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의 국방공업은 그 누구도 넘볼수 없는 주체적인 국방공업으로 비상히 강화발전되였다.
주체적인 우리의 국방공업은 항일혁명투쟁의 불길속에서 자체의 병기창을 내오고 무기를 만들도록 이끌어오신
자력갱생의 마치소리 높이 울린 백두밀림의 병기창들은 주체적국방공업의 시원으로 되였으며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창조된 연길폭탄정신은 주체적인 국방공업건설의 고귀한 사상정신적원천으로 되였다.
《유격구의 병기창에서 울리던 자력갱생의 마치소리는 로동당시대의 맥박으로 되고 이 시대를 줄달음치게 하는 위력한 원동력으로 되였다.》 (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은 무기해결을 필수적인 요구로 내세웠다.
한때 간도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쏘련사람들의 도움으로 유격근거지에 수류탄공장을 하나 지으려고 계획하였다. 그런데 쏘련측에서는 그 청원에 해결해주겠다는 약속도 없었고 해결해주지 못하겠다거나 해결할수 없다는 통지도 보내주지 않았다. 쏘련사람들의 침묵은 조선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는 립장을 확고히 가지게 하였다.
당시 유격대의 병기창들에는 현대적인 기계나 공구가 거의 없었다. 왕청사람들이 착공기 1대와 손볼반 한대를 가지고있었을뿐 그것을 제외한 최상의 수단은 줄칼이였다. 그러나 병기창일군들은 그 줄칼을 가지고 별의별것을 다 수리하였다. 그들은 줄칼로 쓸고 숫돌로 갈고 망치로 두드리고 불과 물과 진흙에 담금질을 하는 방법으로 보총의 약통물개도 고치고 격침도 수리하였다. 나중에는 기관총까지도 척척 재생시키였다.
그런데 병기생산에 필요한 자재나 원료가운데서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면서도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것이 화약이였다. 처음에 유격구의 병기창들에서는 광산로동자들과 지하공작원들이 보내주는 화약을 리용하였다. 그런데 이 방법은 상시적인 위험과 혁명조직을 로출시킬 우려를 동반하였고 실지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기도 하였다. 그때의 한g한g의 화약은 그대로 다 투사들이 뿌린 피였고 살점이였으며 그 모든것의 결정체였다.
이로부터
화약이 해결되자 작탄제작이 부쩍 늘어나게 되였다. 작탄은 양철통을 리용해서 도화선을 물리는 방법으로 만들어냈는데 순수한 손로동으로 만들어내던것만치 조작도 불편하고 볼품도 없었다. 그러나 이 작탄은 수류탄과는 대비도 할수 없으리만큼 굉장한 살상력을 가지고있었다. 화룡병기창에서는 처음으로 소리폭탄이라고 하는 작탄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그후 고추폭탄으로 발전하였다가 연길폭탄이라는 위력한 작탄으로 완성되였다. 나중에는 나무포도 만들어냈다.
백두밀림의 병기창이 있었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해방후 주체36(1947)년 6월에 첫 병기공장을 창설하고 그처럼 짧은 기간에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하여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기관단총과 수류탄, 박격포를 만들어낼수 있었다. 그리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자체의 군수공업에 토대하여 군수생산투쟁을 힘있게 벌려 전쟁승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오늘날에는 그 어떤 침략세력도 단호히 징벌해버릴수 있는 무장장비들을 마음먹은대로 만들어내는 주체적이며 현대적인 국방공업으로 강화발전되게 되였다.
이렇듯 자력갱생의 마치소리 높이 울린 백두밀림속의 병기창들은 우리 나라에서 주체적인 국방공업의 시원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