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해방조선의 《총독》

 2024.4.8.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기나긴 세월을 오직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오시였다. 사색을 하시여도 활동을 하시여도 언제나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인민이 간직되여있었고 사고와 실천의 중심에는 인민에 대한 사랑이 놓여있었다.

모든 사색과 활동의 시작도 끝도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하고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일관되여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생애의 갈피속에는 지난날 온갖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오던 우리 로동계급을 해방조선의 《총독》으로 내세워주신 가슴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주체36(1947)년 9월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진제강소(당시)를 향하여 떠나시였다.

성진역장실에서 잠간 쉬셨으면 하는 성진시(당시)의 책임일군들의 청도 마다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빨리 성진제강소에 가서 우리의 강철로동계급부터 만나보아야 하겠다고, 강철이 많아야 우리 나라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로 건설할수 있다고 하시며 풍없는 차에 허물없이 앉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차가 쌍포고개길을 굽이굽이 돌고돌아 어느덧 무연히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에 올라섰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식으로 유표하게 지은 건물을 가리키시며 저 집은 무슨 집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일제때 총독놈이 오군 하던 사원구락부인데 여느때에는 고주파공장을 경영하던 일제관리들의 유흥장이였다고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로동계급은 과거에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의 악랄한 착취와 압박을 받았다고 분개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원구락부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진시만 보아도 일제놈들은 경치좋은 곳에 사원구락부와 같은 유흥장을 지어놓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고, 총독놈도 성진에 오면 사원구락부에 들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 악착한 놈들이 제멋대로 활개치고 다니던 세상은 영영 끝장났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흥분으로 상기된 성진시일군들을 향해 호탕하게 웃으시며 나라가 해방되여 인민의 세상이 되였으니 이제는 우리 나라에서 《총독》은 인민이라고, 누구보다 지난날 천대받고 멸시받던 우리의 로동계급이 《총독》으로 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지난날 천대란 천대는 다 받고 멸시란 멸시는 다 받으면서도 항변 한마디 할수 없었던 우리 로동계급이 《총독》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고 일군들은 격정의 눈물을 삼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원구락부를 가리키시며 사원구락부와 같은 좋은 집을 성진제강소 로동자들의 정양소로 쓰도록 하여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로동자들이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정양생활을 할수 있을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일제의 유흥장이였던 사원구락부를 무슨 건물로 리용했으면 좋겠는지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던 성진시일군들은 격정속에 로동자들의 정양소로 리용하겠다고 어버이수령님께 힘있게 말씀올렸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온갖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오던 우리 로동계급을 해방조선의 《총독》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세상에는 정치가도 많았고 《덕치》를 주장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처럼 인간에 대한 존중, 인민대중에 대한 존중을 가장 순결한 인간애로 간직하시고 그 길에 자신을 깡그리 바친 령도자나 혁명가는 어디에도 있어본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