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 박사 문춘광
2021.3.2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는것은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481페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간직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외국방문을 보좌하시는 나날에도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마음쓰시였고 수령님께서 가시는 길을 먼저 밟아보는것을 전사의 도리로, 마땅한 의리로 여기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도네시아를 공식국가방문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인도네시아의 수도 쟈까르따에 도착하신것은 주체54(1965)년 4월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방문 첫날 오후 위대한 수령님의 대외활동을 보좌하시느라 더없이 분망하시였지만 인도네시아주재 우리 나라 대사를 만나시여 사업보고를 받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대표단사업전반을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은 잊을수 없는 의의있고 기쁜 날이라고 하시면서 적도의 열풍보다 뜨거운 인도네시아인민들의 환영에 대하여 빨리 조국에 알려야 하겠다고 하시며 대사관으로 향하시였다.
초대소에서 한 일군을 만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는 수령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인도네시아에 무사히 도착한것이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오늘 인도네시아인민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는것을 보니 먼길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것 같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길의 피로도 푸실사이 없이 초대소의 수행일군들의 방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예술인들과 비행사들의 숙소까지 다 찾아주시였다. 24시가 지났지만 위대한 장군님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집무탁우에 반둥시가 빨간색동그라미로 그려져있는 지도와 관련된 일이였다.
반둥시가 빨간색동그라미로 그려진데는 사연이 있었다. 당시 인도네시아측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둥시를 방문하시는것과 관련하여 비행기를 리용하자는 안과 승용차를 리용하는 안을 놓고 우리 측에 어느 쪽을 택하는것이 더 좋겠는가 하는것을 문의하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번 가보지 않고 서뿔리 결론할수 없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직접 수백리 자동차로정을 밟아보시려고 지도의 반둥시에 붉은색 동그라미를 그려넣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도로상태와 주변의 지형, 크고 작은 주민지구의 배치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는데 불편한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세심히 알아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면 천리라도 가보아야 한다고, 수령님께서 가시는 길을 먼저 밟아보는것은 우리 전사들의 초보적인 도리이고 의무라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안녕은 곧 우리 인민의 안녕이고 우리 당의 안녕이며 우리 조선의 안녕이라고 절절히 가르쳐주시였다.
이른 새벽 단숨에 수백리길을 달려 현지를 밟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동차편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하시며 비행기를 리용하는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먼저 반둥시를 다녀오셨다는 보고받은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는 김일성각하는 하늘이 낸 위인이시니 그분의 슬하에 있는 《젊은 사령관》도 분명 위인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자기의 보좌관들에게 《젊은 사령관》처럼 김일성각하의 신변안전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외국방문을 보좌하시면서 수령님께서 가셔야 할 길 수백리를 먼저 밟아보신 다음 승용차가 아니라 비행기로 안전하게 수령님을 모시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충성의 세계에 수카르노대통령은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