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력사유적 칠성문

 2024.4.1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모란봉은 마치 모란꽃과도 같이 생김새가 기묘하고 특이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모란봉에는 우리 나라의 오랜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고적도 많습니다.》

평양시의 한복판을 흐르는 대동강의 오른쪽연안에 있는 모란봉에는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칠성문이 있다.

모란봉의 칠성문
모란봉의 칠성문
사진. 모란봉의 칠성문

칠성문은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문으로서 6세기 중엽에 처음 세운 후 고려때에 고쳐짓고 1711년, 1764년에도 다시 지었다.

칠성문이란 이름은 북두칠성쪽에 있는 북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은 성벽의 연장으로 되는 축대와 그우에 세운 문루로 되였으며 량쪽 성벽을 약 10m쯤 사이나게 어기게 쌓고 그 두 성벽사이를 이으면서 가로 세웠다.

이 성문에서는 한쪽성벽을 성문앞쪽으로 내밀어 쌓고 그 끝을 보강하여 옹성으로 리용하였다. 축대는 다듬은 돌로 정연하게 쌓고 거기에 무지개문길을 냈다.

축대우에는 성가퀴를 쌓았으며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정면 3간(7.38m), 측면 2간(4.36m)의 홑처마 합각집이다. 문루의 바깥쪽으로 돌아가면서 세운 흘림기둥은 가운데간을 넓혀 중심을 강조하였다. 가운데간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집안은 통천정으로 하면서 시원히 틔워놓았다.

건물에는 화려한 모루단청을 입혀 그 품위를 높이였다. 문루는 규모가 작은 편이나 구조가 간결하면서 밑부분의 복잡한 구조와 잘 어울리여 위엄있게 보인다.

칠성문에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한 우리 인민의 자랑찬 투쟁의 력사가 깃들어있다. 우리 인민들은 1010년 이 성문앞에서 외래침략자들에 섬멸적타격을 주었으며 임진조국전쟁시기에는 평양성을 일시 강점하였던 왜적들을 칠성문으로 맨먼저 쳐들어가 격멸소탕하였다. 오늘 칠성문은 훌륭히 보존관리되고있으며 근로자들을 애국주의로 교양하는 장소로, 문화휴식터로 리용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