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최성근
2021.12.1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참다운 동지애의 시원을 열어놓으시고 간고하고 준엄한 혁명투쟁의 실천속에서 그 빛나는 본보기를 창조하신 혁명적동지애의 화신이십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0권 4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을 시작하시였으며 동지들을 묶어세워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나가시며 동지애의 숭고한 력사를 창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전사들을 믿고 그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돌려주시였으며 혁명의 길에서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시고 눈물도 많이 흘리시였으며 언제나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생애를 빛내여주시였다.
언제나 먼저간 동지를 잊지 않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동지애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수많이 남기며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고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 일찌기 일군들을 찾으시여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너무도 뜻밖에 물으심에 미처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 무슨 국가적명절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그 누구의 생일인가를 더듬어보았으나 그것도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물으실 때에는 분명 까닭이 있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짚이는데가 없었다.
대답을 기다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이 바로 1년전에 덕삼동무가 사망한 날이라고 나직히 교시하시였다.
김덕삼은 해방후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다닌 평범한 운전사였다. 그는 전화의 나날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면 전선천리 불비속도 두려움없이 달려가던 충실한 전사였다.
그러던 그가 주체39(1950)년 12월 자강도 장강군 향하리(당시)에서 당중앙위원회 제3차전원회의를 지도하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기 위하여 승용차의 발동을 걸어놓고 출발명령을 기다리다가 운전대를 틀어잡은채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랑하는 전사가 갑자기 숨진데 대하여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양지바른 곳에 묘자리까지 잡아주시였으며 장례식까지 참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하고 혁명에도 충실했던 동무를 잃었다고, 입이 무거워 말은 적었지만 언제 평양으로 가게 되는가고 묻군 하던 동무를 여기에 혼자 남기고 가게 된다고 하시면서 덕삼동무를 두고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리 길이 바빠도 하루 더 묵으면서 덕삼동무와 함께 있자고 하시면서 평양으로 나오시게 된 일정까지 바꾸시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가고 그와 함께 일하던 부관, 운전사들도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기억이 희미해져가고있을 때 끝까지 그를 잊지 않으신 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한길에서 싸우던 전우들과 유가족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저녁 덕삼동무의 집에 가보는것이 좋겠다고 간곡히 이르시고는 제상에 차려놓을 제물까지 갖추어 일군들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안은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였다.
가렬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나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평범한 운전사의 제사날까지 잊지 않으시고 그를 추억해주시고 일군들까지 보내주시니 그 사랑에 목이 메여 울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 대하여 추억도 해주시고 그들의 유가족들의 생활형편도 알아보시면서 뜨거운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속에 몸은 비록 숨졌어도 그는 영생하는 삶을 누릴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동지애는 위대한 인간사랑의 전설을 아로새기며 만사람을 감동시킨 뜨거운 사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