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박금순
2023.5.8.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일찌기 혁명투쟁에 나서신 때로부터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16권 289페지)
한생을 인민을 위해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마다에는 수령님과 시간에 대한 가슴뜨거운 이야기들이 수없이 아로새겨져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에게 차례진 시간은 인민을 위한 시간이라고 하시면서 분초를 쪼개가며 일하시였다.
식사시간도 밤시간도 일요일과 명절, 생신날까지도 인민을 위해 바치시였다.
주체47(1958)년 7월말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앞두시고 한 일군에게 현지지도대상들을 찍어주시면서 구체적인 일정계획을 짜보라고 하시였다.
과업을 받은 일군은 곧 현지에 내려가 도안의 일군들과 머리를 맞대고 일정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그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찍어주신 로정을 따라가며 거리와 시간을 가늠해보면서 필요한 날자를 구체적으로 타산해보았다. 그런 다음 그것을 종합해보니 총 25일이라는 기일이 나왔다.
일정계획을 빈틈없이 세우느라고 하였지만 정작 25일이라는 기일이 나오니 그 일군은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돌보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개 도의 사업을 위하여 근 한달이나 현지에 나가계신다는것은 너무 오래다고 느껴졌기때문이였다.
그리하여 그 일군은 현지지도날자를 다문 며칠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머리를 쓰며 일정계획을 다시 세웠다.
우선 로상에서 소모되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고 하루 현지지도대상을 한두개씩 늘이였다. 그리고 같은 부문의 현지지도대상은 더러 뽑기도 하면서 날자를 당기였다.
그렇게 해서 본래보다 5일이 줄어들어 20일이라는 기간이 나왔다. 그것을 재삼 깐깐히 검토해보았으나 그 이상 더는 단축할수 없다고 생각한 일군은 20일로 작성한 일정계획을 그대로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였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드시고 날자별로 들리실 대상과 거리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날자를 너무 널널이 잡았다고 하시면서 손수 만년필을 드시고 그 일군이 빼놓았던 일부 대상들을 다시 넣으면서도 일정계획을 13일이나 줄이여 7일간으로 짜주시였다.
그때 예견된 현지지도대상은 6개 시, 군의 수십개 대상이나 되였는데 그 로정은 대부분이 험한 산골길로서 수천리가 넘었다.
그러므로 차를 타고 얼핏얼핏 지나가기만 하여도 며칠은 실히 걸려야 할 로정이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단 7일동안에 그 험하고도 먼 로정에 있는 수십개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다 돌아보시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일정계획을 다문 며칠만이라도 늦추어주셨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에게 우리에게 차례진 시간은 인민을 위해 일하는 귀중한 시간이기때문에 분과 초를 쪼개여 써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그 7일동안만이 아니라 전생애를 분과 초로 쪼개여 쓰시면서 인민의 행복을 위해 고스란히 바치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은 우리 인민들이 바란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결심을 안으시고 인민을 위한 갖가지 크고작은 일들을 끊임없이 구상하고 실천하시였으며 생애의 마지막날까지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불철주야로 헌신의 길을 걷고 걸으신 한평생, 휴식없는 한평생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