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김경현
2020.2.1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한없이 검박한 품성을 지니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면서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겸손하고 소박하신 품성은 이국광야의 쓰러져가는 농막에서 목침을 베시고 주무시며 갓김치 하나로 식사를 하시던 초기혁명활동시기나 인민들과 함께 조밥을 드시며 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던 때는 더 말할것 없고 시대와 혁명앞에 그처럼 위대하고 찬연한 업적을 쌓아올리시여 만민의 태양으로 높은 존경을 받으시며 사회주의건설을 령도하시던 때에도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였다.
주체51(1962)년의 초겨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있는 일군들은 날씨도 추워오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다니실 때 늘 입으시는 양복이 색갈도 좀 날고 하여 겨울옷을 한벌 지어드리기로 하고 그 뜻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옷을 짓겠다는 말을 들으시고 지금 입은 옷이 좋은데 새옷은 무엇하려 지으려고 그러는가, 색갈이 좀 낡은것은 다시 뒤집어 손질해 입으면 된다고 하시며 겨울에 공장이나 농촌에 다닐 때 입고다니기 좋은 옷이라고, 새옷을 짓기보다 이 옷을 손질하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굳이 만류하시였다.
그 일군은 현지지도를 나가시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셔야 하겠는데 어떻게 수리한 옷을 입으시겠는가고 다시 안타까운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일군을 나무람하시며 동무들은 나를 무슨 《왕》으로 만들 작정인가, 늘 나를 위한다고 하면서 특별한것을 마련해주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인민들속에 들어가는데 사치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내가 색다른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 로동자, 농민들은 도리여 나를 어렵게 대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해야 한다고, 그러자면 일상생활부터 검박하게 꾸려야 하며 모든것을 아껴쓰고 절약하는것을 습성화해야 한다고, 그래야 나라살림살이와 인민들의 생활에도 보탬을 줄수 있다고 타이르시였다.
너무도 간곡한 말씀이여서 그 일군은 하는수없이 그 옷을 수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나가실 때 늘 입으시던 겨울옷, 몇해를 입고 또 입으시여 옷깃과 팔소매의 혼솔이 닳은 수수한 옷, 그것을 다시 손질하여 입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소박한 풍모에 일군들은 머리가 깊이 숙어졌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처럼 검박하신 인민의 지도자가 동서고금 또 어디에 있겠는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백두밀림에서 풍찬로숙하시며 혈전의 수십만리길을 헤치시고 조국을 해방하신 후 인민들과 뜻깊은 인사를 나누시려고 개선의 광장으로 나가실 때에도 밤새도록 이미 입으시던 옷을 손질하여 입고 나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활이 넉넉해지고 나라살림이 펴인 때에도 새옷을 마다하시며 수수한 옷을 다시 고쳐입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입으시였던 옷을 다시 고쳐지어드리는 일군들의 가슴에는 뜨거운것이 가득차올랐다.
정녕 한없이 겸손하고 검박하신 품성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전기간 인민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오신 인민의 위대한 수령, 위대한 평민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