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민족의 원시조-단군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

 2017.11.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단군과 고조선의 력사를 말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4권 140페지)

세월이 흐르고 세대는 바뀌였어도 우리 인민은 일제가 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이 땅에서 감행한 력사의 죄악들을 잊지 않고있다.

그 죄악중의 하나가 조선력사를 외곡, 위조하여 우리 인민들이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오랜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책동한것이다.

그것은 조선강점시기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있다.

단군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은 무엇보다먼저 우리 나라 전국각지에서 단군관계력사책들에 대한 전면적인 략탈과 소각책동을 감행하고 근 3천년간의 고조선력사를 없애버린데서 잘 알수 있다.

초대 조선총독으로 우리 나라에 기여든 데라우찌는 헌병들을 내몰아 전국각지의 책방들과 향교, 서원, 집들을 샅샅이 뒤지여 단군관계력사책들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귀중한 력사, 문화, 지리책들을 수십만권이나 압수하여 불태우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사실을 목격한 이름있는 한 력사학자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어느날 내가 다니던 서당에 일본헌병 두놈이 불의에 나타났다. 그때 늙은 서당선생은 벌써 어떤 예감이 들었던지 아이들이 읽는 책들중에서 얼른 두어책을 딴데 감추고 태연히 앉아있었다. 구두발채로 서당방에 들어선 일본헌병들놈들은 다짜고짜로 방안의 책들을 훌훌 집어던져보고는 저들이 찾는 책이 없었던지 늙은 서당선생에게 매우 불손한 행동을 하면서 다른 책이 왜 없느냐고 호통을 치고 가버렸다.

서당의 아이들은 몹시 격분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나중에 서당선생의 말에 의하면 왜놈들이 찾는 책은 〈동몽선습〉이고 자기가 감춘것도 바로 그 책이라고 하였다. 〈동몽선습〉이라는 책은 옛날 조선의 한 학자가 지은것으로서 〈천자〉를 읽은 다음에 아이들이 의례히 읽는 책인데 거기에는 〈우리 나라에는 초기에 임금이 없었는데 하늘로부터 신인(신)이 태백산으로 내려왔으므로 나라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모시니 그때로 말하면 서쪽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때이며 나라이름은 조선이라고 하였으니 이가 곧 단군이다.〉라는 글로부터 시작하여 간단히 조선력사를 쓴 책이였다. 그때 서당에서 읽는 책들중에는 간단히 다른 나라 력사를 쓴 〈소대통감〉이라는것도 있었는데 그 책은 일제가 금지하는 책목록에 들지 않은것이였다.

그러니 결국 일제는 단군으로부터 서술되는 조선력사책들을 다 없애버리는 한편 아주 어릴 때부터 조선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단군이라는 개념조차 완전히 없애자는 심산이였다.》

이 하나의 단편적인 실례는 일제가 단군관계력사책들을 찾아내고 우리 인민들이 어릴 때부터 단군에 대한 개념조차 알수 없도록 악랄하게 책동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일제는 단군관계력사책들을 략탈, 소각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근 3천년간의 고조선력사를 없애버리였다.

일제는 단군의 실재적존재를 말해주는 력사기록들을 강도적인 방법으로 말살한데 기초하여 1925년에 조선력사위조를 전문으로 하는 기구인 《조선사편수회》를 조작하였다. 여기에 망라된 일본의 어용사가들과 매국역적들에 의하여 새로 편찬된 《조선사》라는 책에는 단군에 의하여 성립된 고조선의 력사가 한마디도 언급되여있지 않다.

일제는 《단군신화》도 저들의 구미에 맞게 조작하고 그것을 널리 퍼뜨리였다.

일제가 아무리 단군관계력사책들과 고조선의 력사를 없앤다고 하여도 단군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할수는 없었다.

이로부터 일제는 실재한 인물인 단군을 부정하는 날조설을 퍼뜨리기 위하여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일제는 어용사가들을 내세워 단군을 후세에 만들어낸 신화적인 존재로 꾸미고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는것을 애써 《론증》하게 하였다.

이른바 《단군신화》론의 조작에는 일제의 어용사가인 이마니시를 비롯하여 《력사대가》로 자처하는자들이 많이 참가하였는데 그들의 론거를 보면 단군신화가 오랜 고대로부터 전승되여온것이 아니라 13세기말엽 불교승려인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와 리승휴가 편찬한 《제왕운기》 등에서 처음으로 나온것이며 그후 여러 력사책들에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기록을 이리저리 옮겨놓는 과정에 그 내용이 윤색되였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단군신화의 내용에는 불교나 도교의 취미가 많으니 그것은 중 일연이 불경이나 도장의 문구들을 이리저리 조립하여 만든 허황한것이라고 떠벌이였다.

이것은 력사의 기록들을 무시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허황한 주장이다.

일제어용사가들의 이러한 주장은 하나의 력사기록만 보아도 론리에 맞지 않고 허황하다는것을 쉽게 알수 있다.

그것은 일제의 어용사가들이 단군에 관한 기록이 《삼국유사》에서 처음으로 전한다고 하였지만 단군에 대한 첫 기록은 그보다 휠씬 이전의 책인 《삼국사기》에 있기때문이다.

1145년에 편찬된 책인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곳이다. 혹은 왕의 도읍터 왕검이라고 한다.(平壤者本仙人王儉之也 惑云王之都王儉)》(《삼국사기》 권17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 2월)

이러한 력사기록은 평양이 단군이 도읍한 땅이라는것과 일제의 어용사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삼국유사》보다 그 이전에 편찬된 책인 《삼국사기》에 단군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단군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책동은 다음으로 우리 인민들에게 단군에 대하여 가르치거나 숭배하는것마저 완전히 없애버린 사실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우에서 한 력사학자의 회상을 통하여서도 보았지만 서당에서까지 단군에 대하여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일제가 단군에 대한 교육을 얼마나 가혹하게 탄압하였는가는 능히 짐작할수 있다.

일제는 대종교 교주를 비롯한 신도들이 1916년 10월 구월산의 단군사당인 삼성사에서 진행한 단군에 대한 제사의식도 강제해산시키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삼성사를 페쇄하여 우리 인민들이 단군을 숭배하는 그 어떤 행사도 일체 진행하지 못하도록 야만적행위를 감행하였다.

일제의 이와 같은 단군말살책동에 의하여 단군을 실재인물로, 우리 민족사의 원시조로 인식하여오던 전통적인 관념이 사라지고 단군을 신화적인 인물, 허황한 존재로 보는 관념이 세상에 류포되였다.

오늘 단군과 고조선력사에 대한 전면적인 해명은 일제의 단군말살책동의 허황성과 그 범죄적정체를 낱낱이 밝혀놓고있다.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단군릉이 발굴되여 단군의 유골을 찾아내고 그 년대가 지금으로부터 5 000여년전이라는것이 과학적으로 확증됨으로써 우리 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동방의 선진문명국이였다는것은 물론 단군이 신화적인물이라고 하는 일제어용사가들의 《단군신화》론 조작설이 완전한 허위이고 날조라는것이 명백히 증명되였다.

일제가 단군과 고조선의 력사를 말살하여 우리 민족을 제놈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벌린 책동은 천추만대를 두고 용납 못할 력사의 죄악이다.

우리는 나라를 잃으면 민족의 조상도 잃게 된다는 력사의 교훈을 언제나 잊지 말고 우리 공화국을 주체의 핵강국, 세계적인 군사강국의 지위에 우뚝 올려세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충정으로 받들어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