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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민족사가 세상에 떳떳이 자랑할수 있는 력사로,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들이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빛을 뿌리고있는것은 뜨거운 조국애, 민족애를 지니신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의 력사유적-관음사에도
박연폭포에서 산길을 따라 대흥산성 북문으로 들어서서 약 1㎞가량 올라가느라면 청량봉낭떠러지의 산중턱에 관음사라는 절간이 자리잡고있다.
970년(광종 21년) 법인국사라는 중에 의해 처음 세워졌을 때에는 굴안에 관음보살상 한쌍을 놓고 《관음굴》이라고 불리우다가 그후에 이곳에 절간을 짓고 1393년(태조 2년)에 크게 확장하였다.
현재 있는 건물은 1646년(인조 24년)에 고쳐세운것인데 지금 남아있는것은 대웅전과 승방, 7층석탑과 관음굴이다. 그리고 관음사 축대아래 길옆의 바위우에는 1660년(현종 1년)에 세운 거북받침을 한 비석이 있는데 여기에는 관음사의 연혁이 새겨져있다.
관음사는 산봉우리의 중턱에 자리잡고있어 길이 몹시 험하고 가파로와 사람들이 올라오기 매우 저어하는 곳이였다.
바로 이 험하고 가파로운곳을 오르시여 우리
주체46(1957)년 8월 26일 절간으로 가는 길이 몹시 위험하다고 앞을 막아나서는 일군들에게
통나무를 그대로 잘 다듬은 다음 련꽃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만든 절간문들을 비롯하여 건물을 일일이 돌아보신
건물에 풀이 돋아나고 비가 샌 흔적들을 보신
이처럼
대웅전은 가운데가 보기 좋게 약간 부른 두리기둥우에 바깥 7포, 안 9포의 두공을 짜올렸고 네모서리와 앞면가운데 기둥돌의 두공우에는 마치 살아움직이는듯한 룡대가리조각을 얹혀놓았다. 또한 건물의 내부천정을 보면 대들보와 중보사이의 중심에 꽃병을 형상한 받침기둥을 세우고 소란반자는 중보에 높이 걸었으며 집안 깊숙이 불단을 놓고 그우에 17포로 된 두층짜리 닫집을 달아놓았다.
대웅전의 겹처마를 댄 우진각지붕은 류달리 긴 추녀마루와 처마선의 보기 좋은 곡선으로 하여 장중한 감을 주고있으며 외부의 모루단청과 내부의 금단청도 잘 조화를 이루고있다.
대웅전안에는 아미타불(좌상), 관세음보살(립상), 대세지보살(립상) 등 3개의 불상이 있고 대웅전앞 서쪽에 높이가 4.5m인 7층돌탑이 서있다. 그리고 그 가까이에 앞면 4간, 서쪽 옆면 4간, 동쪽 옆면 2간되는 《ㄴ》자모양의 평면을 가진 배집형식의 승방이 자리잡고있다.
관음사뒤에 있는 관음굴안에는 옛날의 조각상으로써는 매우 보기 드문 2개의 관음보살상이 있다. 유백색대리석을 다듬어만든 높이가 1.2m인 이 관음상의 부드러운 얼굴과 육체미가 드러난 날씬한 몸매라든가 또 엷은 비단처럼 나붓기는 천의 등은 당시 조각가들의 높은 예술적재능과 돌가공기술을 잘 보여준다.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개성의 력사유적 관음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