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명철하게 밝혀주신 《기자묘》의 허황성

 2024.4.3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봉건통치배들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력사가 외곡된것이 적지 않습니다.》

뜨거운 조국애와 민족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봉건통치배들과 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적지 않게 외곡되였던 우리 나라 력사를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였다.

그가운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 평양시건설을 지도하시던 나날에 《기자묘》의 허황성을 명철하게 밝혀주신 사실도 있다.

당시 평양의 모란봉에는 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작된 《기자묘》가 있었다. 그런데 모란봉일대를 우리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꾸리면서 그에 대한 처리문제를 놓고 심각한 론의를 하면서도 매듭을 짓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4월 1일 친히 건설현장인 경상골에 나오시였다.

건설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기자묘》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그때까지 일부 사대주의사상에 물젖어있던 사람들중에는 《기자묘》를 조상의 무덤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우리의 력사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B.C. 12세기에 은나라사람인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기자동래설》은 전혀 허무하고 근거가 없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기자묘》 역시 우리 조선사람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것은 기자의 실지 무덤도 아니기때문에 파보면 아무것도 없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기자가 조선에 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설은 기자가 살던 때로부터 천년이나 지난 B.C. 2세기초에 날조한것이였다. 원래 《기자》란 은나라의 제후국인 《기》나라 통치자의 직위를 말하는것이며 이름은 아니다. 그는 종주국인 은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주나라 《서주》왕실에 등용되여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가 주나라에서 살기 싫어 조선으로 넘어왔다는 설은 꾸며낸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로부터 다시 천여년이 지난 12세기초에 와서 사대주의사가들은 마치 조선은 기자에 의하여 생겨나고 발전되여온듯이 력사를 외곡하였으며 모란봉에 《기자묘》라는것까지 만들어놓고 그를 숭상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력사적사실을 가르쳐주시고나서 조선민족이 기자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사실과 맞지도 않는 《기자묘》까지 만들어놓은것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슬기로운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철한 가르치심을 받은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기자묘》를 파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기자묘》를 파려고 하던 날 아침 전화를 걸어오시여 청년들을 동원하여 와닥닥 하려고 한다는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먼저 《기자묘》앞에서 로인잔치를 차리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사람들, 특히 로인들가운데 《기자묘》가 자기 조상의 무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것만큼 무작정 무덤이나 파헤치는것보다 그들의 머리에 배긴 사대주의부터 가셔주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면서 그 구체적인 방도를 가르쳐주시였다.

다음날 《기자묘》앞에서 로인잔치를 크게 차렸는데 여기에는 평양시의 여러 구역에서 오래 산 로인들이 200여명 모여왔다.

그들은 《기자묘》가 진짜인가 가짜인가에 대한 론쟁을 벌리였는데 기자의 무덤이라고 인정할만한것이 나온다면 다시 묘를 수복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파헤쳐버리자는 합의가 나왔다.

그리하여 긴장한 분위기속에서 《기자묘》를 파기 시작하였는데 깊이 파들어가도 《기자묘》라는것을 증명할만한것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사흘만에 나온것은 몇개의 벽돌쪼각과 사기쪼각뿐이였는데 그것은 조선봉건왕조말기에 평양감사가 《기자묘》를 수복한다고 하면서 넣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것이였다.

마침내 《기자묘》가 허위라는것이 많은 사람들앞에서 명백히 증명되였다.

《기자묘》가 진짜라고 믿고있던 로인들은 여직껏 속은것이 분한 일이라고 하면서 큰 나라를 숭배하던 사대주의사상을 죽기 전에 버리게 되였으니 로인잔치에 왔던 보람이 크다고 하였다.

그날저녁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그 자리에 외래침략자들을 쳐부시는 싸움에서 지휘처로 리용했던것과 같은 정각을 하나 잘 건설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그 자리에 훌륭히 일떠선 송가정은 오늘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해박한 식견과 통찰력으로 《기자묘》의 허황성과 《기자동래설》의 부당성을 과학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진정 민족의 넋을 살려주시고 유구한 민족사와 찬란한 문화를 길이 빛내여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우리 조국의 력사와 더불어 천만년 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