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리순영
2022.12.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나라에서는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민족간부양성사업이 잠시도 중단됨이 없이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과 정부에서는 전쟁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대학교육사업을 중단함이 없이 계속하도록 하였으며 전선에 나간 대학생들까지 소환하여 공부를 시키고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14권 457페지)
1950년 6월 미제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전쟁의 불을 지르자 고급중학교와 전문학교의 많은 학생들과 대학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선에 탄원하여나갔다. 교원들도 인민군대의 정치공작대로 파견되였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족간부양성사업을 계속한다는것은 사실상 거의나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언제나 민족간부양성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항일혁명투쟁의 간고한 시기에나 어려운 해방직후에나 후대교육을 나라의 중대사로 내밀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시기라고 하여 교육사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전시환경에 맞게 교육사업을 개편하여 민족간부양성을 계속하도록 하시였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전쟁이 일어나면 대학교육이 중단되거나 국가도 대학교육에까지 관심을 돌리려 하지 않는것이 보통이였다. 더우기 우리 나라와 같이 제국주의강적과 맞서 가렬한 전쟁을 하고있는 조건에서 민족간부양성문제에까지 낯을 돌린다는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대학교육사업을 중단없이 계속한다는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전쟁을 하면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를 전망성있게 양성할것을 결심하시고 전시 대학교육사업을 계속할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시였다. 이것은 민족의 장래와 혁명의 전도와 관련되는 민족간부양성사업보다 더 절박한 문제는 없다는 투철한 민족인재중시의 관점을 지니시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일수록 민족간부양성에 더 큰 관심을 돌리시는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용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12월 후퇴해들어온 인테리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대학교육사업을 계속함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우리 자체로 기술인재를 키워내는것을 민족인재양성의 변함없는 원칙으로 틀어쥐고나갈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민족간부양성사업을 계속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는 전쟁이 아무리 어려워도 대학들을 전면적으로 개교하여 교육을 정상화함으로써 전후에 필요한 과학기술인재들을 미리부터 대대적으로 그것도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키워내시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일부 교원들속에 대학교육을 계속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옳바로 인식하지 못한데로부터 전쟁의 어려운 조건을 구실로 중단된 교육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사업에 달라붙지 않고있었으며 지어 어떤 교원들은 교육사업은 안전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중국동북지방에 들어가 대학교육사업을 하자는 의견까지 제기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교원들에게 전시조건에서도 민족간부양성사업을 계속하려는 당의 뜻을 알려주시면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우리는 미국놈들과 생사를 판가리하는 치렬한 전쟁을 하고있다, 대학교원들과 학생들은 교수사업과 공부를 하다가 정세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총을 잡고 미제침략자들과 싸워야 한다, 온 나라가 전쟁의 불길속에 잠겨있고 전체 인민이 전쟁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싸우고있는 이때 우리가 어떻게 남의 나라에 가서 교육사업이나 과학연구사업을 하겠는가, 우리는 전쟁을 하는 준엄한 시기에 사는것만큼 배워주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에 자기의 운명을 같이할 혁명적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그들을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관심과 보살피심속에서 대학들을 후방의 안전한 지역에 소개하는 사업이 빠른 시일에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은 평안북도 구성군에, 김책공업대학(당시)은 평안북도 정주군에, 평양사범대학은 평안북도 피현군에 자리를 옮겼으며 다른 여러 대학들과 당학교, 중앙간부학교, 전문학교들도 후방에 소개되여 교육사업을 계속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들을 후방의 안전한 지대에 소개하게 하시는 한편 대학생대렬을 늘이기 위하여 군대에 나갈 나이가 되지 않은 고급중학교와 전문학교 2학년이상의 학력자들중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대학에 받아들이는 특별 예비과를 내오게 하시였으며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였지만 생산실천속에서 기술을 습득한 발전전망성이 있는 로동자, 농민출신의 청년들도 여기에 받아들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0(1951)년 8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명령 《대학졸업생 및 대학생소환에 관하여》를 하달하도록 하시였다.
한치의 땅을 두고도 피를 흘리며 결사전을 하여야 하였던 그때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대학으로 소환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인민군용사들은 민족간부양성을 전쟁 못지 않은 나라의 중대사로 여기시고 언제나 승리한 래일을 멀리 내다보시며 민족간부양성을 조직하시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에 기쁨을 금치 못하며 그들을 축복속에 떠나보냈다. 그리하여 총탄이 비발치는 전호와 고지에서 어제날까지 원쑤격멸의 결사전을 벌리던 병사들이 포연에 그슬린 군복차림그대로 후방깊이 자리잡은 대학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생들을 소환하는 명령서를 하달하시는 한편 교원대렬을 빨리 꾸리는데 선차적인 의의를 부여하시고 전쟁이 일어나자 전선과 정치공작대로 파견되였던 대학교원들도 모두 대학에 소환하도록 하시였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대학교원들을 선발하여 보내도록 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40(1951)학년도부터 전쟁전에 있던 15개의 모든 대학들과 54개의 기술전문학교들이 모두 개교되여 교육과정안이 집행되기 시작하였다.
전선에서 싸우던 병사들을 소환하여 민족간부양성을 위한 배움의 터전에 불러주신 이 혁명적인 조치는 그 어떤 역경이 겹쌓이고 난관이 가로놓인다 하여도 자체의 민족간부들을 키워내는 사업은 한시도 중단하여서는 안되며 튼튼한 민족간부들이 있으면 혁명의 전도는 언제나 확정적이라는 투철한 의지를 지니시고 우리 혁명을 승리의 지름길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무비의 담력과 혁명적전개력의 빛나는 산물이였다.
동서고금 전쟁력사에 없는 《산속의 종합대학》이 나오고 불바다에 잠긴 이 강산에 민족간부를 키워내는 배움의 종소리가 포연을 헤치고 힘있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학생들에게 보내주신 참고서적과 학습장, 실험기구, 교복, 침구류들까지 일식으로 공급되였다. 전쟁승리를 위한 천만가지 일을 돌보시는 속에서도 자기들을 믿고 아늑한 배움의 터전을 마련해주시고 생활까지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은 대학생들을 끝없이 격동시켰다.
그들모두는 승리한 조국땅에 인민의 락원을 일떠세우는 훌륭한 민족간부로, 믿음직한 과학기술인재로 자신을 준비할 결의밑에 총창을 틀어쥔 심정으로 펜을 억세게 틀어잡고 과학탐구에 온갖 정열을 다 바쳐나갔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혁명령도의 전기간 민족간부양성을 혁명의 중대사로 내세우시고 주체적인 민족간부양성의 새 력사를 개척하시고 민족간부육성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신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