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8월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략칭 《카프》)이 결성되여 해방전 진보적문학예술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해방전 《카프》문학예술에 대한 평가를 바로하는것은 우리 문학예술의 전통에 관한 문제를 바로 해결하며 민족문학예술사를 풍부히 하고 빛내여나가는데서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1950년대 중엽과 1960년대 초에 우리 나라에서는 《카프》문학에 대한 평가에서 좌우경적편향이 발로되고있었다.
l950년대 중엽 당사상사업분야의 중요한 위치에 앉아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해방전 진보적문학발전에서 《카프》가 논 역할을 부인하면서 일제의 가혹한 폭압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진보적문학예술작품들을 창작한 《카프》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선전사업을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들어와 우리 나라에서는 《카프》문학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그가 해방전 진보적문학발전에서 논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그릇된 편향이 나타났다.
위대한 령도자
위대한 령도자
위대한 령도자
《우리는 〈카프〉의 활동과 〈카프〉작가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가지는 진보적의의와 역할을 응당하게 인정하고 평가하여야 합니다.》(《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은 부르죠아반동문학예술을 반대하고 무산대중의 리익을 옹호하여 활동한 진보적인 반일문학예술단체로서 해방전 진보적문학예술운동과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카프》는 당시의 거창한 시대력사발전의 흐름속에서 프로레타리아문예운동을 새롭게 발전시켜나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였다.
이 시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위대한
위대한
《카프》는 1927년 9월 1일 전국대회를 열고 문학예술의 보다 높은 단계에로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맑스주의정신으로 뚜렷이 정식화된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고 조직을 재정비하였다.
《카프》는 중앙위원회와 그 아래에 서무부, 조직부, 교양부, 출판부를 새로 내오고 평양, 개성, 해주, 원산, 임실, 금산, 남원, 도꾜, 간도 등 국내외의 10여곳에 지부를 두었으며 200여명의 맹원을 망라하고 기관지《예술운동》을 발간하였다.
《카프》는 새로 채택한 강령에서 예술을 무기로 하여 조선민족의 계급적해방을 이룩하며 강도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울 의지를 내외에 힘있게 선언하였다.
물론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의 령도를 받지 못하였고 그 자체가 혁명적인 조직으로 될수도 없었던것으로 하여 《카프》는 조선혁명수행과 결부된 문학예술운동을 벌리거나 문학예술인들의 사명과 임무를 옳게 밝힌 강령을 내놓을수는 없었으며 강령에서 규정한 내용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적극적인 역할을 할수도 없었다.
그러나 《카프》의 재조직을 통하여 작가, 예술인들은 부르죠아반동문학을 반대하고 무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반일문학예술단체로서의 자기의 성격을 뚜렷이 확인하였으며 이것은 프로레타리아문학을 가일층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카프》의 작가, 예술인들은 무산대중의 리익을 대변해나선 자기들의 지향을 창작실천에 구현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진보적문학을 새로운 높이에로 끌어올렸다.
《카프》작가들이 창작한 작품들에는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우리 인민이 겪는 수난과 비극적운명이 생동하게 반영되여있으며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여나선 로동자, 농민들의 대중적투쟁과 항거의식이 뚜렷이 그려져있다.
《카프》문학예술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이 단결하여 착취계급과 착취제도를 반대하여 투쟁할데 대한 사상을 일정하게 반영하고있으며 모순된 현실에 항거하는 인간과 계급의 선각자의 형상을 창조하였다.
조명희의 단편소설 《락동강》, 리기영의 장편소설 《고향》, 한설야의 장편소설 《황혼》, 송영의 희곡 《일체면회를 거절하라》, 박팔양의 시 《진달래》를 비롯하여 《카프》재조직이후에 창작된 《카프》문학예술작품들은 대부분 사회주의적사실주의작품들로서 사상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카프 》의 프로레타리아문학예술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부르죠아반동문학예술을 반대하는 치렬한 투쟁속에서 진행되였다.
《카프》가 조직된 첫날부터 그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온 일제는 날로 장성하는 프로레타리아문학예술을 압살하기 위하여 《카프》에 대한 탄압을 끊임없이 강화하였다. 두차례에 걸치는 《카프》의 작가, 예술인들에 대한 일제의 검거사건은 《카프》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카프》조직성원들에 대한 일제의 제1차 검거는 l931년에 감행되였다. 일제는 《카프》계렬의 잡지인 《무산자》의 국내배포사건(이 잡지를 일제의 출판검열탄압을 피하기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 들여옴)과 《카프》가 만든 영화인 《지하촌》의 제작사건 그리고 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 등을 구실로 리기영, 권한을 비롯한 《카프》의 중심인물 70여명을 검거투옥하였다. 《카프》관계자들에 대한 제2차 검거는 1934년에 감행되였는데 이때 일제는 《신건설사건》을 날조하여 200여명의 《카프》성원들을 검거하고 감옥으로 끌어갔다.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의 령도를 받지 못하고 그 자체도 전투적인 조직이 되지 못하였던 《카프》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조직적으로 대처해나갈수 없었으며 1935년 5월에는 일제에 의하여 강제해산당하고말았다.
《카프》는 비록 일제에 의하여 강제해산되였으나 그가 해방전 진보적문학발전에 남긴 자욱은 자못 크다.
《카프》문학예술은 로동계급을 비롯한 무산대중의 리익을 대변해나섬으로써 로동계급이 력사무대에 진출한 새로운 현실이 문학앞에 제기한 과업을 수행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으며 주제사상의 지향성과 예술적형상수준에서 이전시기에 비해 혁신적인 성과를 이룩함으로써 해방전 진보적사실주의문학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카프》문학예술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편승하여 일제식민지통치시기 현실의 불합리성을 가리우고 착취계급을 미화하며 근로인민대중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려는 부르죠아반동문학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이와 같이 《카프》문학예술은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사실주의문학예술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우리 문학예술발전에서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위대한 령도자
《…〈카프〉문학예술을 해방전 우리 문학예술발전에서 주류로 되는것처럼 평가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카프》문학예술이 해방전 진보적문학예술발전에서 가치있는 기여를 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해방전 우리 문학발전에서 주류로 되는것처럼 평가하여서는 안된다.
《카프》문학예술이 해방전 문학예술발전에서 주류를 이루지 못하는것은 우선 당시 조선혁명발전에서 나서는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해명하지 못하였기때문이다.
문학예술발전에서의 주류는 당대사회에서 나서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밝힌 대표적인 문학예술의 흐름을 말한다.
당시 우리 나라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강점밑에 있던 식민지반봉건사회였고 우리 혁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성격을 띠고있었다.
그러므로 문학예술이 조선혁명에 참답게 이바지하려면 마땅히 착취와 압박의 근원과 그것을 끝장내기 위한 방도로서 인민들에게 반일의식을 심어주고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는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고 해명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하였다.
그러나 《카프》문학예술은 대체로 무산대중의 계급의식을 반영하고 유산자와 무산자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형상하는데 치우치고있었다.
물론 이것은 당시 일제의 언론탄압이 우심했던 사정과도 관련되여있다. 일제는 진보적문학예술에 대하여 압력을 가하면서 반일적지향을 반영한 경우에는 언제나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반일의식을 반영한 작품을 창작하는데서 장애로 된것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만이 아니였다.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반일의식을 반영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카프》작가들의 세계관적제한성에 있었다.
《카프》의 작가, 예술인들은 무산대중의 계급적해방에 관한 사상에 공감하고 그것을 자기의 창작에 구현하려고 하였으나 주체적립장에서 우리 나라 현실을 볼줄 몰랐기때문에 맑스-레닌주의에서 밝혀진 사상리론을 기계적으로 창작에 적용하고 형상을 창조하였다.
《카프》작가들의 작품에 반영된 계급의식, 계급투쟁에 관한 문제가 반일투쟁에로 지향되지 못한것은 일제의 언론탄압과도 관련되지만 기본은 그들이 계급투쟁에 관한 학설을 교조적으로 형상창조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더 사활적인 민족해방의 력사적과업을 계급투쟁의 전면에 제기하지 못한데 있다.
그들의 작품들에서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는 주인공들의 투쟁은 로동자들의 해고반대투쟁이나 농민들의 소작료감면투쟁과 같은 경제투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것은 항일혁명투쟁의 영향밑에 로동자, 농민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있던 현실에 비해볼 때 매우 낮은 단계의 투쟁을 그린것으로 된다.
《카프》문학예술이 해방전 문학예술발전에서 주류를 이루지 못하는것은 또한 《카프》문학예술이 전형창조에서 제한성을 가지고있기때문이다.
《카프》작가들이 창작한 긍정적주인공들가운데서 비교적 높은 사상적경지에 이른 인물들 실례로 장편소설 《고향》의 희준이나 《황혼》의 준식, 단편소설 《락동강》의 박성운과 같은 인물들도 로동자, 농민들에게 계급의식, 사회주의의식을 넣어주고 그들을 소작쟁의나 파업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데 그치고 더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들을 사회주의운동자, 계급의 선각자의 형상이라고는 할수 있어도 혁명가의 형상이라고는 할수 없다.
때문에 작품에서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를 주고 고통을 주는 사회악의 근원이 일제와 그의 비호를 받는 지주, 자본가들때문이며 이러한 모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일제를 때려부시고 착취계급을 청산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대중을 무장시키고 그를 위한 조직적인 투쟁에로 이끌어나가는 혁명가의 모습으로 형상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카프》문학예술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사실주의창작방법에 의거하여 당대현실을 반영하였지만 당시 우리 나라 현실이 제기하는 근본문제를 밝히지 못하고 전형창조에서도 본질적인 제한성을 가지고있었다.
해방전 우리 나라 현실의 본질적측면을 진실하게 반영하고 민족해방투쟁의 요구에 옳은 해답을 준것은 항일혁명문학예술이다.
항일혁명문학예술은 위대한
이와 같이 위대한
오늘 우리 문학예술은 위대한
우리는 위대한 령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