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허순복
2019.10.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해방위업을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성취하실 확고한 주체적립장을 지니시고 일신상의 위험도 무릅쓰시고 일제가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있는 국내에 여러차례 나오시여 인민들을 굳게 묶어세워 전민항쟁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단결의 힘가운데서도 로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제일 강하고 위력합니다. 그것은 로동계급이 가장 선진적이고 혁명성이 높기때문입니다. 우리 조선로동계급은 단결의 위력과 자기의 력사적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합니다. 2천만조선인민이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싸움의 길에 나서면 일제침략자들을 능히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증보판 제1권 328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9월 몸소 신흥지구에 진출하시였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하여 정세가 복잡해져 일시 우리 혁명에 난관이 조성되였던 바로 그때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키기 위하여 몸소 위험을 무릅쓰시고 신흥지구에로 진출하시였던것이다.
동오골밀영에서 동해안의 각지에서 온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로부터 탄광실태를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녁녘이 되여오자 탄광마을에 나가보자고 하시였다.
지하조직책임자들이 신변에 위험하니 내려가시면 안된다고, 자기들이 탄광실태를 알아보고 보고드리겠다고 극력 만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광이 어떻게 생겼는지, 탄광로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또 그들의 목소리도 한번 들어보지 못할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수백리길을 걸어왔겠는가, 탄광지구에 와서 로동자들을 만나보지 못하고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상을 내놓을수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곳 로동자들이 흔히 입는 대마직로동복차림을 하시고 한몸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자신께서 먼저 탄광마을쪽으로 걸음을 떼시였다.
그때 사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탄광마을 함바집들에서는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사방에서 피여오르고있었다.
일본인들이 살고있던 양옥집과 강바닥에 널려있는 함바들을 둘러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것이 바로 일제가 떠벌이는 《동조동근》의 현실이라고, 이런 현실앞에서 우리 조선인민이 반일투쟁에 나서는것은 력사의 필연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신흥탄광갱입구로 향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갱입구앞에 쌓여있는 동발목무지우에 5~6명의 로동자들이 모여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있는것을 띄여보게 되시였다.
그들에게 다가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저기 부전에서 목재채벌을 하던 사람인데 여기 탄광이 돈벌이가 좋다고 하여 찾아왔다고 하시면서 그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알고보니 그들은 전라도에서 온 로동자들이였다.
그들속에 앉아있던 한 젊은 로동자가 피뜩 눈길을 돌리더니 아니 일을 할바에야 공기도 좋고 시원한 산판에서 하지 무엇때문에 시커먼 굴속에 들어가 힘들게 일하겠는가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는것이였다.
그의 말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도 돈벌이야 여기만 한데가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도 한번 꾹 참고 탄을 캐볼가 한다고 하시였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그 로동자는 억이 막혀 그럼 여기 돈벌이가 어느 정도인지 저 좌상형님에게 좀 물어보라고 하는것이였다.
좌상형님이란 사람은 초췌한 늙은이였는데 고향인 전라도 리리에서 처자 7명을 거느리고 살다가 너무도 살길이 막막하여 돈을 좀 벌어볼가 하는 희망을 가지고 탄광으로 온지 3년이나 되였지만 벌기는 고사하고 자기가 거처하고있는 함바집에 밥값도 제대로 물지 못하고있는 형편이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고향에서는 온 가족이 굶어 죽어가니 다문 몇푼의 돈이라도 보내달라는 눈물겨운 사연을 담은 편지가 날아왔다.
하지만 좌상로인에게는 굶어 죽어가는 처자들에게 보내줄 한푼의 돈도 없었다. 그리하여 한고향내기 로동자들이 모여앉아 의논을 해보았지만 그들도 똑같은 처지라 도와줄 방도가 없어 이렇게 한숨만 쉬면서 담배만 빨고있던 중이였던것이다.
그들의 기막힌 사연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왜 로동조건과 생활조건을 개선하고 품삯도 올리라고 탄광주인놈에게 들이대지 않는가고 하시였다.
여기 탄광로동자들이 같은 고향내기들끼리 패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속을 주지 않고 단합을 이루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고향은 서로 다르지만 처지야 꼭 같지 않은가, 다같이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고향이 서로 다르다고 반목질시하면 좋아할것은 왜놈밖에 없다, 우리가 서로 믿고 의지하면 외롭지도 않고 힘도 생긴다, 이렇게 단합된 힘으로 싸우면 로동조건, 생활조건은 물론이고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도 찾을수 있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리정연한 말씀에 저도모르게 마음이 확 끌려든 로동자들은 어르신이 뉘신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서 정말 우리와 함께 탄을 캐보지 않겠는가고 자기들의 진정을 털어놓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보라, 처지가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속을 터놓고보면 다 한집안식구나 같다, 우리모두 힘과 마음을 합쳐 우리의 피땀을 짜내는 놈들에게서 그 값을 꼭 받아내자고 하시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 지방 조직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삼밭산밑에 있는 외딴집으로 모시고갔다. 탄광마을에서 5리가량 떨어져있는 이 집은 한때 비밀독서회도 운영했다는 안전한 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튿날에도 동오골밀영에 가시여 사업을 하시고 저녁에는 이 집에 오시여 로동자들과 담화하시였다.
이러한 준비밑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신흥탄광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밭산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소집하시고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키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한몸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몸소 신흥지구에 나오시여 국내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킬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은 로동계급들을 혁명적인 로동조합에 굳게 결속하는 한편 그들을 반일투쟁에 적극 조직동원하였다.
그리하여 주체26(1937)년 9월에는 함경남도 갑산군(당시)일대 인민들의 반일투쟁이 세차게 일어났고 10월에는 신흥화학공장과 허천강발전소공사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그리고 해주세멘트공장 로동자들의 파업과 청진항을 비롯한 각지 항만로동자들의 파업에 이어 평양, 신의주, 청진, 라진, 원산 등 전국의 모든 주요도시들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투쟁이 련이어 일어났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총구가 도사리고있는 적구에까지 나오시여 로동자들에게 단결하여 싸우면 그 어떤 강적과도 싸워이길수 있다는 진리를 심어주시고 그들을 전민항쟁의 앞장에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민족을 하나로 굳게 결속하여 일제와의 최후결전에로 총동원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전인민적항쟁태세가 빈틈없이 갖추어지게 되였으며 마침내 우리 인민 자체의 힘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수 있었다.
우리 인민은 민족의 대단결에 한생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굳게 단결함으로써 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반드시 이룩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