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과 유물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는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력사유적과 유물들이 수많이 발견되고있다.
최근에 남포시 온천군 송현리에서 고려초기의 석불립상이 새로 조사발굴되여 내외학계의 주목을 끌고있다.
온천 송현리석불상은 송현리 팔리경부락 가까이에 위치하고있다.
송현리석불상에서 서남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주요유적인 궁산유적이 있다. 궁산유적에서 동남쪽으로 2~3㎞ 가면 고대시기의 토성인 성현리토성(어을동토성)이 있다.
석불상이 있는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5㎞정도 떨어져 고구려시기의 산성인 황룡산성이 있다.
송현리석불상은 크게 몸체부분과 받침대(기단)부분으로 나뉘여진다. 몸체의 밑부분에 뿌리(촉)가 달려있으며 이 뿌리(촉)가 받침대(기단)중심에 나있는 홈에 맞물려 박혀있다.
받침대(기단)의 밑부분에는 비교적 작은 돌들을 흙과 함께 단단하게 다져 기초로 삼은듯한 지층이 있었으며 이 층의 웃면에서 전나무잎무늬(일명 물고기가시무늬-魚骨紋)가 새겨진 기와를 비롯하여 일부 기와쪼각들이 수집되였다.
온천 송현리석불상의 크기를 보면 높이 235㎝ (뿌리까지 고려하면 260㎝)이고 너비는 84~91㎝이며 두께는 가슴부분이 22㎝, 발부분이 26㎝이다.
불상의 받침대(기단)부분은 5각형에 가까운 통돌을 다듬어 만든것인데 현재 앞면길이는 140㎝, 측면너비 113㎝, 두께 23~24㎝정도이다. 받침대의 중심부분에는 불상밑부분에 달린 뿌리(촉)를 고정시키기 위한 장방형의 홈이 패워져있다. 홈의 크기는 길이 35㎝이고 너비 25㎝이며 깊이는 18㎝정도이다.
온천 송현리석불상에 대한 조사발굴과정에 회색기와의 등면에 전나무잎무늬가 새겨진것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무늬들이 돋쳐있는 고려초기~중기의 기와쪼각들이 알려졌으며 이와 함께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기와쪼각들, 각종 자기쪼각들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유적을 조사발굴하는 과정에 여러가지 기와쪼각, 질그릇쪼각들과 함께 쇠활촉 2개를 비롯하여 여러점의 금속유물들이 발견되였다.
송현리석불상은 흰색의 화강암을 가공하여 만든것인데 련꽃을 새긴 받침대우에 부처가 올라서있는 모습으로 형상되여있다.
부처의 머리웃부분에는 백호표식이 나있으며 어깨너비와 맞먹을 정도로 살지게 형상된 얼굴에는 초생달모양의 눈섭과 살며시 내리감은 실눈, 길죽한 코, 꼭 다문 입이 한데 어울려 사색에 잠긴 표정을 짓고있다. 두손은 배부분에서 서로 겹치게 하여 약단지를 받쳐들고있는 자세를 취하고있다.
가슴웃부분의 띠에는 삼각형의 무늬를 중심으로 사선식의 장식무늬가 5개정도씩 좌우량쪽에 촘촘히 새겨져있다.
가볍게 드리운 옷자락은 새날개모양의 륜곽선을 그리며 좌우로 뻗어나갔으며 거기에 4줄정도의 사선식옷주름이 좌우대칭으로 새겨져있다. 부처가 모아쥔 두손아래쪽으로는 댕기모양과 복숭아모양 등의 여러가지 기하학적무늬를 그리며 부드럽게 흘러내리고있다.
부처의 무릎부분에는 U형의 무늬가 장식띠를 중심으로 하여 1줄씩 나있다.
부처의 몸체아래부분에는 앞으로 향한 맨발상태의 두발이 정면으로 나있으며 발가락에 발톱까지 새겨져있다.
받침대앞면의 웃부분에는 길이 12㎝, 너비 1~1.2㎝정도의 련꽃잎이 12잎정도 새겨져있었는데 현재 중심부분의 꽃잎 1개가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희미해지고 나머지는 뚜렷하게 남아있다.
석불상의 받침대(기단부분) 웃면에는 활등선의 량끝이 반원형으로 오무러든것과 한쪽으로만 오무러든것 등의 장식무늬가 가득 새겨져있다.
송현리석불상은 두손으로 약단지를 받들어 감싸쥐고있는 자세로 보아 약사여래상으로 인정된다.
송현리석불상의 비례구조와 옷차림새, 받침대형상 등 여러 자료들에 근거하여 불상건립년대를 10세기초로 볼수 있다.
송현리석불상이 세워져있는 받침대(기단) 밑부분의 지층을 보면 받침대(기단)를 고이고있는 돌의 바로 밑에 3~4㎝정도두께의 검은 갈색흙층이 얇게 깔려있고 그 아래의 흙속에 고구려붉은색기와가 부스러져 붉은반점처럼 보이는 고구려시기의 문화층이 있다.
이 석불상이 건립되던 당시의 지층이 고구려의 붉은색기와가 놓인 지층과 시기적으로 크게 차이나지 않으며 고구려문화층과 거의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층이라는것이 확인되였다. 이것은 고구려문화에 이어 발해, 고려의 문화가 련면히 계승되여 발전하여갔으며 온천 송현리석불상을 세운 시기가 고려초기에 해당한다는것을 보여준다.
온천 송현리석불상이 세워지게 된 력사적배경에 대하여 건국초기에 고려봉건국가가 서경(평양)을 장악하기 위해 조선반도의 서북지방으로 진출하였는데 오늘의 남포, 온천, 룡강일대에 대규모의 불교사원을 세우고 거기에 이 불상을 건립한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여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송현리석불상은 남포시 룡강군 애원리석불상(10세기 전반기)과 개성시 방직동의 석조여래립상, 개성시 삼거리의 월릉봉석불상(10세기 전반기)들과 함께 고려초기 석불립상의 구조와 변화발전과정을 연구하는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