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사회에서 정권은 지배계급이 사회를 정치적으로 지배하는데 복무합니다.》 (《
과거제도는 봉건사회에서 관리등용 또는 일정한 자격수여를 위하여 지배계급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국가적인 시험제도이다.
우리 나라의 력대 봉건국가들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극소수 지배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반인민적인 통치기구들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수많은 관료들을 선발배치하여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주로 사냥경기를 통하여 군사에 능하고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관료로 임명하였고 후기신라에서는 788년부터 독서삼품제를 실시하여 우수한자들을 뽑아 봉건관료로 임명하였다면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에서는 10세기 중엽부터 과거제도를 실시하여 관료들을 선발배치하였다.
고려봉건국가에서는 958년(고려 광종 9년) 5월 시(詩), 부(賦), 송(頌) 및 시무책(時務策)을 시험쳐서 진사를 선발한것으로부터 과거제도가 시작되였으며 이때부터 과거제도는 관리등용의 기본수단으로 되였고 관리들은 대체로 이 관문을 거쳐 벼슬길에 들어섰다.물론 고려시기 과거를 보는 외에도 숨은 인재의 추천, 공로있는 사람의 후손등용 등 벼슬길에 들어서는 길이 있었으나 이러한것은 극히 드문 현상이였고 대다수의 지배계급은 과거를 거쳐 관료대렬에 들어섰다. 비록 이름있는 경대부라고 할지라도 과거시험을 치지 않으면 벼슬에 나갈수 없었다.
고려봉건국가의 과거제도는 조선봉건왕조시기처럼 처음부터 문과와 무과시험이 다같이 실시되지 못하고 초기에는 문과시험만이 실시되여오다가 고려말기인 1391년에 와서 무과시험도 실시되였다.
고려시기 과거시험과목으로는 글짓기시험인 제술과와 유교경전을 외워바치는 시험인 명경과가 있었고 의복(의학과 복학), 지리(음양풍수설), 률학, 서학, 산학, 삼례(주례, 의례, 례기), 삼전(춘추의 주해책인 좌전, 공양전, 곡량전), 하론(시무책-무엇을 우선적으로 하며 무엇이 더 좋은가 등 제목으로 글짓기) 등이 있었는데 여기서 기본은 제술과와 명경과였다. 이와 함께 국자감에서 보이는 시험인 승보시(생원을 뽑는 시험)가 있었는데 이것은 후진을 격려하기 위하여 치는 시험이였다.
고려시기 과거시험은 먼저 주, 현들에서 과거응시자를 계수관(해당 지역의 중심고을)에 올려보내면 계수관에서 시험을 쳐서 선발하여 수도에 올려보내고 수도에서는 국자감에서 다시 시험을 쳐서 합격한자들을 입학시켜 3년간 공부시킨 다음 기본시험에 응시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977년, 983년 등 국왕이 직접 시험장에 나가 복시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것이 제도화되지는 않았다.
고려봉건국가에서 과거시험은 해마다 혹은 한해건너 실시하기도 하고 또 몇해 지나서 실시하거나 한해에도 두번 실시하는 등 기간이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았으며 급제자를 뽑는데도 초기에는 대체로 10명미만을, 11세기부터는 20명미만을, 11세기말부터는 30여명을 급제시키기는 하였지만 규정된 정원이 따로 없었다.
고려시기 과거응시에는 엄격한 신분제한이 있었다. 법제상으로는 반역자, 천민, 불충, 불효한자, 향, 부곡민, 악공, 잡류의 자손들은 과거보는것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실지로 광범한 근로대중에게는 과거 응시와 합격의 기회가 주어질수 없었을뿐아니라 그들은 애당초 과거에 응시할만한 학력을 가지기 위한 교육을 받을수도 없었다. 실례로 12세기전반기 식목도감에서 제정한 국자감의 입학대상규정에 의하면 유학과들인 국자학, 태학, 사문학과에는 각각 3품이상, 5품이상, 7품이상의 관료자손들이, 잡학과들인 률학, 서학, 산학에는 8품이하의 관료자식들만이 입학하여 공부할수 있었다. 따라서 극소수 봉건통치배들의 자손들만이 과거에 응시할수 있었다.
고려의 과거제도는 초기에 시험방식과 뽑는 제도, 임명하는 방법 등 질서가 일정하게 잡혀있었으나 말기에 권신들이 실권을 틀어쥐고 전횡을 부리면서 점차 문란해짐으로써 한때 묵책(어지러운) 정사라는 비방과 분홍(어린 아이)급제라는 비난까지 받게 되였다.
이처럼 고려봉건국가의 과거제도는 그 내용과 형식의 여하를 물론하고 전적으로 봉건통치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실시된 반인민적관료통치제도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