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의 오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롭고 재능있는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음악을 사랑하였으며 아름답고 우아한 민족음악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왔습니다.》
민족음악은 인민들의 민족적정서와 감정, 생활풍습을 반영한 음악으로서 매개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체현하고있다.
고려의 민족음악은 삼국 및 발해, 후기신라시기의 음악전통을 계승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시기 민족음악발전의 특징은 당대의 불합리한 현실생활과 봉건통치의 부패상을 폭로비판하는 인민가요들이 수많이 창작보급되고 새로운 서정가요양식의 시조, 가곡, 별곡체가요들이 발생발전하였으며 민족기악과 궁중음악이 다채롭게 발전한것이다.
고려시기에 우선 다양한 주제의 인민가요들이 수많이 창작보급되였다.
다양한 주제의 인민가요에는 인민들의 생산활동과 관련한 로동생활주제의 민요, 당대의 불합리한 현실생활과 봉건통치의 부패상을 폭로비판하는 가요,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노래한 가요들이 있었다.
로동생활주제의 민요로서는 《어부가》, 《도가》(노젓는 노래), 《어창》(고기잡이노래), 《금강성》 등을 들수 있다.
《어부가》, 《도가》, 《어창》은 어부들의 생활과 관련한 민요로서 어부들속에서 많이 불리워진 로동가요이며 《금강성》은 축성공사와 관련한 로동가요이다.
당대의 불합리한 현실생활과 봉건통치의 부패상을 폭로비판하는 가요들로서는 《해종일 밭갈아도》, 《묵책요》, 《사리화》, 《제위보》, 《거사련》, 《수정사》, 《보현원요》, 《호목요》, 《아야요》, 《우대후요》, 《목자요》, 《회군요》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매관매직을 일삼는 통치배들의 부패한 인재등용정책과 파렴치한 수탈행위를, 벼슬길에 눈이 어두워 돌아치는 봉건관리들의 탐위욕과 우둔성을, 중들의 부패타락한 리면생활을, 홍두적이 침입해왔을 때 저들만 살겠다고 달아나는 국왕과 통치배들을 폭로비판하였다. 또한 일년내내 애써 지은 곡식을 봉건통치배들에게 다 빼앗긴 농민들의 기막히고 억울한 사연을, 반몽전쟁으로 극도의 빈궁상태에 빠진 인민들의 가긍한 생활처지를, 부역에 끌려나간 남편을 안타까이 기다리는 안해의 소박한 심정을 노래하였다.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가요로서는 《한송정》, 《서경》, 《대동강》 등을 들수 있다.
가요 《한송정》은 고려 초기에 인민들속에서 많이 불리워지던 노래로서 한송정에서 경포(호수)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밤의 경치를 생동하게 노래한 작품이며 《서경》과 《대동강》은 고구려의 옛 수도이며 고려의 제2수도였던 평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민요였다.
고려시기에 다음으로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시조, 가곡, 별곡체가요들이 발생발전하였다.
삼국시기에 민족가요의 한 형태로 발생하여 발해, 후기신라시기 전성기에 들어섰던 향가는 시대적변화와 계급적요구에 따라 11세기초엽 이후에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대신 새로운 시조, 가곡이 발생하게 되였다.
노래집 《가곡원류》(1876년에 편찬된 노래집)에 10세기말~11세기초에 활동한 최충, 곽여 등의 시조작품들이 전해지는것으로 보아 11세기초 이후에 시조가 발생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시조음악이 발전하는 과정에 시조를 악곡에 맞추어 부르는 가곡이 12세기초 중엽에 발생하게 되였다. 이 시기에 창작된 가곡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 작품으로는 《정과정》과 《별곡조》를 들수 있다.
《정과정》은 류배생활을 하는 필자의 애절하고도 처량한 감정을 담고있으며 12세기초에 예종이 지었다는 《별곡조》는 음정이 구슬프고 애절한 곡조로서 교방의 가수들에 의하여 널리 불리워진 가곡이였다.
고려전반기에 발생한 시조, 가곡들은 13세기말~14세기에 와서 활발히 창작보급됨으로써 전시기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으며 음악양식으로서의 체모가 완성된 별곡체가요로 발전하였다.
별곡체가요는 단가형식의 가곡과 달리 절가형식의 여러개의 분절을 가진 장문가요이다. 별곡체가요로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대표적인 작품은 《서경별곡》, 《가시리》, 《청산별곡》, 《관동별곡》, 《죽계별곡》 등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평양의 대동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녀인의 슬픈 감정과 당대의 불합리한 현실에 불평불만을 품고 산천에 숨어사는 선비의 생활감정 그리고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지방의 명승지들과 풍기고을의 순흥지방에 대한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노래하였다.
고려시기에 다음으로 민족기악과 궁중음악이 다채롭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 고대로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 창조되여 사랑을 받아오던 가야금, 저대를 비롯한 민족악기들이 그대로 리용되였고 일부 악기들은 다양한 종류와 형태로 개량되여 음악연주에 리용되였다. 여기에다 다른 나라와의 음악교류과정에 들어온 외래악기들을 우리의 민족악기에 맞게 개량하여 쓰게 됨으로써 악기의 종수가 증대되였을뿐 아니라 그 연주형식도 보다 다채롭게 되였다.
고려시기의 관악기로서는 호가, 향피리, 당피리, 대함, 중함, 소함, 당적, 퉁소, 태평소, 지, 저, 훈, 소, 소생, 화생, 우생, 포생, 뿔나팔, 라패 등 19종이 있었으며 현악기로서는 가야금, 해금, 현금, 항비파, 당비파, 아쟁, 대쟁, 슬, 1현금, 3현금, 5현금, 7현금, 9현금, 공후, 쟁, 쌍현, 5현 등 17종이 있었다. 타악기로서는 장고, 교방고, 박판, 방향, 편종, 편경, 진고, 립고, 축, 어, 박부, 꽹과리, 북, 큰북 등 14종이 있었다.
이렇듯 고려시기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악기들이 연주에 리용되였다는것은 기악음악이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당시의 이름난 기악명수들로는 저대에서 문탁,가야금에서 대어향,옥기향,향비파에서 김선,해금에서 종지,장고에서 설원 등을 들수 있다.
고려시기에는 또한 궁중음악도 발전하였다.
고려의 궁중음악에서는 전통적인 민족음악예술형식인 향악(속악)이 지배적이였고 그와 함께 이웃나라와의 문화교류과정에 생겨난 당악과 대성악이 있었다.
고려시기 궁중음악에 리용된 향악은 그 이름과 같이 향 즉 나서 자란 자기 고향, 자기 나라 인민들속에서 창조된 음악으로서 궁중안으로 흘러들어가 봉건통치배들의 비위에 맞게 개조된 음악을 말한다. 그러므로 향악가운데는 처음 인민들이 창작한 본래의 모습대로 전하는것은 별로 없지만 그 가운데는 전통적인 인민적내용이 적지 않게 담겨져있다.
《고려사》 악지에는 《동동》을 비롯하여 28편의 향악곡을 전하나 조선봉건왕조실록을 보면 15세기전반기에 향악곡이 50곡, 82곡이 있었다고 전하는것으로 보아 고려시기에 많은 향악곡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궁중음악에서 널리 불리워진 대표적인 향악곡은 《정읍사》, 《동동사》, 《무애사》, 《처용가》 등이였다.
고려의 궁중음악에는 전통적인 향악과 함께 당악도 리용되였다.
고려에서 궁중음악에 당악이 도입되기 시작한것은 10세기중엽부터이며 당시 도입된 당악으로는 《포구악》, 《헌선도》 등이였다.
다른 나라 음악들은 대체로 그 악기와 악곡들을 우리 나라 사람들의 감정에 맞는것으로 개작한것이였다.
고려의 궁중음악에는 제례음악으로서 규모가 매우 큰 대성악이 있었다. 이 제례악은 12세기 10년대부터 연주되기 시작하였으나 80년대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
고려에서는 12세기초에 대규모적인 궁중악단이 조직되였는데 그것은 성격이 서로 다른 등가악단과 헌가악단으로 나뉘여져있었다.
등가악단은 궁전뜰 층계우에서 연주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악단으로서 노래반주를 위주로 하였다면 헌가악단은 궁전뜰 층계아래에서 연주하는 큰 규모의 악단으로서 주로 춤과 노래반주를 하였다. 이 두 악단은 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서로 엇바꾸어가면서 연주하였는데 악단들의 규모와 조직구성을 보면 등가악단은 악공 26명과 가공(가수) 4명, 협률랑(지휘자) 1명을 포함하여 모두 33명으로 구성되고 헌가악단은 악공 179명, 가공 12명, 무공(무용수) 96명, 협률랑 1명 총 288명으로 구성되여있었다.
이러한 관현악단들은 궁중제례악(제사)과 연례악(연회)에 리용되였으나 빈번한 연주활동을 통하여 수많은 음악예술가들이 자라났으며 그들의 예술적기량도 훨씬 높아졌다.
고려시기 민족음악발전의 밑바탕에는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