겨지니
설레이는 저 물결은 은하수 아니런가
시에서는 재치있는 비유적수법으로 대동강은 전설에서 나오는 하늘나라에 사는 직녀가 짜낸 비단필인양 깨끗한 은하수가 드리운듯하다고 하면서 볼수록 매혹되는 심정을 《정녕코 이 땅에서 영원히 살고싶어/걸음을 늦추며 거듭거듭 되돌아본다》고 토로하였다.
이와 같은 찬양은 련광정을 읊은 시들마다에 일관한 정서로 울려나오고있다.
리정신(1660-1727년)은 시 《련광정》에서 련광정과 어울려 《높다란 성벽은 물고기를 위압하고/무수한 뫼부리들 그림같이 아름다워라》라고 하면서 《세상에 이름과 실물이 꼭 같은건/동방조선에 으뜸가는 이 루정뿐》이라고 격정을 터치였다.
리시항(1672-1736년)은 평양을 남달리 사랑한 평양이 낳은 향토시인이였다. 그의 문집인 《화은집》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만경대에 살고있었는데 생애의 말년에 매일과 같이 배를 타고 순화강을 돌아보고 대동강을 거슬러 련광정, 부벽루를 비롯한 평양의 명승들을 거듭 찾아다니며 력사의 자랑높은 고장인 평양을 노래하는것을 락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시 《련광정》에서 루정의 아름다운 풍치를 보면서 느낀 자기의 감정을 《찰랑이는 비단물결 서리마냥 희디흰데/물가를 쳐다보니 높은 루정 솟아있네/불어드는 솔바람에 정자그림자 흔들리니/물빛인지 비단색인지 가려내기 어려워라》라고 노래하였다.
악부시창작으로 명망이 높았던 신광수(1712-1775년)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평안도일대의 력사와 유적유물, 문물제도와 세태풍속, 자연의 미묘한 경치를 제재로 하여 창작된 작품들을 모아 묶은 《관서악부》를 남기였다. 이 책은 시인이 평양에서 벼슬살이를 할 때 근 1년간에 걸쳐 평양지방의 로정을 밟아가며 체험한 견문을 수록한 기행련시형식으로 되여있는데 여기에서 《련광정》(2수)을 비롯하여 천하에 으뜸가는 평양의 절승경개를 긍지높이 찬미한 작품들이 주목을 끈다.
19세기 중엽에 활동한 시인 조면호는 시 《련광정에서》에서 평양은 천연요새의 위엄을 갖추고 뛰여난 절승경개와 함께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비껴있는 고장이라고 강조하면서 솟구치는 격정을 이렇게 터치였다.
기린마 떠나갔어도 강산은 남았는데
봄을 맞아 박달나무 소생한지 오래 됐네
바다의 진주보석도 흙덩이같거늘
서경의 이 경치 사람들을 황홀케 하네
…
보는것처럼 시에서는 대대손손 전하여지는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깃들어있고 그에 융합되여 미묘한 조화를 이룬 아름답고 숭엄한 평양의 풍치에 대하여 찬양하고있다. 이것은 서정적주인공이 체험한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이며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례찬과 애착심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이처럼 련광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들은 유구한 민족사의 증견자로, 우리 민족의 창조적재능의 산물로 전해지는 련광정이 발산하는 숭엄한 정서와 융합됨으로써 평양을 제일강산으로 숭상한 선조들의 깊은 시의 세계를 감동적으로 드러내고 서정의 진실성을 보장하고있으며 밝고 명랑한 정서로 일관되여있는것이 특징이다.
물론 련광정을 노래한 옛시들에는 《태평성대》를 즐기는 량반문인들의 유흥적기분이 일정하게 반영된것과 같은 부족점도 있다.
그러나 련광정을 평양의 자랑으로 여기면서 민족사를 상징하고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을 지닌 천하제일강산의 한 부분으로 노래한 옛시작품들은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세기와 세대를 거쳐 창조전승되여온 조선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