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 정향심
2022.10.3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것을 하루빨리 안겨주고싶은것이 나의 심정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우리 어린이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며 그들이 건강하여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세상이 알지 못하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주시였고 그 은정속에 우리 녀성들도 걱정없이 사회활동에 적극 참가할수 있게 되였다.
주체51(1962)년 여름 평안북도일대를 현지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아침 의료일군들을 부르시더니 오늘은 지방산업공장들을 돌아보려고 하는데 같이 나가자고 말씀하시며 의사들도 현실에 들어가야 로동계급의 조직성과 규률성을 배울수 있고 또 로동계급을 위하여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것도 알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바로 며칠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론학습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주변의 군인민병원들에 나가 어떤 환자들이 많으며 치료예방사업에서 절실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인가를 알아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단층집에 자리잡고있는 직물공장에 들리시였다.
가락맞게 울리는 직기의 동음이 마치도 경쾌한 관현악소리처럼 정답게 들리는 공장안에 들어서신 수령님께서는 직기들도 찬찬히 살펴보시고 로동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도 나누시며 현장을 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마당으로 나오시여 나무그늘밑으로 공장일군들과 녀성로동자들을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려워하는 그들에게 자리를 권하시고는 직장에 진출하니 재미가 어떤가, 일이 힘들지는 않은가, 나이는 몇살이며 아이들은 몇이나 되는가고 일일이 물으시였다.
어찌나 소탈하게 대해주셨던지 녀성로동자들의 얼굴에서는 어려워하던 기색이 말끔히 가셔졌다.
그들은 마치도 친아버지앞에서처럼 그이께서 물으시는대로 대답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곤난한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자 한 녀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였다.
그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간혹 아이들 몸에 미열이 있어도 탁아소에서 받아주지 않기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런 때면 집에 있기가 갑갑해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녀성로동자들도 와 하고 따라웃었다.
단란한 가정과도 같이 행복하고 화목한 분위기였다.
이윽고 웃음이 멎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집안에 들어앉아서 말공부나 하던 동무들이 오늘은 하루이틀 집에 있는것조차 갑갑하다고 하니 직장이 참 좋긴 좋구만 하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곁에 서있는 일군에게 이곳에는 아동병동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아직 꾸리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열이 나는 어린이들을 따로 맡아 간호해주는 아동병동을 만들어주면 어떻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아동병동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되는 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그렇게만 해준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며 여기서도 절실하게 제기되는것은 아동병동이라고 하시면서 전군중적운동으로 매개 군에서 아동병동을 다 내오도록 하자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아동병동이란 탁아소,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입원치료를 받을 정도로는 앓지 않고 미열이 나거나 잔병을 앓을 때 건강한 어린이들과 격리시켜 간호하고 치료해주는 어린이건강을 보호해주는 시설이라고 말할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동병동을 내오자고 처음으로 발기하신것은 바로 몇달전이였다.
그때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세우실 구상을 안으시고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제관직장 당원협의회를 지도하시다가 어린이들이 조금만 앓아도 애기어머니들이 직장에 나오지 못하기때문에 녀성로동자들의 출근률이 그닥 높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였다.
녀성들이 제일 안타까와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라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니들이 마음놓고 일할수 있도록 아동병동을 꾸려주자고 즉석에서 결론하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건부문의 한 책임일군을 부르시여 어린이들의 건강관리를 더 잘하고 녀성들의 사회활동조건을 더욱 원만히 보장해주기 위하여 아동병동을 대대적으로 건설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대안전기공장(당시)을 비롯한 적지 않은 공장, 기업소들에 아동병동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사업을 책임진 보건부문 일군들이 일을 힘있게 제끼지 못하여 아직 아동병동이 꾸려지지 못한 단위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었던것이다.
이날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료일군들에게 현실속에 들어가야 인민들이 아파하는 문제를 알수 있으며 인민들에 대한 의료봉사사업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도 찾을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매개 군에 아동병동을 다 내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그래야 녀성들이 직장에서 마음놓고 일할수 있으며 어린이들도 건강하게 키울수 있다고, 아동병동을 군중적운동으로 건설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후 사회적운동으로 아동병동건설이 힘있게 추진되였다.
그리하여 불과 몇달사이에 우리 나라의 모든 시, 군들과 중요한 공장, 기업소들 그리고 협동농장들에 아동병동들이 꾸려졌다.
훌륭한 시설들을 갖춘 산원이며 양지바른곳마다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탁아소, 유치원들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전문과 병원들이 그쯘히 꾸려져 우리 어린이들은 태여나기 전부터 어른이 될때까지 의료상혜택을 충분히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있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는 어머니들이 응당 해야 할 아이들의 잔병치료까지 나라에서 해주도록 아동병동까지 꾸려주시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후대사랑을 이어 위대한 장군님 그처럼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콩단물을 실은 왕차가 수도의 거리를 변함없이 달리도록 해주시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어린이들에게 젖제품을 비롯한 영양식품을 공급하기 위한 특별조치도 취해주시고 새로운 형태의 질좋은 교복과 가방을 모든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공급하기 위한 중대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이 극진한 사랑의 손길아래 활짝 꽃피여날 우리 꽃봉오리들의 미래는 밝고 창창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