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권혁창
2024.7.5.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기나긴 세월 인간이 당할수 있는 모진 슬픔과 괴로움을 다 겪으시면서도 오직 혁명만을 생각하시였으며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위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을 지니시고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오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력사의 땅 포평에는 만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숭엄하게 해주는 《압록강의 노래》의 비문이 있다.
이 비문이 세워지게 된데는 뜻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주체80(1991)년 9월 1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평혁명사적지를 찾아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포평땅이 청소년학생들과 수많은 근로자들을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는 대로천혁명박물관으로 꾸려진데 대한 일군의 보고를 들으시며 더없이 만족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모양으로 다듬어진 비문을 보시며 거기에 무엇이라고 썼는가고 물으시였다.
거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광복의 천리길》을 걸어 이곳 포평나루를 건느신 때를 회상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새겨져있었다.
나는 14살때에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고 압록강을 건넜다고, 그때 나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이렇게 생각하니 어린 마음에도 슬픔을 금할수 없었다고 하신 비문의 말씀내용을 강사가 해설해드리였다.
강사의 해설이 끝났으나 그이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좀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실줄 모르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자신께서 14살때 압록강을 건느면서 부른 《압록강의 노래》를 동무들도 다 알고있으면 다같이 한번 불러보자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못잊을 그날의 노래를 부르시였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
그 누군가가 지었다는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며 압록강을 건느시였던 14살의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조국해방을 이룩하시고 66년만에 그날의 그 노래를 감회깊이 부르시는것이였다.
일군들도 그날의 포평나루에 선 심정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모두의 눈언저리는 축축히 젖어올랐다.
노래가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예전과 달라서 노래를 잘 부를수 없다고 하시며 웃으시였다.
일군들과 강사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14살때에 여기를 거쳐 무송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로부터 66년이 지났다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도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실 때 있은 사실들을 회고하시고 포평혁명사적관의 혁명사적사업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그후 포평의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66년만에 친히 부르신 《압록강의 노래》를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노래비를 세웠다.
66년만에 다시 부르신 《압록강의 노래》!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다지시던 그날의 굳은 각오로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여 부강한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게 하는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