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주체혁명위업의 개척과 더불어 빛나는 조선의 위대한 어머님의 업적

 2019.6.13.

강반석녀사의 생애는 민족의 태양을 높이 받들어올리신 조선의 어머니,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혁명위업과 녀성들의 사회적해방을 위한 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위대한 녀성혁명가의 빛나는 한생이였다.

강반석녀사는 위대한 태양을 받들어올리시고 조국의 해방을 위한 투쟁력사에 빛나는 자욱을 새기신 조선의 어머니이시다.

예로부터 훌륭한 위인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년시절부터 남달리 총명하시였으며 비상한 사고력과 관찰력, 뛰여난 탐구심과 억세고 담찬 기질, 통이 크면서도 너그럽고 소탈하신 품성을 지니고계시였다.

력사상 그 어느 어머니도 지닐수 없었던 뛰여난 천품과 고매한 덕성, 숭고한 인생관을 지니고계신 강반석어머님의 따뜻하고도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시절부터 열렬한 애국심과 가장 고결한 품격과 자질을 지니신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실수 있었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아드님께서 어린시절부터 만경대가문의 애국, 애민, 애족의 넋과 혁명정신을 그대로 이어받도록 다심한 정성을 바치시였고 위대한 혁명가의 품격과 자질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깊이 마음쓰시였다.

강반석녀사는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기 위한 성스러운 혁명의 길에 빛나는 한생을 바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조국의 해방은 강반석녀사께서 절절히 바라시던 념원이였다.

하기에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쥐시고 성스러운 혁명위업수행의 길에 나서도록 힘있게 떠밀어주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님께 김형직선생님께서 남기신 두자루의 권총을 넘겨주시며 너의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실 때 이 권총 두자루를 나에게 맡기시면서 때가 되면 너에게 주라고 당부하시였다, 네가 이미 혁명투쟁에 몸바쳐나섰으니 아버님께서 남기신 이 총이 필요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총을 가지고 아버님께서 못다하신 조국해방의 위업을 꼭 이룩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지원의 넋이 깃든 두자루의 권총이 이렇게 강반석녀사에 의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넘겨지게 되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항일무장투쟁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뜻깊은 날에 어머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혁명활동에 참가하시면서 나와 나의 동무들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시였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지금도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 때 있었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뜨겁게 추억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각에도 자신보다 먼저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생각하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혁명의 길로 떠밀어주시였다.

흰옷을 입으시고 문설주를 짚으신채 아드님을 바래주시는 모습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신 강반석어머님의 마지막모습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그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열하는 그런 곡경에 처할 때마다 나는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를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니가 하던 말씀과 흰옷을 입고 나를 바래주던 어머니의 마지막모습을 회고하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였다.》 (김일성전집》 제96권 338페지)

강반석녀사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도우시여 반일민족해방운동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가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해야 한다는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넋을 삶의 전부로 삼으시고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나서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우선 김형직선생님과 함께 투쟁하는 독립운동자들을 온갖 성의를 다하여 보살펴주시였다

당시 만경대집으로는 김형직선생님을 만나뵙기 위해 각지에서 수많은 독립운동자들이 찾아왔다.

피죽마저도 건너야 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닌 어려운 살림에 찾아오는 숱한 사람들에게 끼니를 보장한다는것은 사실 간단한 일이 아니였으나 녀사께서는 하루에 열번 밥을 짓고 열번 빨래를 하시여도 언제 한번 그것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으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또한 생명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김형직선생님의 혁명활동을 도와나서시였고 선생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하늘땅 그 어디에라도 따라나서시였다.

주체9(1920)년 초봄 림강에서 생활하실 때 한번은 국내 중강에서 조직원들이 구해놓은 권총과 탄약을 날라와야 할 일이 제기되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이런 일에는 남자들보다 녀자들이 더 유리하다고 하시면서 그 위험한 일을 자신께서 직접 맡아나서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특히 김형직선생님의 신변안전을 지켜드리는데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일제경찰의 폭압속에서 혁명투쟁을 벌려나가시는 김형직선생님에게는 무시로 위험이 뒤따르군 하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김형직선생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매사를 신중히 대하시면서 손님이 찾아올 때에는 언제나 자신께서 먼저 밖에 나가 손님을 확인해보고서야 선생님께 안내해드리시였고 불의의 정황이 조성될 때에 제때에 대처할수 있도록 신호장치를 설치해놓으시였다. 그리고 김형직선생님께서 집을 나서시면 아드님을 부르시여 남이 모르게 아버님을 따르게 하시고 만일 아버님께서 뜻밖의 위험에 부닥치게 되면 어디로 가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어떻게 련락을 취해야 하는가를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주체6(1917)년 11월 강동군 봉화리에서 김형직선생님께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던 날 강반석녀사께서는 비밀문건을 제때에 불살라버리시여 조직의 비밀을 지켜내시였으며 주체10(1921)년 3월 이른아침 10여명의 경찰이 갑자기 달려들어 선생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왔던 위급한 순간에는 림기응변의 대담한 지략으로 위기를 막아내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동지들과 함께 비밀모임을 하실 때에는 소리없이 내리는 밤이슬을 맞으시며 직접 망을 보시였다.

참으로 강반석녀사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의 가장 친근한 방조자로서 선생님의 신변안전과 혁명사업을 훌륭히 지키고 방조해드리신 참다운 혁명가이시였다.

강반석녀사는 우리 나라 녀성해방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였다.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자면 광범한 녀성들을 하나로 묶어세울수 있는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녀성조직을 내오는 사업을 강반석녀사를 통하여 무송일대에서 실현하기로 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과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새형의 혁명적녀성조직건설의 앞장에 서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방조밑에 주체15(1926)년 12월 26일 반일부녀회를 결성하는 모임을 소집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모임에서 부녀회원들에게 우리 녀성들은 자기 이름부터 떳떳이 가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녀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주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모임에서 전체 부녀회원들의 일치한 의사에 따라 회장으로 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광범한 녀성들을 조직에 묶어세우시고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녀성들을 의식화하는것과 함께 각계각층의 광범한 녀성들을 망라하여 반일부녀회조직을 부단히 확대강화하도록 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불편하신 몸도 돌보지 않으시고 무송에서 멀리 떨어진 여러 농촌마을을 찾아 녀성들속에서 정치선전사업을 진행하시는 한편 핵심녀성들을 장악하고 키우시여 여러 지역에 부녀회조직을 새로 내오시였다.

그리고 부녀회조직들이 녀성들을 조직동원하여 항일혁명투쟁에 힘있게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강반석녀사의 적극적인 교양과 지도를 받아 오랜 세월 억압과 천대속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숙명으로만 여겨오던 녀성들이 열렬한 애국자로, 혁명가로 자라나 손에 총을 잡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국해방성전에 과감히 떨쳐나서 용감히 싸웠으며 반일부녀회조직들은 일제의 가혹한 폭압속에서도 두려움없이 적정탐지와 련락임무를 수행하고 반일인민유격대에 대한 원호사업을 활발히 벌렸다.

력사의 온갖 풍파를 헤치시며 조국해방의 길우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신 강반석녀사의 고귀한 한생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찬연히 빛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