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력사유적-불영대

 2024.10.9.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전해갈 민족의 재부들가운데는 묘향산에 있는 력사유적 불영대도 있다.

불영대는 묘향산 보현사에 속한 암자로서 1570년에 처음 짓고 1700년에 고쳐지었으며 그후 여러 차례 대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봉건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불영대는 귀중한 력사유적이라고 하시면서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묘향산의 만폭동과 불영대를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묘향산을 우리 인민이 즐겨찾는 명승지로 더 잘 꾸리고 널리 소개선전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불영대
사진. 묘향산의 불영대

불영대는 상원암에서 동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불영봉중턱 아늑한 곳에 남쪽을 향하여 있다. 이곳은 동, 서, 남 세면이 확 틔여 한눈에 안겨오기때문에 예로부터 명승의 하나로 손꼽히고있다. 불영대 동켠산마루우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달을 보는것은 매우 경쾌한 일이여서 예로부터 《불영대의 달돋이》를 묘향산8경의 하나로 일러왔다.

건물은 앞면 5간(10.77m), 옆면 3간(6.15m)으로 되여있다. 그런데 앞면은 기둥 하나를 세우지 않아서 마치 4간처럼 보인다. 흘림기둥에 액방을 딱 맞게 이어대고 그우에 3익공두공을 얹어 건물을 경쾌하고 시원하게 하였다. 익공식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기둥사이에 화반과 함께 포를 섞어썼다. 네모서리 두공우에 나무로 새긴 황룡과 청룡은 마치 살아움직이는듯 하여 당시의 우수한 조각솜씨를 잘 보여준다. 긴 덧서까래와 덧추녀로 처마를 들어올린 지붕, 기둥을 세우지 않고 액방을 건너놓은 퇴마루는 퍽 시원하고 경쾌해보인다.

불영대는 우리 인민의 높은 건축술을 보여주는 유적일뿐 아니라 한때 조선봉건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1592년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난 후 손홍록과 안의 등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여있던 조선봉건왕조실록을 비롯한 가치있는 귀중한 민족고전들을 배길로 충청도의 아산을 거쳐 황해도의 해주로 옮겨왔다. 1597년 일본침략군이 다시 침입해오자 손홍록은 무려 50바리나 되는 이 력사책들을 강화도로 옮기였다. 그후 강화도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그 책들을 배에 실어 안주를 거쳐 먼 후방인 묘향산의 불영대에 날라다가 보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봉건왕조실록을 비롯한 민족고전들은 전쟁피해를 면할수 있게 되였다. 이때 묘향산에 소개시켰던 조선봉건왕조실록은 임진조국전쟁이 끝난 후 4부의 실록들가운데서 남은 유일한 책으로서 그후 실록을 다시 복각하는데서 그 원본으로 리용되게 되였다.

이렇듯 불영대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애국정신, 인민들의 높은 건축술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민족의 재보이다.

오늘 불영대는 조선로동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원상그대로 훌륭히 보존관리되고있다.