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조선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의 창건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

 2019.4.2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을 창건하시고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아오시는 불멸의 업적을 쌓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총대로 우리 혁명을 개척하고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군사의 영재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여 일제의 야수적탄압에 의하여 생사존망의 갈림길에서 헤매이던 우리 민족에게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의 새로운 방향전환의 선구자이신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지원의 사상, 두자루의 권총, 동지획득, 3대각오를 유산으로 물려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조국해방의 성전에 나서시여 조선혁명이 나아갈 앞길을 구상하시고 수많은 동지들을 혁명조직에 묶어세우시였으며 적극적인 군사활동으로 전면적인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기 위한 정치군사적경험을 쌓으시였다.

이러한 토대에 기초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조선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조직령도하시였다.

주체20(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는 조선인민에 대한 살륙과 방화를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하였다.

적앞에 무릎을 꿇고 죽느냐 아니면 일떠서 끝까지 싸우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인민들은 한결같이 원쑤들의 류혈적탄압에 폭력적진출로써 대답하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혁명조직이 있는 곳에서는 일제와 그 주구를 반대하는 대중적투쟁이 줄기차게 벌어졌으며 그것은 점차 폭력적성격을 띠고 급속히 확대되여갔다.

이 투쟁은 일제와 반동적인 지주놈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대중의 혁명적기세를 더한층 앙양시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0(1931)년 12월 16일부터 10여일간 진행된 력사적인 명월구회의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일제의 만주강점으로 인하여 조성된 국내외정세와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의 력사적교훈을 분석하시고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조선의 국경지대와 광활한 만주의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을 잘 리용한다면 적은 력량을 가지고도 적의 무력을 부단히 소멸약화시켜 최후승리를 달성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러자면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여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이 독창적인 방침은 투쟁의 앞길을 찾지 못하여 애타하던 우리 조선민족에게 혁명이 아무리 간고하고 복잡하여도 능히 자체의 힘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었다. 또한 이 방침은 당시 조성된 혁명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내놓으신 유일하게 정당한 방침이였으며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무장투쟁에로 발전시켜 자체의 힘으로 조국의 해방을 이룩할수 있게 한 가장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도하신 명월구회의는 항일무장투쟁의 시초를 열어놓았으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이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는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조선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조직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닦으며 혁명무력의 무장을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지 혁명조직들과 지하공작원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는 분망한 속에서도 앞으로 유격활동의 중요지점으로 될수 있는 지역들가운데서 혁명화하기에 매우 어려운 지대들에 몸소 나가시여 그곳을 혁명화하는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푸르허의 농촌마을에 나가시여 한 조직원의 집 머슴으로 가장하시고 이곳을 혁명화하시였다. 이 마을은 적들의 감시가 심하여 수많은 지하공작원들이 들어갔다가 실패하군 하여 혁명동지들은 그이의 신변을 념려하여 굳이 만류하였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시로 닥쳐오는 위험을 물리치시며 비범한 수완과 능숙한 솜씨로 불과 한달 남짓한 사이에 온 마을을 혁명화하시였다.

무장대오를 결성하자면 무장이 있어야 하였는데 이 문제는 당시 국가적후방이나 민족군대의 토대도 없었던 형편에서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혁명무력을 결성하는데서 무장적기초로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버님으로부터 넘겨받으신 두자루의 권총과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신 이후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마련하신 무장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을 밑천으로 하여 조선혁명군 성원들과 지하투쟁에서 단련된 선진청년들로써 무기탈취를 위한 투쟁을 직접 조직하시는 한편 각지의 지하혁명조직들과 혁명군중을 무기를 얻기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이 투쟁에는 당원들과 공청원들 그리고 소년선봉대원들과 적위대원, 부녀회원들 지어 로인들과 어린이들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떠섰다.

이러한 투쟁은 왕청을 포함한 동만 각 지방들에서 줄기차게 벌어졌으며 혁명조직들에서는 무기획득을 위한 투쟁을 비롯하여 실천투쟁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우수한 청년들을 무장성원으로 선발하였다.

이리하여 일제의 백색테로가 감행되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장대오를 결성하고 적극적인 무장활동을 벌릴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마련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반일련합전선을 형성하여 항일유격대의 활동지반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직접 조직령도하시였다.

당시 조선인민의 혁명무력을 창건하며 항일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리기 위한 투쟁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장애로 된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중국인반일부대(구국군)들의 적대적인 행동이였다.

이런 형편에서 항일유격대가 자유롭게 활동하며 무장투쟁을 크게 벌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조선공산주의자들과 혁명군중들에 대한 반일부대들의 적대행위를 저지시키고 그들과 반일련합전선을 이룩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당시 그들과 접촉하는것조차도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형편에서 이 난관을 해결한다는것은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우에 가로놓인 이 난관을 타개하시기 위하여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시였다.

당시 안도에는 우사령이 지휘하는 반일부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항일유격대에 입대하기 위하여 여러곳에서 찾아오는 선진적인 조선청년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학살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악하기로 이름난 이 우사령부대를 찾아가 그 두령과 직접 담판할것을 결심하시고 주체21(1932)년 4월 상순 불과 서너명의 동지들을 데리시고 우사령을 찾아가시였다.

담판과정에 우사령은 위대한 수령님의 당당한 위풍과 사리정연한 론리, 견결한 반일사상과 복잡한 정세를 예리하게 분석판단하시는 비범한 정치적안목, 진지하고 참을성있는 설복에 감화되여 끝내 머리를 숙이게 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의하신대로 부대에 조선사람들로 조직된 별동대를 조직하여 합법적으로 활동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과학적인 투쟁로선과 방침, 헌신의 로고가 있었기에 주체21(1932)년 4월 25일 마침내 조선인민의 첫 혁명적무장력은 자기의 탄생을 온 세상에 선포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시고 이끄신 첫 혁명적무장대오인 반일인민유격대는 간고한 무장투쟁을 통하여 마침내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였으며 항일유격대에 그 뿌리를 두고있는 정규적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은 제국주의자들의 침공을 물리치고 전승의 축포를 쏘아올렸다.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하시고 일당백의 강군으로 키워주신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은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밑에 최강의 군대로 이름떨치고있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헌신의 로고가 있어 우리 군대는 영원히 사회주의전취물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당의 군대, 인민의 군대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다해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