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금평동굴유적에서 발굴된 인류화석

 2021.5.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의 슬기와 력사는 문화유산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여집니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선조들이 어떤 문화를 창조하고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어떠한 길을 걸어 발전하여왔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실물자료입니다. 더우기 문자가 없던 오랜 옛날의 력사는 유적유물에 의해서만 과학적으로 밝힐수 있습니다.》 (김정일전집》 제8권 231~232페지)

력사유적과 유물은 우리 강토에서 선조들이 어떻게 살며 발전하여왔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귀중한 실물자료들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나라에서는 원인이 남긴 구석기시대 전기의 검은모루유적, 동암동유적과 고인이 남긴 구석기시대 중기의 대현동유적, 승리산유적 아래문화층 그리고 신인이 남긴 구석기시대 후기의 승리산유적 웃문화층, 풍곡동굴유적, 금옥동굴유적, 만달리동굴유적, 룡곡1호동굴유적, 룡곡2호동굴유적, 대흥1호동굴유적, 중리동굴유적, 청파대동굴유적, 향목리동굴유적을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발견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전해주는 귀중한 실물자료로 된다.

주체68(1979)년에 평안남도 은산군 류정리에서 발굴된 금평동굴유적은 그러한 유적의 하나이다.

금평동굴유적은 우리 나라 북부의 랑림산맥에서 시작되는 대동강상류에 위치하고있다.

이 동굴은 입구가 남쪽으로 열려져있기때문에 해빛을 받는 시간이 매우 길다.

또한 굴안이 비교적 깊고 찬바람을 막을수 있으므로 겨울철에도 사람이 들어가 살수 있었다. 그리고 동굴앞으로는 금평천이 흘러 대동강지류인 비류강에 합류되고 크고작은 산들과 벌을 끼고있기때문에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사냥 및 채집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업활동을 벌리면서 살아가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였다.

발굴후 동굴입구의 너비는 4m, 높이는 6.6m, 동굴길이는 26m였다.

금평동굴유적은 2개의 문화층으로 구분되였는데 이 문화층에서는 2개체분에 해당한 사람의 아래턱뼈화석들과 7개소의 불자리, 석기 18점, 동물화석 2 000여점이 발굴되였다.

사람의 아래턱뼈화석들은 2문화층에서 찍개, 긁개, 찌르개를 비롯한 석기들과 사슴, 복작노루, 큰곰, 표범, 누렁이를 비롯한 동물화석 그리고 6호불자리와 함께 드러났는데 이 인류화석을 금평사람으로 부른다.

금평사람은 일련의 주목되는 인류학적특징들을 가지고있다.

우선 아래턱뼈겉면에 뼈주름이 잘 발달되고 이틀은 넓은 포물선형을 이루기때문에 현대사람의 아래턱뼈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둔한 감을 준다. 즉 1호아래턱뼈의 턱이음부지수는 46.2로서 현대사람의 경우(40.3)보다 훨씬 크고 신인인 룡곡사람 4호의 경우(46.7)와 비슷한 특징들을 가지고있다.

그리고 턱구멍위치지수는 47.9로서 현대사람의 경우(50.1)보다 작고 신인인 룡곡사람 6호의 경우(47.3)와 비슷한 특징들을 가지고있다.

한편 금평사람은 아래턱불룩이와 턱오묵이가 형성되고 아래턱뼈의 안쪽면에 턱가시가 발달되였으며 턱혀살가시가 턱혀뼈살가시에 비해 뚜렷하게 큰것이 특징적이다.

다음으로 아래이발들의 특징을 보아도 현대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둔한 감을 준다. 특히 1호아래턱뼈의 큰어금이들가운데서 첫째큰어금이는 둘째큰어금이보다 상대적으로 크다.

이것은 아래큰어금이들가운데서 둘째큰어금이가 현대사람의 경우처럼 작아졌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금평사람의 아래큰어금이들을 보면 제3퇴화정도지수가 101.9로서 현대조선사람의 경우(97.96)에 비해 뚜렷하게 큰데 이것은 금평사람의 아래둘째큰어금이의 퇴화정도가 매우 약하며 따라서 아래둘째큰어금이가 상대적으로 작다는것을 보여준다.

한편 금평사람은 큰어금이들에 이발띠가 없다.

그리고 금평사람은 아래첫째큰어금이와 둘째큰어금이의 이발그루 뒤꿈치부가 세도드리부에 비해 좁은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현대사람은 보통 아래둘째큰어금이의 이발그루 뒤꿈치부가 세도드리부에 비해 좁은것이 특징적이다.

이와 같이 아래턱뼈에 턱불룩이와 턱오묵이가 형성되고 턱혀살가시가 턱혀뼈살가시보다 크며 첫째큰어금이가 둘째큰어금이보다 상대적으로 큰것, 큰어금이들에서 이발그루 뒤꿈치부가 세도드리부보다 넓고 이발띠가 없으며 턱구멍이 넷째작은어금이아래에 있는것 등은 진보적인 인류학적특징으로 된다.

그러나 아래턱뼈와 이발들이 크고 둘째큰어금이의 퇴화정도가 약하며 둘째큰어금이의 이발그루 뒤꿈치부가 세도드리부에 비해 넓은것 등은 원시적인 인류학적특징으로 된다.

그러므로 금평사람은 늦은 시기의 신인에 속한다.

금평사람이 알려진 층위는 동물화석상에 의하면 상갱신세 후기에 해당된다.

금평사람의 인류학적특징과 동물화석상에 의하면 금평동굴유적은 늦은 시기의 신인들이 남긴 구석기시대 후기유적임을 알수 있다.

참으로 금평동굴유적에서 발굴된 인류화석은 우리 선조들이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에서 련면히 살아오면서 사냥 및 채집을 비롯한 여러가지 생업활동을 벌리면서 구석기시대 후기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는것을 뚜렷이 확증해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