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극에 방창을 받아들인것은 완전히 우리 식이며 새롭고 독창적인것입니다.》 (
방창이란 무대밖에서 불리워지면서 극의 세계를 그려내는 노래이다. 방창은 무대노래로 할수 없는 서사적인 묘사를 할수 있을뿐아니라 극적인 묘사나 서정적인 묘사도 할수 있는 새로운 음악수단이다.
방창, 이것은 예술의 천재이신
지난 시기 인류가극사에서 가극음악수단이라고 하면 인물의 노래와 관현악밖에 없는것으로 인정하였다. 종래의 가극리론들에서는 가극도 극예술의 한 형태라는데로부터 인물의 사상감정을 직접 토로하는 서정적인 묘사와 인물의 호상관계를 노래와 행동으로 표현하는 극적인 묘사만 인정하고 제3자의 립장에서 생활을 그리는 서사적인 묘사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류가극사에 기록된 가극들에서는 모든 노래가 무대에서만 불리워졌으며 인물의 성격과 생활, 극적관계도 그가 부르는 노래와 관현악에 의해서만 형상되였다. 그러다나니 가극에서 생활의 론리에 맞지 않는 어색스러운 장면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가극의 이러한 제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해오시던
이처럼 예술의 천재이신
가극에서 방창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커다란 역할을 하고있다.
방창은 우선 가극에서 인물의 내면세계를 각이한 시점에서 폭넓고 깊이있게 그려낼수 있게 하는 힘있는 형상수단으로 된다.
가극에서 인물의 내면세계를 직접 드러내는것은 무대노래이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인물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을 할수 없기때문에 자기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데서 일정한 제한을 받게 된다. 방창으로는 객관적립장에서나 인물자신의 립장에서나 묘사를 자유롭게 할수 있으므로 인물의 내면세계를 폭넓고 깊이있게 그려낼수 있다.
혁명가극《피바다》에서 방창《어머니는 글을 배우네》는 토방에 앉아 밤늦도록 막내아들에게서 글을 배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그려나가면서 그 행동에 체현되여있는 주인공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뜨겁게 노래함으로써 누구나 그 장면을 보느라면 감동을 금할수 없게 되였다.
만일 이 장면을 종전과 같은 방법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엇바꿔가면서 노래를 부르게 형상한다면 사람들에게 그토록 커다란 감동을 주지 못하였을것이다.
방창은 환상장면이나 꿈장면 같은데서도 인물의 내면세계를 객관적립장에서 깊이있게 보여줄수 있으며 객관적립장에서 인물이 걸어온 지난날의 잊지 못할 사연을 상기시켜줄수도 있고 래일에 대한 아름다운 희망을 보여줄수도 있다.
가극들에서 방창은 인물자신의 립장에서도 그의 내면세계를 부각시켜줄수 있게 한다. 다시말하여 인물자신이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사연이나 독백으로밖에 표현할수 없는 심리를 보여주는 대변자의 역할을 한다.
극예술에서 인물이 직접 말 못할 사연과 그의 뒤생활을 보여주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활에서는 자기의 사상감정을 직접 나타낼수 없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직접 자기의 심정을 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것이 더 자연스러운 때도 있다.
지난날의 가극에서는 이러한 장면에서까지 주인공이 직접 노래를 부르게 하여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제대로 토로할수 없게 하거나 생활을 어색하게 만들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방창은 이러한 제한성을 극복하고 인물의 성격을 더 잘 살릴수 있게 하고 가극의 음악세계를 더욱 넓혀나갈수 있게 하였다.
방창은 또한 객관적립장에서 부정인물을 조소하거나 규탄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된다.
지난날의 가극에서는 부정인물의 부정적측면을 자신의 노래나 대화창, 행동으로 보여주거나 긍정인물의 합창형식을 통하여 폭로규탄하였다. 그런 방법만으로는 부정인물의 부정적측면을 예리하게 발가놓기 어렵다.
어떤 가극에서는 긍정인물이 부정인물을 맞대놓고 노래로 규탄하는데도 그는 가만히 서서 듣고만 있다가 노래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무엇이 어째?》 하는 식으로 행동하기때문에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장면에서는 방창을 도입하여 객관적립장이나 긍정인물의 립장에서 부정인물의 행동을 풍자하거나 폭로규탄하면 부정적측면을 더욱 예리하게 발가놓을수 있으며 무대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행동도 진실하게 보여줄수 있다.
방창은 또한 배우가 생동한 연기형상을 창조할수 있게 하는 조건을 지어준다.
가극에서는 배우가 생활적인 행동속에서 노래를 하고 노래하면서 생활적인 행동을 하여야 인물형상을 진실하게 그려낼수 있다. 지난날의 가극에서는 인물의 성격을 주로 무대노래와 관현악으로만 그려야 한다는것이 철칙으로 되여있었기때문에 배우가 많은 노래를 계속 불러야 했으므로 행동을 거의 할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난날의 가극에서는 노래를 위한 노래가 많았으며 배우는 노래에 얽매여 진실한 연기형상을 창조하기 어려웠다. 지난날의 가극들에서 인물의 성격이 추상화되고 행동이 어색하게 된것도, 극의 흐름이 처지고 따분하게 된것도 결국은 배우에게 인위적으로 노래만 부르게 하고 행동을 차요시한데 원인이 있었다.
《피바다》식혁명가극들에서 방창이 제3자의 립장에서 인물의 내면세계를 그려내기도 하고 극의 정황과 분위기를 설명하기도 하며 인물자신의 립장에서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하면서 인물이 행동을 자유롭게 할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지어주어 배우가 행동을 진실하게 할수 있게 되였고 가극무대는 생활로 차넘치게 되였다.
방창은 이밖에도 극을 발전시키고 인물과 관중사이의 교감을 실현하여 무대와 관중을 하나의 감정으로 련결시키며 주인공의 운명선을 따라 시대와 사회를 폭넓게 개괄하면서 그 본질을 깊이있게 밝혀내는데 적극 이바지하는 힘있는 수단으로 된다.
이것은 지난날의 가극에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형상세계의 개척이였다.
하기에 만수대예술단이 일본을 방문하여 혁명가극을 공연하였을 때 일본의 예술전문가들과 인민들은 한결같이 방창의 발견은 주체조선에만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격찬하면서 그 어느 나라에도 이런 방창이 없으니 그대로 조선말로 《방창》이라고 할수밖에 없다고 말하였으며 유럽가극의 발원지라고 하는 이딸리아의 한 음악가도 혁명가극을 보고 방창의 발견은 꼬뻬르니크가 지동설을, 콜롬부스가 새 대륙을 발견한것보다 더 위대한 발견이라고 경탄을 금치 못해한것이다.
참으로 방창의 발견, 이것은 예술의 천재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